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쓴 아빠의 일기 - 상처를 품은 아빠, 남극에서 희망을 말하다
오영식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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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오영식 작가는 대기과학을 전공해 기상청 예보관과 환경부 사무관을 거쳐, 남극 세종기지 제 8차 월동대의 대기과학 연구원으로 파견되었다. 남극에서의 1년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 시간은 연구 일정과 미세먼지 예측 자료를 다루는 일상 이상의 의미였다. 남극의 고립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결핍과 마주하게 만든 시간이었고,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였다.

부모의 부재, 가정폭력, 가난 등 그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 경험들은 오랫동안 마음 한편을 눌러왔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어른이 된 후에도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을모르는 성향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만은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 마음은 책 곳곳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 남극에 머무는 동안 아들과의 영상통화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한국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매일의 글을 따뜻하게 만든다. 특히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소식을 남극에서 들으며 겪는 복잡한 감정은 글을 읽는 독자까지 마음아프게 한다. 곁에서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죄책감,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어머니를 향한 복잡한 마음, 그리고 늦게나마 이해하게 된 삶의 무게가 지긋이 눌러온다.

책에는 남극 세종기지에서의 실제 생활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남쉐틀랜드 제도 킹조지섬이라는 작은 섬에 9개의 기지국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여름, 갈라진 땅, 점차 사라지는 빙하에 대한 걱정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2024년 다시 남극을 찾았을 때 그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이 변화는 그가 환경 연구자로서 느끼는 책임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나 또한 지구의 변화가 결코 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이 책이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결국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한 진솔한 시선 때문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온전히 건네고 싶어한다. 9살 아들과 함께 유라시아를 자동차로 횡단했다는 사실만봐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와 시간을 채우고 싶어는지 알 수 있다. 어릴 적 결핍이 깊었던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아이에게 더 뜨겁게 다가가곤 하는데, 저자 역시 그 길을 묵묵히 걷는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삶이 얼마나 외로운 길이었는지 느껴졌고, 그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했던 지난 시간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주변의 도움 없이 버텨온 그 시간들은 오히려 지금의 강함으로 이어졌고, 남극이라는 극한의 환경조차 그에게는 새로운 마음의 시험이자 또 하나의 무대였을 뿐이다.

<남극에서 쓴 아빠의 일기>는 과학자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복원 과정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을 다잡고, 아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주고 싶은지 고민한다. 연구자, 아버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매일의 글로 기록한다. 남극의 바람 속에서, 그리고 어린 시절의 그늘 속에서 그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래서 이 책은 남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가족과 삶의 의미'를 차분하게 좇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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