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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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실 처음에는 "일상을 잠식하는 유채색의 공포"라는 홍보 문구 때문에 공포, 추리 소설로 오해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내 붙잡는 것은 공포의 자극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 속에 남겨진 가족의 기억과 외면된 감정들이다. 시신이 발견된 집과 폐허 같은 공간은 무대를 제공할 뿐,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사람에게로 되돌아온다. 도입부의 자작나무 숲은 사건을 예고한 듯 빛나지만, 결국 이 소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집'이라는 공간에 묶인 삶과 그 안에서 침묵해온 인물들이다.




이야기 출발점은 곡교산1번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집이다.

유명한 '쓰레기집'을 취재하던 유튜버가 드론을 띄우다 폐지 더미에 깔려 숨진 노인을 발견하고, 경찰과 공무원, 청소 업체가 현장에 투입된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집안을 정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믿기 힘든 장면이 드러난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발견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설은 여러 인물의 삶으로 뻗어나간다.

과거 이 집을 담당했던 공무원 정보하, 쓰레기를 모으며 집을 지켜온 할머니,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싼 가족들. 겉으로 보면 미스터리 구조를 띠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중심은 '누가 무엇을 했는가' 보다 '왜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는가'로 이동한다.

쓰레기집은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공허와 상실, 포기와 집착이 쌓인 결과다. 호더로 불리는 할머니 역시 괴물처럼 묘사되기보다, 가족이 떠난 뒤에도 그 공간에 묶여 살아온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 집은 생을 버티게 한 유일한 세계였고,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을 하나같이 무너진 상태다. 경제적 실패 이후 삶을 포기한 아버지, 돌봄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 방치 속에서 어른이 된 아이들. 이 작품이 읽기 힘든 이유는 극단적인 폭력 때문이 아니라, 너무 익숙한 현실의 결핍을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 거부증'에 대한 서술은 강렬하다. 아이가 자신을 거부하는 엄마의 몸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작게 숨어 있었다는 표현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가족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말해지지 않은 채 숨겨질 뿐이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자작나무 숲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한밤중 달빛에 비친 하얀 자작나무 숲은 아름답기보다 불안하다. 이 '환함'은 안심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정적처럼 느껴진다. 김인숙은 공포를 소리나 충격으로 만들지 않고, 풍경과 분위기로 먼저 예고한다.

이 장면은 소설의 끝에서 다시 호출된다.

처음에는 죽은 할머니에게 말을 걸며,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장면이 멈춘다. 그러나 마지막에 같은 장면이 반복되며 단 한 문장이 덧붙는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지만, 물어볼 사람은 하나 더 있다는 문장이다. 그제야 독자는 처음 그 숲에 함께 있었던 죽은 이가 할머니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소름이 끼칠 만큼 인상적이다.

<자작나무 숲>은 결말에서 사건의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답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이 소설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질문은 하나다. 이 첩첩이 갇힌 삶에서 과연 누가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되며 서사는 분명해졌지만, 여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공포로 시작해 가족의 얼굴을 드러내는 이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인식 자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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