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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다른 나라에 주권을 빼앗기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고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았으며, 폐허밖에 안 남은 곳에서 빚으로 시작한 대한민국. 그러나 새마을 운동으로 흰쌀밥을 밥상에 올리고 산업화로 대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한때 IMF로 또다시 궁핍의 시대로 들어가려는 위기에서 단일민족의 힘을 발휘하여 금모으기 운동으로 나라의 빚을 갚았고 이제는 달러를 벌기위해 다른 나라로 광부를, 간호사를 팔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가지 않아도 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국민들이 밀항을 하지도 않고 오히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밀입국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이런 역사 속에 어찌 아름다움만 있을까?
<비타>는 우리의 선조들이 달러를 벌기위해 걸었던 것처럼 가난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1900년대 초에 미국으로 가는 배경 속에 어린 소녀 비타와 디아만테의 이야기와 그 시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희망보다는 불행에 초점을 맞췄으며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어떠한 동정적인 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어머니를 이탈리아에 남겨두고 아버지를 찾아 온 비타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싶은 첫 만남부터 삐걱이게 되고, 온 가족의 희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미국 땅을 밟은 디아만테 역시 비타의 아버지가 주선한 첫 일자리부터 어긋나고, 기차역 공사장에선 워터보이로 몇 년간 일해도 나날이 빚만 늘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연인 비타를 찾아 돌아온다. 그러나 비타는 이미 다른 남자(그것도 디아만테와 비타가 사랑하는 사이인 것을 알고 있던 선배이며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 게다가 그 사실을 속이며 비타와 사랑을 나누고, 끝까지 책임도 못 진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그러나 작가의 구성은 독자들이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지 않다. 서사적 배열도 무시한 채 1900년대, 1940년대, 1980년대를 넘나들으며 각기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시대적 배경의 사실적인 묘사들이 넘쳐나고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고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동시에 뛰어 넘은 채 인물의 심리,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작가의 이런 필력에 익숙해지고 단락을 무시한 편집(아무래도 이것도 작가의 취향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분량으로 인한 필요충분조건인 듯하다)에 작품의 초반 몰입도는 솔직히 말해 낮았다. 요 근래 읽은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책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비타와 디아만테의 마지막 만남과 그 이후에 다시 역순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책 속에 흠뻑 취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멜라니아 마추코 작가의 힘이 아닐까 싶다. 좀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지만 결국엔 그녀의 세계에 빠져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것.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 스트레가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중도 포기 없이 끝까지 마지막 장을 덮었다면 이 소설은 멋지다라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독특한 작가의 구성과 필력을 쫓아가다 버거워 포기해버린 독자가 있다면 평생 로맨스 소설을 못 벗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보길, 그러면 작가는 독자에게 멋진 작품으로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