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노예 문제, 인종 차별.

한 시대의 아픈 현실을 나타내는 이 단어는 다양한 장르에서 이야기의 소재로 다뤄졌다.

돌프 페르로엔!

청소년,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 돌프 페르로엔은 이 문제를 색다르게 접근했다. 노예의 인권과 인종 차별이 잘못 됐다고 주장하는 영웅이나 노예도 없고, 노예 제도에 반항하다 목숨을 잃은 흑인노예도 없으며, 그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관자 백인도 없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속에서 한 소녀가 있을 뿐이다.

이 책에는 열네 살 성인식 선물로 어린 노예와 채찍을 받고, 그 채찍이 선물 받은 핸드백에 안 들어가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소녀가 있을 뿐이다.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노예를 보고 불쌍하다는 동정어린 시선조차 보내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노예가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채찍을 휘두를 생각만 갖고 있을 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주인공 소녀의 행동은 악녀의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백 년 전 그 소녀는 은 쟁반에 올려진 어린 흑인 소년을 선물로 받는 그런 시기에 살았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로부터 노예를 모질게 다뤄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받으며 자랐다. 게다가 예쁜 여자 노예를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아빠와 그 여자 노예를 향한 엄마의 폭행을 보고 자랐다. 21세기에서는 악녀라고 칭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2백 년 전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며 그것이 현실인 시대였다.




눈물, 콧물 한 방울 흘리는 이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화가 나고 답답했다. 당연한 시대적 상황, 뭣 모르는 어린 소녀임을 감안하고 읽으면서도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분노는 어쩔 수 없었다. 작가는 이렇듯 많은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에피소드)를 늘여놓지 않아도 많은 것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한다. 이것이 바로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바로 이 책의 힘이다.




어젯밤 자기 직전에 이쁜 표지에 이끌려 졸린 눈을 비비고 저자의 머리말만 보고 자려던 나에게 이 책은 잠을 내쫓고 인권에 대해, 노예, 인종 차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조카들과 어린 학생, 이웃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밤중에 여기저기 이메일을 보내게 한 책이다.




신분 제도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백 년이 되지 않은 한반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비롯, 글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대들이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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