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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엽산 편지 - 원임덕 스님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산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원임덕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 이 리뷰는 체크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쓴 글입니다.

원임덕스님의 <연엽산 편지>는 문경 연엽산 연지암에서의 수행 생활을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기록한 산문 에세이다. 봄,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된 이 책은,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행자의 일상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저자는 화려한 깨달음이나 교훈을 앞세우기보다, 산중에서의 하루를 살아내는 과정 자체를 기록하며 삶의 기본 조건에 대해 묻는다. 물과 불, 먹을거리처럼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는 요소들이 이 책에서는 생존과 수행의 핵심으로 등장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엽산 편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산중 에세이다. 자연의 변화와 수행자의 하루가 함께 놓이지만,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자연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연엽산 깊은 암자에서의 삶은 고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노동과 불편함의 연속이다. 특히 반복해서 등장하는 '물'에 대한 이야기는 수행 이전에 삶의 기본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 동안 모든 것이 얼어 물을 아끼며 살아야 했던 시간, 결국 우물을 파게 된 과정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사는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사계절의 기록은 각각 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 봄에는 냉이와 달래, 쑥을 캐며 생명의 기운을 체감하는 시간이 담겨 있다. 산속의 봄은 늦게 오지만,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기쁨도 깊다. 냉이를 넣은 된장국, 쑥을 넣은 수제비를 끓이는 장면에서는 글자 사이로 냄새와 온기가 전해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쳐지고, 이제는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떠오른다.
여름에는 폭우로 인한 피해와 복구의 과정이 등장하며, 혼자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 드러난다. 가을은 자연의 질서가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로, 인간 세상의 혼란과 대비되듯 담담하게 그려진다. 겨울의 연엽산은 유난히 빨리 찾아오고, 김장을 마치며 한 해를 정리하는 모습 속에는 긴 시간을 견뎌온 수행자의 리듬이 느껴진다.

시인이자 수행자인 저자의 글은 일상의 감각에서 출발해 사회의 범위를 점차 넓혀간다. 한 가지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자연과 삶에 대한 큰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는 흐름이 빠르게 전환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확장은 독자에 따라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알기는 칠월 귀뚜리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저자의 언어 감각과 수행자의 태도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안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 섣불리 앞서 나서지 말라는 메시지는 이 책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서는 공동체의 온기가 스며있다.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이웃들, 김치와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행이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타인의 믿음이 저자의 믿음을 지탱하고, 그 믿음이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한다.
<연엽산 편지>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조용히 말을 건네는 책이다.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머물며 읽을 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활의 조건과 마음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