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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여신 1
라니 마니카 지음, 이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대서사시의 시작이라고 어울리는 서두였다.
어린 나이에 가난에서 벗어나라고 엄마가 딸을 위해 결정한 결혼은 허상이었다. 어린 락슈미는 나이 많은 가난한 남자 아야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20대 중반)에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인생이었지만 락슈미는 그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들이 그랬듯이 험난한 인생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나 대 서사시의 서두는 기나긴 락슈미의 이야기에서 안나의 이야기로 갑자기 바뀐다. 그리고 다시 제이안, 세브니즈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더니 다시 락슈미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며 1부(어둠 속의 아이들)를 마친다. 그렇게 긴 호흡의 1부가 끝나자 2부(재스민 향기)가 시작되는데 막내 랄리타와 착하기만 한 남편 아야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안나가 이야기를 끝맺으며 1권은 막을 내린다.
이야기의 진행은 서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화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때론 화자가 다른 인물과 독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들은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기도 한다. 보통의 대서사시를 다룬 작품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말레이시아하면 동남아에 속한 가난한 나라로 필리핀이나 태국에 비해 관광지로도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각광받지 못하는 나라다. 그 곳을 <쌀의 여신>을 통해 접하면서 락슘난의 성장과 결혼, 락슘난의 유일한 친구 무이 차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 속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하다. 마치 20세기 초중반의 우리나라를 다룬 작품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부자인 일본인 대신 중국인 영감이 있고(정확히 말하면 중국인의 세 번째 부인의 집이 락슘난의 이웃이며 그녀의 집주인 댁이다), 그 집에 가난한 여종인 무이 차이는 식모살이를 했던 가난한 집 처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락슘난과 무이 차이를 향한 한 점쟁이의 말은 희망은 고사하고 두 어린 소녀(10대지만 락슘난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에게 절망을 예견할 뿐이고, 어떤 노랫말처럼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나쁜 점괘 또한 틀리지 않고 무이 차이는 많은 아이를 낳지만 단 한 명의 아이도 자신의 품에서 키우지 못하고 평생 ‘엄마’라는 소리 한 번 듣지 못한다. 락슘난 역시 사랑스런 모히니를 비롯해 첫 애를 쌍둥이를 낳고 많은 아이를 낳지만 가슴에 한 아이를 묻는 아픔을 겪고 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평탄지 않다. 2부의 재스민 향기가 죽음을 뜻하는 랄리타의 말처럼 아이들의 상처 또한 락슘난 못지 않다.
2권이 남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총평하기에는 이르다.
4대에 걸쳐 펼쳐진 사랑과 배신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작가 라니 마니카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2권의 책장을 서둘러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