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캔들 미술사 - 미드보다 재미있고 사랑보다 매혹적인 이야기 갤러리!
하비 래클린 지음, 서남희 옮김 / 리베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스케치까지는 좀 봐줄만 한데 색깔을 입히면 갑자기 그림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평생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한 동경도 꿈도 사라졌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림 볼 줄 안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문외한에 가깝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이다. 대학 입시 교육 때문이든지 개인의 취향문제이든지 나만 바보가 아니란 사실에 다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쯤 사촌오빠가 미술 갤러리를 오픈했다. 우리 집안에 화가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피부로 깨닫게 된 것이다. 꽤나 실력 있는 화가를 사촌 오빠로 둔 내가 그림을 모른다는 것이 갑자기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책들을 하나 둘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미술 전시회에도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 도전은 힘들었다. 세계 명작들을 소개하는 책,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우는 책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을 설명하는 책들을 보고 난 후 밀려드는 건 그래도 기억에 남는 그림 한 점 없다는 잔혹한 사실이었다. 그 당시 화풍에 대표작이든, 새로운 화풍을 불러일으킨 대작이든, 미술사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내가 흥분하며 책에 빠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기준으로 펼쳐놓은 이야기들이 내 심장을 울리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명작임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화가 고흐의 삶의 이야기는 안다. 나는 그림보다는 이야기가 좋다. 무관심했던 음악이나 그림이 그 것에 관한 에피소드를 알게 되면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미술(그림)도 이야기로 접근하면 새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가의 화집, 또는 그림은 없이 이야기만 다룬 책이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이야기도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을 다루거나 아니면 루머에 가까운 것들만 실려 오히려 거짓을 다룬 책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그런 책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실망하고 있을 무렵 <스캔들 미술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보고 그림에 관한 루머들을 다룬 또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들어가는 글’을 읽고 나의 걱정은 일단 접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가장 먼저 그림을 양쪽에 가득 싫고 그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에 이야기일 수도 있고 화가나 모델의 얽힌 이야기일 수도 있고 후대에 일어난 사건일 수도 있다. 그림과 이야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뛰어난 종이 질로 그림까지 살려낸 이 책은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총 26개의 작품 중에서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는 작품은 단 두 작품이었다. 모나리자와 올랭피아. 1달러의 조지 워싱턴까지 포함해야 한다면 세 작품.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렇게 많은 전시회와 책, 다큐프로그램을 보고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었던 것과 달리 많은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미화한 존 싱글튼 코플리의 ‘왓슨과 상어’,
도망자 신세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반성문 같은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기념사진 같던 당시 해부학 그림을 멋진 구도로 재탄생시킨 렘브란트(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화가, 이 화가를 기억하게 된 계기도 이야기(소설)때문이다)의 ‘의사 니콜라에스 튈프의 해부학 강의’,
오랜 세월에 쌓인 먼지가 그림자로 오인되어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야경(夜警)’,
아름다운 이야기만큼 아름다운 그림이자 스코틀랜드의 국보 토머스 케인스버러의 ‘우아한 그레이엄 부인’,
미완성의 명작으로 1달러의 원판이 된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 워싱턴(아테네움의 지성)’,
가장 멍청하게 그린 왕족들의 초상화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남장 여류 화가, 로사 보뇌르가 그린 ‘마시장’,
고통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그림 속 드레스가 400년이 지나서 발견된다? 아뇰로 브론치노의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아들 지오반니 데 메디치’ 등.
솔직히 말하면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 모든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그림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접목되어, 그림이 더 이상 그림만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그림의 문외한들을 위해서 이 책이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다른 작품들도 많이 소개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