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 우리는 왜 부도덕한 리더에 끌리는가?
진 립먼-블루먼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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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진실치 못한 리더에게서도 매력을 느끼고 그의 사악한 면이 드러난 후에도 그 리더를 계속 지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 지도자의 측근이나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까지도, 심지어는 감시역할의 기자나 이사회 구성원들까지도 그 지도자와 한 편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처음엔 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쳤다가, 원제가 'The Allure of toxic leaders' 임을 알고서야 손에 잡게 된 책. 하기야, '사악한 리더의 유혹'이라 직역했다면 그런 '촌스러운' 책에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나. 유혹이나 매혹이나, 사악이나 부도덕이나, 다 그게 그거고, 지도자나 그 속성인 카리스마나 다 동격 아니냐고 우긴다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그 교묘한 제목 변환 솜씨에까지 벌써 책 내용의 상징성이 배어나온 느낌이다.

사람들은 어떤 때 무슨 이유로 강력한 리더라는 존재를 갈구하는지, 사악한 존재들이 그들에게 어떤 공약을 제시하며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되는지, 그 지도자가 풍기는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는지, 그 리더의 실상과 그의 약속의 허상이 들어난 후에도 그 권위는 어떻게 지속되는지, 그 지지자들이 여전히 따르는 사람들의 심리적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 또 마지막으로 그런 리더의 정체를 어떻게 일찍 파악할 수 있으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히틀러 같은 극단적 경우만 아니라 순진한 듯 보이는 가운데 교활하게 언론을 다루었던 케네디와 루즈벨트, 엔론의 경우처럼 사악한 자로 낙인찍힌 그런 경우뿐 아니라 록펠러와 포드 같은 가면 뒤 조정자들, 또 가명으로 처리하는 수많은 CEO와 중간 관리자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리더는,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깊이 없는 심리학 이야기가 피상적으로 흐르고, 확신을 불어주는 논증을 제시한다는 욕심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빤히 보이는 결론을 이런 예 저런 예 들어가며 계속 미루는 그런 이유로,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데는 제법 인내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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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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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존재라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먼 곳 늙은이에게 팔려가고, 거기에서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진 학대를 견뎌내야만 하는 사생아 A.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나다, 친구와의 이별만남에서 순간적 감정을 못 이겨 사랑의 씨를 갖게 되고, 설상가상, 집에 떨어진 포탄에 부모를 잃고, 친구조차 피난길에 죽음을 맞아, 의지할 곳 없이 사생아를 키워야하게 될 어린 소녀 B.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A의 늙은이에게서 B는 도피처를 구하지만, 이번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또 어느 쪽도 닮지 않은 그 딸에 대한 의혹으로, B 역시 욕설과 구타에 시달리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데, 비슷한 처지에 놓인 A와 B는 ....

얼핏 진부해보일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도, 왕조의 몰락 - 소련의 점령 - 무자히딘 세력 간의 분쟁 - 탈레반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상황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어드니 일종의 필연적 운명방정식 분위기를 품게 되고, 거기에 또, 여성은 단지 소유물이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통적’ 견해와 여성의 능동적 역할은 사회발전에 필수적이요 필연적 요소라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사고방식의 대립각이 그 이야기들에 섞여들면서, 제법 품격 높은 문화소설로 변모해나간다.

아무리 짜임새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역시 소설에는 섬세한 표현력과 뛰어난 문장력이 필수. 이 소설에서도 ‘연을 쫓는 아이들’에서처럼 작가 호세이니의 뛰어난 문장력과 섬세한 표현력이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물론 수준 높은 번역가 왕은철의 솜씨도 거기에 한 몫 했음이 틀림없고.

단지, 문학작품답지 못한 흠이 좀 있다면, 작품 끝부분에 일어나는 반전 이후 그 분위기가 너무 급작스럽게 심훈의 ‘상록수’ 풍으로 바뀌면서 그 전까지의 흐름과 방향을 달리하는 ‘후기’ 성격의 교훈적 목적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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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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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끄르께르 사원 아래, 공원에서 막 붓칠을 시작하던 화가, 그 화가의 범상치 않은 손놀림에 걸음을 멈춘다. 물감이 찍혀가며 캔버스에 윤곽을 드러내는 집과 나무와 언덕 모습. 그래. 바로 이거야. 여백. 동양화의 흰 여백을 품은 서양화. 이런 그림을 내 얼마나 찾고 찾았던가. 숨을 죽이고 그 그림의 탄생과정을 지켜본다. 저 그림은 내 꺼야. 값이 얼마건 상관없이. 공손하게 말 한 번 걸어볼 기회를 찾지만, 워낙 진지하게 그림에 열중해있는 그를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 저런! 왜 하필 거기에... 아니, 저런, 저런! 세상에! 결국 캔버스는 온갖 잡동사니 떡칠로 가득해지고....

산뜻한 문장에 적당한 긴장감. 얼개도 좋고 흐름도 좋다. 하지만, 빛의 제국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몽마르뜨르 언덕 그 장면이 생각난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이 줄거리만 가지고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랑 마주 앉아 대화할 때 그 상대방이 무슨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그래 내 거기에 대해서도 이런 것 알고 또 이런 것도 들어본 적 있지 물론 그 비슷한 이런 것도 알고 말이야 하며 정신없이 '화면'을 채워나간다면 그 산만하고 어지러운 대화에서 무슨 기쁨을 느낄 수 있겠는가. 소설이라는 것 역시 독자와의 대화고, 대화의 기본은 여유 또 여운 아니던가. 타임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한국작가의 이 작품에 대한 서평을 읽고 손에 잡았다, 실망만 안고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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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 해학으로 가득 찬 스피노자의 철학 동물원 철학 스케치 1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알리아 다발 삽화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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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이해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 이전의 '전통적' 철학관과는 파격적으로 다른 관념으로 가득한 스피노자의 철학이. 동물우화라 해서 이솝우화 그런 식의 이야기 모음은 아니고, 알리아 다발이라는 삽화가가 그려넣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아리엘 수아미라는 저자가 스피노자의 생각을 풀어 설명해놓은 책이다. 철학의 세계에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새롭고 흥미로운 작전이라고나 할까.

이 책에서 저자는 스피노자의 각종 저술과 편지의 내용을 인용해가며 총 30개의 논점을 다루면서, 기존 신학 윤리학 정치학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각종 테마들에 대해 기하학의 논증체계(내 일생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 중학교 입학과 함께 접하게 되었던 기하 책. 그 빈틈없고 체계적인 논리세계. 스피노자의 철학과 윤리학은 바로 이런 기하학적 논리체계를 따라가며 전개된다)를 들이대고 그 허점을 지적해나가며(하지만, 독자의 입장 내 보기엔 이들 주장 군데군데에 역시 견강부회 역설들이 심어져있고) 신과 자연과 의지에 대한 스피노자 식 관념세계를 펼쳐나간다. 하지만, 철학은 역시 철학. 몇 가지 주장을 들었다고 해서 스피노자의 그림이 어찌 그리 쉬 잡힐 수 있겠는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했고, 그제서야 몇몇 그림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으니. 이름 겨우 알고 있던 스피노자의 몇 마디를 전해듣고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그런 '계기마련' 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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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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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삶을 지향하는 보조교사 나르치스가 있는 수도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입학한 학생 골드문트. 나이가 비슷한 두 사람 사이의 우정. 상대방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부친의 소망 뒤에 숨겨진 잠재의식 속 '어머니의 부름'을 일깨워주고, 어느 날 집시여인의 유혹을 계기로 수도원 학교를 벗어나 방랑길에 오른 골드문트는 동물적 성적 탐닉의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동행하던 방랑자와의 격투 끝 살인까지도 겪다가, 어느 날 눈에 띈 성모 조각상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 조각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예술세계에서의 재능도 발견하게 되지만, 다시 방랑길에 나섰다 페스트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삶과 죽음의 다른 모습을 겪고, 또 살인, 이번엔 귀족의 연인과 밀애 중 체포되어 사형을 기다리게 되지만, 극적 우연으로 나르치스에 의해 구해져 수도원으로. 그곳에서의 조각가 생활, 다시 방랑, 이미 너무 늙어버린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골드문트. 큰 부상, 다시 수도원, 결국 나르치스의 품안에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고전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그 중심은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이야기흐름의 바탕을 이루는 생각, 또 '주인공과 작가'의 대화 내용. 40년 전 손에 들었을 때, 그때 이 책 번역본의 이름은 '知와 사랑'. 이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 아마 그런 대비의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나이 57세의 헤르만 헤세가, 자신이 어렸을 적 수도원 학교를 뛰쳐나온 경험이 있는 작가가, 단지 이쪽과 저쪽의 비교라는 단선적 의도로 이런 '성장 소설'을 썼을까? 맑고 깨끗한 이성과 지성 그것만을 추구하는 나르치스, 어두운 기억을 찾아 감정이 이끄는 대로 딸려가는 골드문트, 삶의 아픔, 그 사이의 갈등과 사랑. 이들 모두 사실 하나의 인간 속에 동시에 내재하는 그런 것들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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