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필사는 아침에 글은 밤에 쓴다. 나름의 규칙이다. 아침은 하루를 여는 다짐의 시간이고, 밤은 조용히 마음을 풀어놓는 시간이다. 활기찬 아침도 일터의 피로와 오후의 잡담 속에서 조금씩 무뎌진다. 그러나 밤이 되면 다시 마음 깊은 곳이 차오른다. "괜찮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펜을 든다.
필사는 나에게 신성하다. 문장을 다듬고 내 마음을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나에게, 필사는 아침이 맞다.
그런데 오은 시인은 밤에 오라고 한다. 그는 "깊은 밤 한 문장씩 쓰다 보면 우리는 착해진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이끌려 밤으로 향한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바로 그 순간을 담은 필사집이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의 필사집 2권 세트 중 하나다. 두 시인의 결은 확실히 다르다.
유희경이 일상의 밝음 속에서 기다림의 애틋함을 이야기한다면, 오은은 밤의 장막 속에서 잊고 있었던 추억과 상념을 꺼내 보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절로 밤이 스며든다. 오래전 두고 와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저자의 말처럼 글은 마음에 깃들이고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오은 시인의 문장은 담담하지만 속에 열정을 품고 있다. 그의 문장은 밤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글,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보는 눈이 많은 낮 보다 무언가 차오르는 밤에 펜을 든다'라는 구절에서 시선이 멈춘다. 밤이 모든 것을 지워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일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나 역시 벅차오르는 밤이면 펜을 든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조금 더 착해진다.
책의 후반부에는 유희경 시인이 '어깨가 넓은 은에게'라는 글을 덧붙인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잔잔히 배어 있다. 삶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같은 길을 걷는 두 시인의 우정이 부럽다. 이 책은 그 고요하고 단단한 위로를 전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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