로마정치를 가장 멋지게 표현하는 작가, 로버트 해리스

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ㅣ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임페리움>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성공기(집정관으로 당선되기까지)를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삶을 기록한 노예, 티로가 기술하는 형식을 띈 소설이다. ‘정치이야기만큼 따분하고 답답한 것이 있을까?’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내가 고대 로마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소설이라니…, 의외의 선택이며 솔직히 나의 ‘미친 도전의식’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결코 나와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책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작가의 전작 중 <폼페이>를 읽고 기원 전 시대에 놀라운 하수도 시설을 비롯하여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가을 직접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신기하게도 벽돌로 이루어진 도로, 곳곳에 있는 성당, 대리석 건물들을 눈으로 직접 봤기에 로마의 정치, 현재와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그들의 정치를 엿보는 것도 즐거우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사실적인 묘사(작가의 연구 조사가 얼마나 치밀한지 짐작할 수 있다.)는 독자를 책 속 깊숙이 초대하며 정치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보너스까지 두둑이 챙겨준다.

신인 원로, 키케로가 성장과 첫 거대 재판(귀족을 적으로, 시민의 우상으로!)에서 드디어 이름을 알리고 차근차근 올라서는 과정을 보여주며 로마식 선거 유세,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정치적 음모 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시칠리아의 총독 베레스를 쫓아내며 시민의 우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키케로 역시, ‘정치에서 성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정상의 거인(폼페이우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라며 다시 부패한 귀족의 변호인으로 돌아서는 모습 등, 오늘 날의 정치인들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는 권모술수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때로는 ‘눈물보다 빨리 마르는 건 없다!’며 그 어떤 변호인보다 언변의 화려한 기술로 배심 단을 울리고 웃기고, 그리고 바로 절정으로 이끌어내는 키케로의 모습은 언론기술에 능한 오늘 날의 정치가의 모습 그대로이다.

재미없는 정치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은 내겐 새로운 발견이었다. 게다가 로마시대의 선거 유세, 재판, 원로회의의 과정 등 곳곳의 신선한 이야기들이 파닥파닥 뛰어나오는 것도 덤으로 얻은 재미다. 키케로가 아침마다 의뢰인들을 만나고, 선거철에 선거운동원들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유세장으로 가는 모습이라든가, 표를 돈으로 거래하는 중개인이 존재하고, 원로원 회의에서나 재판과정에서 장시간에 걸친 연설(호르텐시우스는 이틀에 걸쳐서 변론을 하기도 한다. 말 잘하는 키케로 역시 짧은 연설이 한 두 시간을 훌쩍 넘긴다.) 등 로마 정치에 대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모든 것이 다 생소하고 신기했다.

주인공 키케로 역시 정치에 발을 담갔으니 그의 과정이 순백의 길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보여주는 로마 정치 속 이야기는 그 어떤 활극보다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전작 <폼페이>를 읽는 속도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에 푹 빠져 신나게 읽어나갔다. 아무래도 로버트 해리스는 전작 때와 비교하여 한 단계 더 성장한 느낌이다. <임페리움>은 팩션 소설, 그것도 로마에 대한 이야기 서술 능력은 로버트 해리스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작가임을 충분히 증명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