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필사를 하기 위한 책의 조건이 있다. 일단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그리고 책이 예쁜가. 옮겨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문장은 손이 가지 않고, 자꾸 손에 들고 싶지 않은 책은 쉽게 먼지가 쌓인다. 그런 점에서 <천천히 와>는 그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한다.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고 고요하며, 책의 디자인은 자주 펼치고 싶은 마음을 부른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기다림'이라는 한 주제가 온전히 깃들어 있다. 시인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만든 문장들이 쓰는 이의 손끝에서 조용히 깨어나 이야기를 한 글자씩 이어간다.

<천천히 와>는 기다림의 시간을 종이에 옮겨 놓은 듯한 필사집이다. 유희경 시인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그리고 오길 기다리는 사람.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천천히 와>는 그 호흡과도 같다. "꼭 오라고, 천천히 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 속에는, 오지 않는 이를 향한 애틋함과 품어 안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책의 필사 부분은 시인의 어머니 손 글씨로 채워졌다. 어린시절, 가계부나 책 뒷면에서 종종 발견하곤 했던 어머니 글씨가 세월을 넘어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것이다. 시인은 이 글씨를 보고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떠올렸다고 한다. 부모가 우리를 지켜주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당연하게 여겼던 나날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를 지켜주던' 시절을 떠올렸다.
책의 말미에는 오은 시인의 글이 실려 있어, 또 다른 시신이 덧 입혀진다. 서점을 운영하며 9년 동안 손님과 시집을 맞이해 온 유희경의 일상이 잔잔하게 전해진다. <천천히 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시선을 느리게 하여 사유를 깊게 만드는 한 권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읽고 쓰는 과정에서 책의 온기가 배어 나온다. 필사를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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