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배신 -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특별한 내일을 꿈꾸는 당신에게
최철 지음 / 황금부엉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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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최철의 <노력의 배신>은 제목만큼이나 표지도 인상적이다. 세 개의 문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양옆은 흰색이고 가운데 문만 빨간색이다.


비슷해 보이는 선택지 사이에서 유독 하나만 다르게 강조된 구성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책의 핵심 메시지와도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걸어가더라도 어떤 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튜브 채널 '미국 주식으로 은퇴하기 - 미주은' 운영자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글로벌 호텔 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한 호텔리어였다.


여러 나라에서 호텔 총 지배인으로 일하며 쌓은 경험, 그리고 이후 전혀 다른 분야로 방향을 바꾼 과정은 흔히 떠올리는 자기 계발서의 성공 공식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보다, 지금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노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노력만으로는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점이다.

저자는 1973년생으로, 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꿈보다 정해진 순서를 먼저 배웠다고 설명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전된 직장을 얻어 오래 버티는 것이 자연스러운 목표였던 시절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참고 견디는 시간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믿어왔고, 성실함 자체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저자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살아왔지만 해외연수를 계기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외국에서 토론 중 우연히 들은 질문 하나가 그의 시야를 바꿨다는 대목은 오래 남는다. "왜 힘들면 다른 나라에서 살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말은 당시에는 단순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 당연했던 세대들에게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선택지였을 것이다.




숙한 방식 안에서 더 버티는 것보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순간이었고, 이후 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면으로 버티기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지 먼저 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2007 -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영국에서 갑자기 실직했을 때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자리를 잃었지만, 과거 콘퍼런스에서 맺은 인연이 한국의 새로운 자리를 연결해 주었다.

결국 눈앞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던 태도가 시간이 지나 다른 형태로 돌아온 셈이다.

저자가 늘 마음에 두고 산다는 문장, "가장 중요할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이 장면에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도네시아의 경험도 흥미롭다. 문화도 종교도 다른 환경이었지만 결국 통하는 것은 친절, 예의, 정직, 성실 같은 기본적인 태도였다고 한다.

직원 수백 명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고 먼저 다가가 악수하고 안보를 묻는 일들이 그를 신뢰받는 총 지배인으로 만들었다. 영어보다 더 강한 언어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란 말도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의 동생 사례도 같은 맥락에서 기억에 남는다. 무역 학과를 중퇴하고 음악을 선택한 뒤, 오랜 시간 한 길을 버틴 끝에 결국 교수의 길에 올랐다고 한다. 쉽게 조건부터 따지기보다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태도가 결국 변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책의 메시지가 다시 선명해진다.





후반부에서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관계를 과감히 정리하는 태도도 눈에 들어왔다. 악성 댓글은 바로 삭제하고 차단한다는 부분은 처음엔 다소 단호하게 느껴졌지만, 곱씹어 보면 왜 굳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불필요한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참고 견디는 것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결정 이후의 태도였다. 저자는 선택한 뒤에는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 이후에는 자신의 결정을 믿는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방향 없는 성실함으로는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오래 버티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노력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스스로 자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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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부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돈의 문법 세계척학전집 3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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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YouTube '이클립스' 채널은 예전부터 이름을 자주 들었지만 책으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계척학전집 훔친 부 편>은 철학이나 심리학처럼 멀게 느껴지는 학문이 아니라, 누구나 매일 부딪히는 돈의 문제에 중심을 둔다는 점에서 먼저 눈길이 갔다.

경제를 쉽게 설명하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돈이 왜 인간을 움직이는지, 왜 우리는 쉬지 못하고 계속 달리게 되는지를 철학과 경제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읽는 동안 단순히 경제 지식을 얻는다는 느낌보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돈의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이유는 돈을 숫자나 자산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관점을 끌어와 돈을 '합의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금이나 곡식처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교환의 기준이 되었지만, 지금은 돈은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동한다는 것이다. 종이 한 장 자체는 특별한 힘이 없지만, 그것으로 물건을 사고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프롤로그에서 소개되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단순히 욕심의 교훈으로 다루지 않고,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구조와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다시 읽히는 부분이 있었다. '레프 톨스토이'가 만든 파홈이라는 인물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끝없이 걷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모든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못한다. 결국 죽은 뒤 그에게 필요한 땅은 한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뿐이었다.

책은 여기서 단순히 욕심을 경계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와 구조를 보여 준다. 지금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승진, 이직, 투자, 내 집 마련, 노후 준비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내려놓기 어렵다. 모두가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만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사람이 "막스 베버'다. 그는 왜 현대인이 쉬지 못하는지를 종교적 배경에서 설명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 된 이유, 직업의 성공이 곧 구원이 징표가 되었던 역사, 그리고 그 종교적 의미는 사라졌지만 노동 윤리가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책에서 말하는 '쇠우리'라는 표현처럼, 우리는 이유를 다 알지 못한 채 불안 때문에 계속 일하는지도 모른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토마 피케티'의 공식이다.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빠르다는 설명은 왜 열심히 살아도 격차가 쉽게 줄지 않는지를 단순하게 보여준다. 누가 더 성실했는가 보다 출발선 자체가 결과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는 말은 현실적으로는 씁쓸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지나치게 탓하지 않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구조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미인대회 비유도 흥미롭다. 시장은 가치보다 기대가 먼저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할 것을 맞추는 게임이라는 말은 주식이나 비트코인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가치가 크게 바뀌지 않아도 기대가 몰리면 가격이 급등하고, 기대가 꺼지면 급락한다. 결국 돈의 세계는 숫자보다 심리와 집단의 움직임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설명 방식이었다. 철학자나 경제학자의 문장을 단순히 인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이 살던 시대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풀어 준다. 그래서 철학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넓게 읽었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다만 이 책은 해결책을 직접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어떤 전략으로 자산을 불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구조를 보여준다. 돈은 숭배할 대상이 아니라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도구라는 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그래서 읽고 나면 당장 답을 얻었다기보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최소한 돈을 절대적인 실체처럼 두려워하기보다, 인간이 만든 규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거리감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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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After 50
할 엘로드.드뤠인 J. 클라크 지음, 윤영호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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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요즘은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숙한 표현이 되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실제로 미라클 모닝을 거의 1년 가까이 해본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기록하며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은 분명 만족감이 있었다.

다만 생활 리듬상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 After 50 >을 봤을 때 반가웠다. 예전에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지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인 할 엘로드는 자신의 삶에서 큰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20대에는 음주운전 차량 사고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았고, 이후에는 경제적 위기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단순한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삶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라클 모닝의 핵심인 S, A, V, E, R, S다.

침묵(Silence), 확언(Affirmation), 시각화(Visualization), 운동 (Exercise), 독서(Reading), 기록(Scribing).

이 6 가지 실천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책은 그것을 50대 이후 삶의 속도와 몸 상태에 맞게 다시 설명한다는 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의 섬세한 접근 방식이었다. 보통 자기계발서는 실행력과 성과를 강조하면서 빠르게 변화를 만들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이가 들수록 생활 리듬이 달라지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먼저 받아들인다. 무조건 일찍 일어나라고 하기보다 왜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운지부터 설명한다. 수면 문제, 운동 부족, 생활 습관, 영양 상태 같은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씩 짚어주고, 그에 맞는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잠들기 전 다음 날 아침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먼저 만들고, 알람 시계를 침대에서 먼 곳에 두고,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시고 몸을 움직이는 단계를 설명한다. 처음 읽을 때는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새로운 습관은 결국 이런 작은 단계에서 시작된다. 이미 미라클 모닝을 해 본 사람에게는 익숙할 수 있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나 나이가 들어 생활 패턴을 바꾸는 일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이런 세심함이 오히려 큰 장점이다.




나는 원래도 야간형 인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늦게 자는 편이었고, 직장 생활을 할 때 미라클 모닝을 병행했을 때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저녁 시간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분명 집중은 잘 되고 책 읽기나 필사도 즐거웠지만, 밤에 충분히 자지 못하면 결국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다시 조절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저자인 드웨인 J.클라크가 함께 쓴 부분도 인상적이다. 기억력, 생활 리듬, 에너지 관리처럼 실제 나이가 들수록 중요해지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짚어준다. 그래서 기존 미라클 모닝보다 조금 더 생활 밀착형으로 읽힌다.

운동 부분도 부담스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병원에서도 자주 듣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는 오래 앉아 있기보다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건강이 빠르게 떨어질 수 있고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걷기나 가벼운 활동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운동을 거창한 목표로 제시하기보다 지금 가능한 범위에서 시작하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이제 늦었다"가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준다. 나이가 있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뭔가 생활에 맞게 방식을 바꾸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권하는 책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달라지는 시기에 자신을 다시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 만큼, 나역시 하루에 한 가지라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클모닝After50 #미라클모닝 #할엘로드 #필름 #자기계발도서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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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영화관
시미즈 하루키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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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시미즈 하루키의 <천국 영화관>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영화관이라는 공간으로 풀어낸 일본 감성 소설이다. 설정만 보면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를 되묻게 하는 이야기다.

기억을 잃은 채 천국에 도착한 청년 오노다 아키라는 '천국 영화관'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천국에 도착한 사람들의 인생이 담긴 영화를 함께 보게 된다. 각자의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 지나간 사랑, 미처 풀지 못한 후회가 담겨 있다. 읽다 보면 내 삶에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천국조차도 완전히 비현실적인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점이다. 오노다가 처음 눈을 뜨는 곳은 푸른 언덕과 들꽃, 길게 이어지는 노을이 있는 풍경인데, 낯설지만 이상하게 편안하다. 그리고 그 언덕 끝에서 발견한 작은 극장이 바로 천국 영화관이다. 대형 극장이 아니라 오래된 소극장 같은 분위기라는 설정도 일본 소설 특유의 정서를 잘 살린다.

천국 영화관에서는 한 사람의 생애가 한 편의 영화로 상영된다. 영화가 끝나면 그 사람은 천국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그 미지의 여백이 오히려 이 작품의 분위기를 만든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노년의 여성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평생 함께 여행하던 남편과의 기억, 시간이 지나며 어긋난 기억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돌아보게 되는 마음이 인상적이다. 특히 꽃 한 송의 의미가 뒤늦게 연결되는 장면은 짧지만 오래 남는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너무 평범해서 영화가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 직장인의 인생이 나온다. 반복되는 출근,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 속에서도 단 하루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여기서 지배인 아키야마가 말하는 "좋은 영화는 줄거리보다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는 말은 이 작품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부모를 향한 마음은 늘 뒤늦게 무거워진다. 더 잘하고 싶지만 결국 다 해내지 못했다는 감정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꽤 마음이 아팠다.

후반부의 야마토 이야기는 분위기를 다시 바꾼다. 짧은 생을 보낸 아이의 시간이 천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예상보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설정이 단순하지만 강하게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노다 자신의 영화가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금까지 타인의 삶을 바라보던 인물이 결국 자신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이 소설이 왜 죽음보다 삶의 이야기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흐르다가 후반부에 감정이 서서히 모이는 구조라서,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힐링 소설이 가진 힘이 바로 이런 데 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어도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부담 없이 읽히면서도 마지막에는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품이다.



#천국영화관 #시미즈하루키 #하빌리스 #인생영화 #일본소설추천 #힐링소설 #책리뷰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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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바라던 바 - 삶과 책이 있는 위스키 바, 그 잔에 담긴 이야기
정성욱 지음 / 애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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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정성욱의 <어쩌면 바라던 바>는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바라던 바'라는 말 안에는 오래 마음속에 품어온 삶의 모습이 담겨 있고, 동시에 실제로 저자가 운영하는 위스키 바라는 공간이 함께 들어 있다. 갈색빛 표지 위에 놓인 의자, 위스키 병, 잔, 책, 그리고 은은한 조명은 이 책이 어떤 분위기를 품고 있는지 먼저 보여준다.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저자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세종 특별 자치시에서 위스키바 '산문'을 열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술을 따르며 사람을 만나는 삶. 이 책은 그 선택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현실과 감정을 지나 지금의 공간으로 이어졌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책은 크게 네 개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바를 열기까지 과정, 다음은 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대한 생각, 마지막으로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단순히 '바를 차린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과정에 더 가깝게 읽힌다.

정성욱은 건축학을 전공하고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지만 오래도록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지만 퇴근 후 원고를 쓰는 일이 오히려 더 살아있는 시간처럼 느껴졌고, 로컬을 주제로 글을 쓰며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었다.

결국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며 바 운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바텐딩 기술부터 손님을 대하는 태도, 조명과 음악까지 하나씩 익혔다. 술을 만드는 일은 겉보기보다 훨씬 섬세했다는 그의 고백도 인상적이다. 셰이킹의 리듬, 얼음의 소리, 계량의 작은 차이가 맛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한 잔의 술 뒤에 얼마나 많은 감각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세종에 바를 열기로 한 이유도 흥미롭다. 저자는 세종이 살기에는 편리하지만 오래 머물며 마음을 둘 공간은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깨끗하고 체계적이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취향을 나눌 장소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였다가 다시 흩어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가 '산문'이었다.

'산문'이라는 이름에는 저자의 태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산문은 정해진 운율 없이 자유롭게 이어지는 문장이다. 그는 삶도 그렇다고 말한다.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망설임과 우연, 선택과 후회가 함께 쌓여 결국 한편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래서 바 역시 완벽하게 꾸며진 공간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대리석 대신 밝은 상판을 두고, 흰 벽을 만들고, 한쪽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자리까지 마련했다. 위스키 바 안에 책이 함께 있다는 설정은 처음엔 낯설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첫 손님 이야기 역시 오래 기억된다. 외부 간판도 없이 건물 3층 한쪽에 조용히 자리한 공간으로 한 손님이 들어와 '올드패션드'를 주문했을 때, 저자는 식은땀이 흐를 만큼 긴장했다고 한다. 준비는 오래 했지만 실제 손님 앞에서는 모든 감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손님이 한 잔을 마시고 "맛있다"고 말했을 때,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크게 남았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저자는 그 손님을 산문의 프롤로그를 써 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도 결국 현실이 되면 책임과 체력, 경제적 부담이 따라온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얼마나 오래 붙을 수 있느냐는 태도라고 한다. 이 부분은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라는 공간이 가진 역할이다. 저자에게 바는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자리다. 혼자 와서 책을 읽는 사람,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머무는 사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까지.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처럼 등장한다. 익숙한 관계에서 꺼내기 어려운 말이 낯선 공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도 공감되었다.

읽는 동안 전체 분위기는 화려하다기보다 차분하다. 어른의 속도로 흘러가는 이야기 같고, 들뜨지 않지만 묵직하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좋아하는 것을 삶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만든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위스키 바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자리를 조금씩 만들어 가는 사람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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