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고명재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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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미세하게 다룰 줄 안다면 그건 사랑도 섬세하게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루약은 섬세한 배려, 약절구는그렇게 만들어졌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이를테면 아이들과 병든 노인들,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콩콩 약을 빻는 사람들. 백사장보다 고운 세계를너에게 줄게. 더 작아지자. 미미해지자, 얼른 녹아서 몸속으로 잠 속으로 사해로 퍼지자. - P24

그렇게 천천히 ‘나‘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대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이 참 많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별게 아니다, 나의 시도 별게 아니다, 하지만 나도 용감하게 사랑할 수가 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시와 소설이 많았고 또한 아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을 응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다보니시 쓰는 일도 더욱 행복해졌다. 매일 밑줄을 긋고 어떤 책에는 입술을 대었고 어떤 책에는 이마를 기대며 끝나지 말라고 말했다.
틈틈이 시를 쓰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 P32

어떤 삶을 살아야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이 남겨둔 이 따스한 시집의 이름이 자기 삶에 대한 ‘자부와 만족으로서의 충분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충분함‘은 자신이 살면서 우연히 스치고 만난 것들에 대한 ‘헌사로서의 충분함‘일 것이다. 나의 자족적인 충족감을 넘어서는 것, 빈자리에 기꺼이 타자들을 들여오는 것, 바로 그 만남에서 인간은 충만한 사랑을 얻고그 사랑에 힘입어 팥죽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죽음을 앞두고 ‘충분했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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