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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평점 :
심리학에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마음속에서 ‘실제’라고 결정해버리면, 결국 그 결과에 있어서 그 상황이 실제가 된다는 것. 그러니 기왕이면 긍정적 말이 씨앗이 되는 데 마음을 써 보자는 것으로 정리하며 소개하곤 했다. 이것도 곧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덧붙이면 학생들의 이해는 더욱 쉬워진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여인상에 갈라테이아(Galatea)라는 이름을 붙인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그의 마음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그의 갈라테이아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는,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
정말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나는 늘 의문스러웠다. 전래동화 속,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던 나무꾼에게서 나는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서늘한 끔찍함을 느꼈던 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최고의 이상형을 ‘조각’한 그 남자가, 진짜, 사랑을 안다고? 갈라테이아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말인가? 이 책 [갈라테이아]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보다 완벽했던 조각상 갈라테이아의 목소리를 빌려, 어쩌면 당신이 찝찝하게 느꼈거나 혹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신화의 이면을 들려준다. 장담컨대 이 책을 읽는 모두, (남녀노소 관계없이) 피그말리온의 실체에 뜨악함을 면치 못할 것이고, 또 내 삶에 숨어있는 수많은 피그말리온들을 연달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문고본 사이즈의 책, 단숨에 완독을 할 수 있는 것은 책의 두께가 얇기 때문이 아니다. 내용에 흠뻑 빠져서, 책 한 장 한 장의 질감에 매혹되어(갈라테이아의 손을 맞잡은 이 느낌을 모두가 만끽하면 좋겠다) 끝을,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짧은 순간 독서가 끝나도,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온 갈라테이아는 끝없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며 영원히 살아 숨쉰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대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그 깊은 곳에 영원히 함께일 그들의 모습이 퍽 멋진 엔딩이었다. 피그말리온에게 비아냥거리듯 되묻고 싶다. 당신, 정말 행복하지 않냐고. 이제 정말 평생 그녀와 꼭 붙어 한 몸으로 살게 되었지 않냐고. 그토록 원하는 바 아니냐고. 물론, 갈라테이아의 마음은 처음부터 당신에게 없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