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내 취향 저격 소설이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문체도, 완벽한 기승전결을 따르는 구성도, 매력적인 캐릭터도 아니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같은 책에서 자꾸만 감동받고 눈물이 맺히고야 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더없이 멋진 소설이었다. 실제 저자는 인터뷰에서 “우연히 과학을 접하면서 보이는 세계가 조금 바뀌거나 시야가 조금 넓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집필 계기를 밝혔다. 과학이라는 주제에 기대어 눈앞의 세계가 차츰 명징해지는 일,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통찰을 길어올리는 일. 이 소설은 그런 결의 시간들을 내게 선물했다. 오늘 독서모임에서 심리학자가 보는 세상은 좀 다르냐는 질문(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그렇다.)을 들었다. 특별히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려는데 현옥 언니가 절친의 시선으로 대신 답을 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를 때가 많다, 깊이가 다르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다른 부분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또 그것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구 행성물리학 박사 출신인 저자만이 가진 과학자로서의 자아가 한껏 빛을 발한 케이스다. 📍“반대로 묻고 싶어요. 다들, 왜 자기들이 사는 별의 내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안쪽이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하지 않은지. 표면만 보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모르는데.” (46p) 📍나도 귀를 기울여보자. 말은 잘 못해도 귀는 기울이고 있자. 그 사람의 깊은 안쪽에서 뭔가가 조용히 내리며 쌓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71p) 자꾸만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만 같은 헛헛한 일상을 헤매고 있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눈앞에 과학자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이 툭, 우연처럼 떨어진다. 갇혀 있던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바라보는 생소한 변화 앞에서 ‘위로’가 빛난다. 지구의 내핵, 은빛 숲에 내린다는 은빛 눈의 소리를 마치 눈앞에서 보고 듣는 것만 같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