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소설을 자주 읽는 것 같다. 1년에 한 권에서 두 권 남짓하게 읽은 것 같은데 벌써 근래에만 두 권을 읽었으니 독서 범위가 조금 넓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번에 읽은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은 사실 애매한 계기로 읽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친한 친구였으니, 햇수로 4년 째 되는 친구가 "이 책 읽는데 딱 니 생각이 났어"라고 하는데, 표지부터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욕 같기는 한데, 어떤 의미의 욕인지 알려고 읽어봤다. 근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평에서 썼던 것처럼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불친절하게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놓고 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작가의 의도 같은건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글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고, 그 생각들이 꽤 흥미있었다면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니까. 요약이나 설명 같은건 생략한다. 사실 못하는거다. 그리고 줄거리를 알고 보는 소설만큼 재미 없는 것은 없을테니, 추천하겠다고 서평 쓰면서 요약해버리는 것도 못된 짓 같아서 생략한다. - 사실 귀찮아서다. - 그래서 그냥 읽으면서 한 잡상 정도만 남겨 본다. 


 이 책은 제목에 충실하게도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글이 전부다. 그래서 내 잡상도 거의 다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것들이다. 우선 오베라는 남자의 운명에 대한 인식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오베라는 남자도 그렇지만 나도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이 복잡한 세상에 모든 행위를 사전에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운명은 'WHO'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할지 어떻게 할지 따위는 사실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사전에 뭔가를 계획한다면 '누군가를 만날 것이냐'에 대해서 정할 것 같다. 어차피 빈 손으로 태어나서 빈 손으로 가는 삶에서 제일 중요한건 WHO이지 WHAT은 아닐 것 같다. 


 오베라는 남자는 까칠하고 원칙주의자이면서 괴팍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의 까칠함과 원칙주의와 괴팍함의 유일한 예외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의 아내 소냐다. 소냐는 그의 기준이며 곧 원칙이면서 예외이다. 이 모순적인 대상인 소냐는 까칠하고 원칙주의자이면서 괴팍한 오베라는 남자와 달리 친절하고 활발하면서 밝은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는 사람이다. 오베라는 남자와 부부가 된 것부터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모순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까칠함으로는 그녀를 도망가게 만들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오베라는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베라는 남자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그가 고슴도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는 어머니가 없이 아버지와 살았었다. 그의 아버지는 과묵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원칙이 존재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오베가 채 다 크기도 전에 사고로 오베의 곁을 떠나버린다. 결국 오베는 10대 시절 세상이라는 곳에 혼자 던져진 것이다. 오베의 아버지는 원칙적이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였지만, 큰 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기에 사망 당시 오베에게 큰 유산을 물려주지도 못한다. 그러면 던져진 세상이라도 좀 그를 친절하게 다뤄줘야 할텐데, 그의 주변은 절도 행위를 오베에게 뒤집어 씌우는 남자, 도시 경관 정리를 위해 오베가 애써 지은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소방관의 화재 진압을 지연시키는 '하얀 셔츠 입은 남자' 등이 존재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까칠함과 원칙 그리고 괴팍함으로 무장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고슴도치 같은 오베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오베라는 남자가 '친절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가시는 이를테면, 검사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연 그가 친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구분해주는 감지기 말이다. 


 오베가 '친절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감상은, 오베의 행동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반목한 이웃의 집 라디에이터를 궁시렁 거리면서 고쳐주는 행동, 전형적인 '민폐 덩어리' 파르바네를 결국 외면하지 못하는 행동, 그리고 지미, 패트릭에 대한 그의 태도, 마지막으로 그가 '덜 싫어하는' 고양이를 결국 책임지는 모습까지 항상 날카로운 가시를 들이밀면서도 그는 그 가시 안으로 들어오려는 존재를 막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베는 친절하고 싶은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들어서 소설을 조금씩 읽으면서 소설 읽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는 그런 재미에 불을 붙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 다루고 있는 대상도 주변에 꼭 하나는 있을 법한 "까칠한 할아버지"라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직설적이고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는 '행동'을 통해서 너무 자명하게 진의가 들어나는 사람이라서 인물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재미도 있다. 이정도면 나름 좋은 작품 아닐까? 


 그리고 누구나 가슴 속에 오베라는 남자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 오베라는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지 작은지의 차이만 있을 뿐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서 추천하고 싶다. 


P.S  빌어먹게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베라는 남자의 심정에 매우 동감했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봐도 오베와 크게 다른 행동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동시에 소냐라는 오베가 깊이 빠진 아내의 모습에서 내 이상형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속의 오베는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품인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글 2018-01-0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어떤 종류의 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