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 - 한 줄 필사로 단정해지는 마음
조미정 지음 / 해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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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필사에도 음악처럼 프렐류드가 있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조미정 작가의 <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를 펼치자마자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필사를 '전주곡'에 비유하다니, 얼마나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일까. 펜을 들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종이에 잉크가 스며드는 그 순간. 마치 손끝에서 한 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필사를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고요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바라본다. 글자를 옮겨 적는 시간이야말로 세상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는 그런 작가의 오랜 경험이 담긴 책이다. 잔잔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독서와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하다.





조미정 작가는 2018년 가을, 우연히 시작한 필사에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유튜브 채널 <재밌어서 씁니다>를 운영하며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온라인 필사 모임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연결됐다. 그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그녀는 책과 기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졌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면의 평온을 되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


1장 '멈춤 -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마음'

2장 '호흡' - 잊었던 리듬을 찾는 방법'

3장 '고독' - 혼자가 편안해지는 시간'

4장 ' 고요 - 비로소 홀로 머물 수 있는 마음'


각 장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필사하며 마음을 붙잡은 문장들이 담겨 있다.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헤세, 한용운, 카프카 같은 작가들의 글이 조미정의 손끝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챕터 '고요'

"우리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이 문장은 믿음과 평온,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글을 옮겨적는 그 행위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치유받는다.



책의 물리적 구성도 매력적이다. 펼침이 좋은 누드 제본이라 필사하기에 편하고, 각 페이지에는 따라 쓸 수 있는 공간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저자의 문장, 인용된 문장, 그리고 내 손글씨가 한 페이지. 이게 어우러지는 순간, 그 자체로 '나만의 기록'이 된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다른 문장을 선택하거나, 같은 문장을 보고도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경험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필사를 통해 나와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는 과정은 이 책이 가진 진정한 가치다.

<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는 요즘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글을 옮겨 쓰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중심을 되찾고, 다시 평온을 배운다.

"검은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며 음표가 글자로 흘러나옵니다."

이 한 문장처럼, 필사는 결국 우리 마음을 연주하는 가장 조용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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