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세상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심장에서 시작되어 모든 세포로, 모든 혈관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한번 덮치고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땅도, 하늘도, 심지어 자기 손바닥마저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그런 슬픔을, 그 무엇보다도 깊은 슬픔을, 나는 이미 경험해 봤다고 생각했다. -p209-

어떤 장면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꾸준히 눈에 아른거린다. p289-

예전에 윌이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고 했을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윌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데도 없으면, 모든 곳은 그저 아무 곳도 아닌 게 된다. -p295-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 였다.

내게 닥친 일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마주하며 살며,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손바닥에는 흙 두 줌이 쥐여져 있고, 심장은 여전히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 -p4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가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p12-

나는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p56-

아줌마처럼 자기의 고통을 드러내놓지 않는 사람은 그 고통을 가슴속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해소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압축 저장된 그 고통은 언젠가는 엄청난 폭팔력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가슴속에 고통을 꾹꾹 눌러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줌마가 품고 있는 진정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p76-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 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p137-

아무리 남의 말하기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광진테라 아줌마처럼 나무랄 데 업이 착한 사람에 대하서는 선뜻 비바의 포문을 열 수가 없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이야깃거리일 뿐이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것은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p251-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이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 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p363-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p4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리석은 인간은 자기 앞의 한 사람을 순응시키려 하고, 자신의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모두와 다른 고유함’이 라는 타인의 본성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까닭에 그의 시도는 결국 좌초하고 만다. 타인은 그가 있는 바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각자의 본성에 따라 살도록 놔두기. 이것이 자유인의 공동체가 제일로 삼는 교육이다. -83p-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아침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쫓기고, 맡은 일의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쫓긴다. 이런 와중에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고? 그것은 시간에 대한 ‘갑’인 자의 특권 아니겠는가? ‘을’은 레이스에서 맨 뒤에 처진 스케이트 선수처럼 시간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자기’를 잃어버리며 결단 내리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맞는 전형적인 말은 ‘시간이 없다’이다. 자기를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자, 시간의 맷돌에서 갈리며 비지가 되는 자는 늘 바쁘다며 허덕인다.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그에겐 시간이 없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전전긍긍하듯 시간에게 고문당한다.
반면 시간을 잃지 않은 자, 오히려 시간을 돈다발처럼 소유한 자, 바로 시간의 ‘갑’은 원하는 만큼 느려도 상관없다. 오히려 시간이 예, 예 하면서 충실한 하인처럼 그와 발을 맞춘다. 시간을 소유한 자만이 원하는 속도로 시간의 페달을 밟으며 풍경을 즐기듯 ‘느릴’ 수 있다. 그는 세상살이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자가 아니라 원하는 만큼 천천히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자이다.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느림의 가치이다. -248-

시간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삶은 그저 노동을 거쳐 사망으로 가는 쾌속 열차일 것이다. -25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저 그는 기술 발전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고 두려웠다. 아예 멈출 수도 있었고, 심지어 후퇴할 수도 있었다. 미국은 달에 갔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엔가 우주왕복선 임무가 중단되면서 그 분야의 발달도 멈춰버렸다. “사람들은 기술이 자동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는 몇 년 후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에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P117-

공장을 설계할 때 머스크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제조 팀이 모두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따랐다. “조립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를 붙잡아 세우고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만든 거요?’라고 따질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머스크가 뮬러에게 설명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자기 손을 올려 놓으면 뜨거워지자마자 바로 떼어내지만, 다른 사람의 손이 올라가 있으면 무언가 조치를 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마련이지요.” -P136-

“안 돼요.” 머스크가 말했다. “안 돼, 안 돼”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미러도, 페달도, 운전대도 없이 가는 겁니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집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임원들은 망설였다. “이 사안은 나중에 다시 논의해보는 게 어떨까요?” 한 임원이 말했다. 머스크는 매우 냉정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이 차량은 깨끗한 로보택시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 리스크를 감수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개판이 된다면 다 내 책임입니다. 우리는 양서류 개구리 같은 반쪽짜리 자율차를 설계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율성에 올인하는 겁니다.” -P600-

미치광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미친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니가 어떻게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이 뻔뻔하고 완강한 승리 선언은 곧이어 세번째 판본으로 이어진다. 저 잔인하고 가차없는 필연성 앞에서 우리가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슴벌레식 문답은 패배의 수용과 굴복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그렇다면 그것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자의 체념과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의 표현과 직결된다.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이 된다. -251p-

냇가에 두부를 풀어 놓던 시절, 그는 찬란한 햇빛이 드는 봄날의 아침처럼 시원하면서도 밝았다. 지칠 줄도 멈출지도 모르는 그의 엔진은 무더운 여름에 그를 태웠다. 차가운 증류수는 색채를 잃은 가을을 만들었고 어둠이 드리운 긴 겨울 아래, 앙상한 나뭇가지 위를 따뜻한 눈이 덮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계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