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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 청년 가장 ㅣ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김도희 지음 / 제이에스앤디(JS&D) / 2024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정조 시대 경북 선산. 10대 소년 노상추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상실감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된다. 1권에서는 밥상에 놓을 양식을 마련하고, 집안 일을 챙기고, 글공부까지 해야 하는 노상추의 분투가 이어진다.
양반이라 해도 현실은 팍팍했고 어린 나이에 책임을 떠안은 청년의 마음이 차갑게 전해진다. 가족간의 애정과 갈등, 생계의 압박 등이 조선 후기의 일상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였다. 17살에 집안을 꾸려야 하고 과거도 준비해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웠을 노상추의 삶은 그 자체로 고단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형에게 약속한 입신양명을 이루고자 애쓰지만 마음 먹은 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일기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시대에는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짧고 불안정했는지 매 장면마다 실감하게 된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가 지혈을 못해 세상을 떠나고, 아이를 낳다 생을 마감하는 장면들은 특히 마음이 먹먹했다. 예전에 조선 시대 평균 수명이 24세란 말을 듣고 웃었던 적도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이 더는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2권에서는 그의 삶이 또 한 번 꺽인다. 글과 공부를 좋아했던 상추는 원래 문과를 꿈꿨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되고, 결국 무과 준비로 방향을 튼다. 활제작, 체력 단련, 관계 형성 등 당대 무과 준비 과정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살아있는 기록처럼 읽힌다.
가장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던 상추는 어떻게든 집안을 지키고자 했지만, 뜻대로 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형편에 맞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고, 어머니와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상추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그는 스스로를 '의지가 부족하다'고 자책하지만, 기록을 따라 읽다 보면 누가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양반이라 해도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않으면 과거 준비가 쉽지 않았고, 결국 무과로의 전향도 선택이라기 보단 생계와 가족을 위한 필연에 가까웠다.

3권은 숨이 찰 정도로 긴박하다. 고향과 한양을 수차례 오가며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생생한 디테일로 이어진다. 무과 시험이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라 체력, 정신력, 날씨, 운까지 좌우하는 고된 시럼이었다는 점이 강하게 다가온다. 실패와 부상을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과녁앞에 서는 상추의 모습은 집안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던 그의 삶과 겹쳐 보인다.

이 시리즈는 역사 소설인 동시에 생활기록물로 읽힌다. 전염병, 흉년, 장례 절차, 관혼상제, 노비와 양반의 관계 같은 세부 묘사들은 모두 실체 노상추의 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록은 허구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노상추가 적어 내려간 글들은 살아온 흔적 그 자체였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가 이것은 "기록의 힘" 이라고 햇던 말이 떠올랐는데, 이 시리즈가 딱 그런 책이다. 기록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 사람의 삶을 또렷하게 불러낸다는 사실을 이 책이 증명한다.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 합격기>는 과거 시험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결국 한 청년이 삶을 버티고 성장해 가는 기록이다. 시대는 달라도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더 좋은 내일을 만들고 싶은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을 견뎌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싶은 독자에게도 편안하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