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인간은 자기 앞의 한 사람을 순응시키려 하고, 자신의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모두와 다른 고유함’이 라는 타인의 본성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까닭에 그의 시도는 결국 좌초하고 만다. 타인은 그가 있는 바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각자의 본성에 따라 살도록 놔두기. 이것이 자유인의 공동체가 제일로 삼는 교육이다. -83p-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아침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쫓기고, 맡은 일의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쫓긴다. 이런 와중에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고? 그것은 시간에 대한 ‘갑’인 자의 특권 아니겠는가? ‘을’은 레이스에서 맨 뒤에 처진 스케이트 선수처럼 시간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자기’를 잃어버리며 결단 내리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맞는 전형적인 말은 ‘시간이 없다’이다. 자기를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자, 시간의 맷돌에서 갈리며 비지가 되는 자는 늘 바쁘다며 허덕인다.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그에겐 시간이 없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전전긍긍하듯 시간에게 고문당한다.
반면 시간을 잃지 않은 자, 오히려 시간을 돈다발처럼 소유한 자, 바로 시간의 ‘갑’은 원하는 만큼 느려도 상관없다. 오히려 시간이 예, 예 하면서 충실한 하인처럼 그와 발을 맞춘다. 시간을 소유한 자만이 원하는 속도로 시간의 페달을 밟으며 풍경을 즐기듯 ‘느릴’ 수 있다. 그는 세상살이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자가 아니라 원하는 만큼 천천히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자이다.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느림의 가치이다. -248-

시간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삶은 그저 노동을 거쳐 사망으로 가는 쾌속 열차일 것이다.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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