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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3S - SUSHI.SOBA.SAKE
은미경 지음 / 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워크맨을 만든 기술대국을 일본을 두고 '축소지향의 일본'이라며
밖의 기술을 받아들여 자기색을 덧칠해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민족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먹거리 역시 그렇다.
초등학교의 경우 한 반에 2/3 이상이 매일 김치를 먹거나 즐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햄버거와 피자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지가 이미 오래 전이고, '김치'는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전락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일본사회에서 김치는 더 이상 한국 먹거리가 아닌 일본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무치'로 자리잡았으며, 떼놓을 수 없는 반찬이라 모든 슈퍼마켓 아니 편의점, 시골의 반찬가게에서도 팔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라고 할까, 아니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된 기억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색이 바래지 않는다.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맛, 뚝배기보다는 장맛을 그리워하고 군침을 흘리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도쿄 3S'는 소바, 사케, 스시를 통해 일본을 읽고 있고, 일본을 맛보고 있다. 어쩌면 읽는이에 따라서는 문화충격을 받을 지도, 아니 실망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대국 일본의 볼품없는 밥상을 본 사람이라면 왜 일본사람들은 키가 작은 '왜국'인지 실감할 거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아무런 의미도 공들인 보람도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면, 내가 대학생이었던 80년대 '피의 잔치'로 등장한 제5공화국은 우민정책의 하나로 달콤하고 화려하고 은밀한 '3S'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이른바 'Sports' 'Screen' 'Sex'로 정권의 정통성을 의심하고 권력에 도전하는 국민들의 관심과 불만, 그리고 반발을 돌려놓겠다는 속셈이다.
이 3S정책은 이제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의식까지, 그리고 대중문화로 포장돼 깊은 뿌리를 내렸으며, 온갖 변형된 욕망의 배출구로 풀가동되고 있다. 굳이 딱딱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타문화를 이해하는 유연성, 그리고 대중 소비문화를 간파하고 대응할 수 있는 대중력이 점차 균형을 잃고 자본논리에 휩쓸려 퇴색하고 있는 지금 '도쿄3S'는 몇가지 의미 심장한 화두를 던지고 있어 매우 흥미를 끈다.
먼저, '일본은 없다'식의 자기우월적인 국수적 태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바로 '발로 뛰고 몸으로 느낀 문화서'라는 점에서 편견과 선입견을 경계하며, 객관적인 입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읽는이의 호흡을 거칠게 만들지 않는다.
둘째, 연예인들의 '감각서'와는 질이 다르다. 일찌기 해외 로케나 자유여행 등 낯선 땅에서의 신선한 체험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연예인들이 요즘 앞다퉈 에세이나 여행서를 출간하고 있는데, 거기엔 그들이 느낀 '낯선땅'의 사람들과 문화가 부재하고 감각만이 꿈틀거릴 뿐이다. 독자는 책을 통해 이(異)문화를 간접 경험하기보다 대중의 우상인 스타가 빚어낸 감각에 취해 유사체험을 소비할 따름이다.
셋째, 여행안내는 있지만 문화안내가 없는 기존의 가이드 북과도 차별을 선언하고 있다. 가이드북의 생명은 생생한 정보이고, 자세한 안내이다. 매일 변화하는 사회 속에 끊임없이 달라지는 각종 정보를 한권의 책으로 묶기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리얼타임으로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를 이겨낼 승산이 없다. 따라서, 정보와 함께 그 정보의 주인공들 목소리를 빌어 '삶'과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일드'의 유행에 힘입어 '꽃보다 남자' 한국판이 세간의 주목을 끌며 각종 유행을 리드하고 있다. 하지만, 크랭크인에 앞서 '고사'를 생략한 아니 무시한 탓일까, 끊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각종 사고 소식이 급기야 출연배우의 자살 소동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하등의 관계도 없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왠지 씁쓸하다.
돈벌이를 위해 일본을 찾는 수많은 한류스타들이 '일본 최고' '일본이 좋다'를 외치면서도 막상 일본에 대해 아는 건 '감각'과 '소비'인 현실. 우리가 드라마 속의 화려한 '감각'과 '소비'에 취해 있을 때 일본은 '기무치'로 다시 우리의 안방을 점령할 지도 모른다.
우린 '우리를 알기 위해 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그들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한일전의 '승리'만이 값진 반찬일 뿐, '패배'는 그저 안주에 지나지 않는다.
감히 권하고 싶다. 3S정책에 대항해 불끈 주먹을 쥐고 일어섰던 386세대라면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문화서, 감각만이 난무하는 연예인들의 얄팍한 에세이와 여행기, 그리고 살아있는 이야기가 없는 정보서가 아닌 '도쿄3S'로 일본의 어제,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보일 지도 모르겠다.
이 주말 부부가 함께 오래간만에 자식들 손을 잡고 '도깨비 여행'에 몸을 싣고 왜 우리들에겐 이렇게 일본이 '뜨거운 감자'인지 직접 확인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도쿄3S'는 그 여로에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해 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