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배우는 데이터 과학 - 통계, 수학, 머신러닝, 프로그래밍까지 데이터 과학자를 꿈꾸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최고의 안내서
필드 케이디 지음, 최근우 옮김 / 한빛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서평을 남깁니다. 요즘에는 서평을 남기기 애매한 교과서류의 책을 주로 보고 있어서 서평을 남길 일이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조금은 말랑한 책을 본 터라 기회가 될 때 서평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다만, 오랜만에 서평 글을 쓰다 보니 다소 글이 어색할 수 있다는 점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서평을 남기는 책은 [처음 배우는 데이터 과학]이라는 책입니다. 한빛미디어에서 출간한 데이터 과학에 대한 서적입니다. 저는 책을 볼 때나, 고를 때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목차'입니다. 책의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도 목차 때문이었습니다. 데이터 과학을 위한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을 시작으로 데이터 과학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들(머신러닝 개념, 데이터 과학의 개념 등), 기본적인 통계 및 확률이론,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과학에 관련된 일련의 주제들을 전부 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적이 논문이나 유명인의 블로그에 비해서 우위를 갖는 부분이 어느 정도 깊이를 갖고 있으면서 큰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목차 구성을 갖고 있는 책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본 후에 감상도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데이터 과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키워드를 다 다루고 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처음 데이터 과학을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아닙니다. 

 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인데, 개별 주제에 대한 설명이 조금 많이 부족합니다. 예컨대, '푸리에 분석'에 대한 설명이 코드를 포함해서 2페이지밖에 안됩니다. 앞서 서적이 다른 매체에 비해 갖는 장점이 적당한 깊이를 갖고 있으면서, 큰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사실 적당한 깊이를 갖고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개별 키워드에 대한 설명이 정말 부실합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 원서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제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Handbook'입니다. 핸드북이라고 하면 이해가 가는 구성이자 내용입니다.  




추가로 추천사도 이해가 갔습니다.

"방대함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또한 문장이 쉽고 코드와 도표의 배치가 적절해서 많은 개념을 빠르게 살펴보기에 제격이다. 두툼하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이 신기한 책의 일독을 권한다." 
임백준 님 

"이 책은 체계적으로 데이터 과학을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 과학의 기초 개념과 분야별 지식을 폭넓게 소개한다. 데이터 과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과, 데이터 과학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한다."
- 김진영 님 

 네, 이 책은 "빠르게 살펴보기"에 좋은 "기초 개념과 분야별 지식을 폭넓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 배울 때 적합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이 책으로 시작을 하면, '뭔가 많은데 1도 모르겠다'라고 좌절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원서 제목에 맞게, 데이터 과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이후에, 공부한 주제들을 꿰어주는 목적으로 보면 크게 만족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C 언어다, 서현우의 C 프로그래밍 정복 - 동영상 강좌 1년 무상 수강권 제공, C 언어 표준 라이브러리 함수 완벽 수록
서현우 지음, 박상현.김성훈.김대정 감수 / 한빛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이것이 C언어다 - 서현우

  개인적으로 C라는 언어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C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언어들(어셈블리어라던가, B언어라던가)에 비해서는 인간친화적인 언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보다는 기계에 더 가까운 언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번거롭고 불편한 점이 많이 때문입니다. 특히 컴퓨터가 '귀한 컴퓨터느님'취급 받던 시기에 나온 언어라서, 컴퓨터의 동작원리에 가깝게 사고할수록 편리한 언어인데, 제가 C언어를 처음 접한 시점이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컴퓨터의 동작원리에 가깝게 사고할수록 편리한 언어인 C언어는 불편하면서, 어렵기만 한 언어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소프트웨어, 그것도 아주 고성능이 필요한 경우가(운영체제라던가, 운영체제라던가, 운영체제라던가) 아니라면 사실 좋은 대안이 워낙 많습니다. 한참 공부하고 있는 파이썬을 비롯해서, RUST, GO 등 훨씬 많은 기본 라이브러리를 제공하고, 고급 자료형을 탑재한 생산성 좋은 언어들이 좋은 대안입니다.  


  네, C언어 험담을 왕창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니 그렇게 C언어를 싫어하면서, 왜 C언어 책은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네, 만악의 근원 마법사 책이 문제입니다. 컴퓨터에 대해서 관심이 생긴 시기는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투자에 빠져들듯이 깊이 빠져들 만큼 흥미를 느끼진 못했었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법사 책(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해석)을 보고 나서부터 조금 달라졌습니다. 분명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컴퓨터라는 도구가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프로그램이라는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는 매뉴얼 자체도 아주 단순한 행위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려워도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 녹녹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원리를 이해하는 일은, 녹녹지 않은 과정을 감수할 만큼 큰 편익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f(x) = 25 + 3x + x^2'이라는 함수가 있다고 할 때, 'f(x) = 25 + 3x + x^2'라는 함수의 식을 알고 결괏값을 보고 규칙성을 찾아내는 것과 f(1) = 29, f(2) = 35, f(3) = 43이라는 결괏값만 보고 f(4)의 값을 추정하는 것 간의 차이만큼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논리적 객체를 다룰 때,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과정을 블랙박스로 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학습 효율이 현격하게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C 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바로 위의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파이썬 같은 아주 폭넓은 패키지를 제공하고, 언어 자체가 고급 자료형을 탑재하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생산성도 좋고 편리하고 쉽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파이썬과 같은 고급 언어는 편리하기 때문에 중간 연산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어떤 일을 해결하기에는 참 좋지만, 조금 더 내 경우에 최적화된 방법론을 고안할 때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더 최적화된 방법론'이 필요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파이썬만 공부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조금 더 욕심이 난다면, C언어와 같은, 사용자에게는 조금 더 번거롭고, 불편하고, 원시적인 언어를 공부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언어가 원시적이고, 컴퓨터에 가까운 Low-level 언어라는 점은 그 언어의 코드 그 자체가, 컴퓨터라는 기계가 동작하는 원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은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C언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고, 왜 하필 이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꼭 이 책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시중에 C언어 책이 참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C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KNK도 있고, C언어의 아버지 데니스 리치 옹이 직접 집필한 C&R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저자가 출간한 책들도 꽤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C언어다]라는 이 책도 좋은 교재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국문 서적'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영어권 국가에 살고 있었고, 영어가 모국어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KNK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블이고, 아예 C로 먹고사는 분들도 강추하는 책이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KNK는 영문으로 된 책입니다. 사실 기술서적은 영문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무래도 읽는데 들어가는 시간이나, 저자가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독자에게 상대적으로 '덜 친절하게 '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문 서적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C99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책이다"라는 점입니다. C언어는 컴파일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실제 코드가 컴퓨터에게 전해질 때는 무조건 '컴파일'이라는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아주 폭넓게 쓰이는 언어이기 때문에 형식도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국제표준 형식인 C99라고 생각합니다. C99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공부할 경우 어떤 컴파일러에서도 큰 무리가 없이 컴파일이 되고, 실행이 되겠지만 비표준 형식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공부할 경우 다른 컴파일러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제공한다"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미 C언어를 수차례 접해본 프로그래머나 전문가 수준의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은 KNK로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문 서적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아직 생소하고, 어려워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텍스트만 보고 따라 하는 것은 중간에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닌 말로 정말 텍스트만 보고 따라 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KNK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무료로 동영상 강의를 제공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책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실습을 하면서 막히는 부분이나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을 저자가 칠판에 글을 써가며 설명해주는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다시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저자의 책을 샀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파이썬으로 편하게 코딩하다가 C언어로 코딩을 하려니까 꽤 답답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컴퓨터 환경이 크롬북이기 때문에 Termux에서 GCC 컴파일러로 컴파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끝내는 시점이 되니, 확실히 공부하기 전보다 C언어뿐만 아니라 CS 관련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해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     


  **이 책은 한빛미디어의 나는 리뷰어다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6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주의, 역사주의와의 끝없는 싸움]


 결국 또 저질렀다. 고전은 당분간 안 읽을 생각이었는데, 요즘 사회 이슈를 보면서 그냥 문득 떠오른 책이 이 책이라서 고생 할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열린사회와 그 적들>라는 책을 펼쳤다. 

 

 칼 포퍼는 누구나 알다시피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개인적으로 20세기 사상가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다. 특히 그의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의 구분에 대한 통찰은 읽을 때마다 전율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곧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에 있어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포퍼는 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되살아나서 인류의 문화에 잠식하는 역사주의, 전체주의적 관점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함께 자유와 개인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참 읽을 때마다 어려우면서도, 또 시간이 지나면 찾게 되는 그야말로 고전이다. 


 이 책에서 칼 포퍼의 역사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은 플라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칼 포퍼가 플라톤에 대해서 전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뒤에 이야기 하겠지만 물론 플라톤에게도 긍정적인 인식을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와 그 후계자들의 국가에 대한 철학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다보니, 책을 보면서 "이게 플라톤 이론서야 아니면 칼 포퍼 책이야?" 싶을 정도로 플라톤의 이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알아야 깔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서평을 플라톤을 중심으로 써 내려가려고 한다. - 사실 전체적인 포퍼의 아이디어를 다 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건 솔직히 자신이 없다. -


 아, 플라톤에 대해서 알아가기 전에 일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의 구분에 대한 부분부터 알아보고 시작하자. 칼 포퍼는 법칙은 2 가지 분류가 있다고 말한다.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이다. 이 법칙의 두 가지 종류는 사실 '법칙'이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딱히 없다. 자연적 법칙은 영구불변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예외도 없다. 영구 불변이며 아무런 예외도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라는 것이다. 이 말인 즉슨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에는 반드시 속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로 자연에 적용할 수 있거나(이 경우 참된 진술) 적용 할 수 없는 엄격하고 일정불변한 규칙성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자연 법칙이 하나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어느날 이 법칙의 예외가 발견되었다. 그럼 더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진술'은 '법칙'이 아니라 '가설'이 된다. 이런 엄격한 자연적 법칙의 특성은 철저한 검증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예외'란 존재하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는 '진술'들은 예외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법칙'이고, 예외가 발견되면 '가설'이 되어버린다. 이 말은 동시에 '검증이 가능해야만 자연적 법칙이다' 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아예 구조적으로 예외가 존재할 수 없는 '진술'들도 있다. 예컨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라는 진술은 검증 가능한 성격의 진술이 아니므로 자연스레 자연적 법칙이 아닌 것이다. 검증 가능성, 예외, 일정불변한 규칙성, 법칙과 가설 이라는 키워드들이 정말 흥미롭다. 

 

 규범적 법칙은 말 그대로 인간이 규범적으로 정해둔 법칙들이다. 규범적 법칙은 당연히 법적인 규정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도덕적 규율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변경될 수도 있다. 진술 또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받아들일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없다' 처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존재한다. 다만 여기서 재미있는 특징은 규범적 법칙이 '의미를 갖고 있으려면', 그것은 파괴될 수 있어야 한다. 파괴될 수 없는 것은 규범화 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월소득보다 월지출이 많아서는 안된다.' 는 규범적 법칙이 될 수 있다.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갑에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지갑에서 꺼내지마라' 는 규범적 법칙이 될 수 없다. 저걸 무슨 수로 파괴하겠는가. 사실 규범적 법칙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은 '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파괴가능의 여부 라는 키워드도 또한 재미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주된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플라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플라톤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크라테스크의 저자이자, 아카데미아의 설립자이자 교장을 지낸 서양 철학의 거두다. 또한 귀족 계층에 속했었고, '철인정치론'이라는 국가 개념을 제시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철인정치론은 철저하게 계급을 분리해서 각 계급에 맞는 일만 하도록 하고, 사유재산과 귀금속을 금하고, 공동육아 제도를 시행함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플라톤의 이상적 국가 개념은 그의 '역사주의'와 '자연주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플라톤은 철저하게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 법칙은 '부패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즉 자꾸만 나빠져서 언젠가는 파국에 치닿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태초에 완전한 국가가 존재했고, 그 국가가 쇠퇴하면서 명예귀족정치체제가 등장하고, 그 체제가 쇠퇴하면서 과두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과두제가 쇠퇴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등장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쇠퇴하면 참주정이 등장한다. 이런 쇠퇴의 과정은 인종퇴화가 발생하고, 인종퇴화가 도덕의 붕괴를 초래하고, 도덕의 붕괴가 곧 정치의 붕괴를 가져오는 매커니즘을 통해서 발생한다. '인종의 퇴화'는 말 그대로 인간이 시간이 흐를 수록 열등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이런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런데 플라톤이 살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이해가 간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신'이라고 생각했다. 플라톤 본인의 가문은 '포세이돈'의 후손이라고 생각한 것이 단 적이 예이다. 즉 아주 옛날 조상은 신인데(이데아)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이 퇴화되어 현대에 플라톤은 인간이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됨으로써 야심과 재물에 대한 욕구가 이런 욕구가 도덕의 붕괴를 초래한다. 도덕의 붕괴는 사회적 부패를 초래하여 결국 계급투쟁으로 비화되고, 그 계급투쟁의 결과 정치 체제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 플라톤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왜 파시즘, 전체주의가 나오면 항상 '인종주의'가 같이 따라나오는지 알 수 있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순수혈통' 주창의 시발점은 바로 플라톤이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에서 철저한 계급의 분리는 생물학적 자연주의 관점에서 나온다. 이 생물학적 자연주의의 단초는 소크라테스가 제공한다. - 물론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이론적 노선이 다르다. - 소크라테스는 신체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설파한다. 영혼이 정신보다 더 중요하므로, 영혼은 본성을 결정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럼 이때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이런 정신적 본성을 갖고 있다고 결정할 수도 있고,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수처럼 배루를 채우고' 그런 고로 그들의 본성은 열등하며, 단지 몇몇 사람만이 정신적 공동체가 될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플라톤의 선택은 후자였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본성의 질을 나누고, 그 본성의 질에 따라서 계급을 구분한다. 계급은 본성의 질, 즉 영혼의 격에 따라서 구분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넘을 수 없다. 그리고 섞여서도 안된다. 이런 논리는 특정 계급 - 이성적 본성을 갖고 있다고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 - 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자연적'이라며 정당화하는데 사용된다.

 

'자연 = 본성 = 영혼' 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플라톤은 자신의 책 <국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자족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발생하는 거라네, (중략) 그 외에 국가에 정착하게 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인간들은 한 부락에 여러 원조자들을 모으지 그건 그들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야,(중략) 그리고 그들이 한쪽은 주고, 다른 쪽에선느 받아먹고 하면서 자기들의 상품을 분배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자기 이익을 늘려나가고자 하는 것 아닌가?" ... "본래 우리들 중의 어떤 두 사람도 똑같지는 않다. 각자는 자신의 독특한 본성, 즉 어떤 사람은 이런 유의 일에 알맞고, 어떤 사람은 저런 일에 안맞은 (중략) 독특한 본성을 갖는다. 인간은 여러 가지 기술에 종사하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단 한 가지 기술에 종사하는 것이 나은가? (중략) 분명히 각자가 자기의 자연적인 재능에 따라서 단 한 가지 직업에만 종사하는 것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고, 더 낫고 더 쉬울걸세"  

 맞는 말 같다. 위대한 정치경제학자 애덤스미스도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위대함에 대해서 논하지않았는가.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분업과 플라톤의 분업은 그 성격이 완전 다르다. 애덤 스미스의 분업은 '숙련'에 따른 효율의 증가를 이유로 한다. 즉 후천적인 요인이므로 스스로 결정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면 플라톤의 분업은 '본성'에 근거한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요인이므로 스스로 결정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분업의 대가가 누군가는 특권 계층으로서 살아가고, 누군가는 노동 계층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런 계층의 분류를 선천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한다면, 신도 아닌 같은 인간이!? 슬슬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인식되는가? 그렇다. 플라톤의 국가 체계는 철저하게 비평등적이고, 비인도적이다. 그리고 특권 계층으로 살아가는 좋은 본성을 타고난 사람들 조차도 사실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유재산도 없고, 경제적 금욕을 유지해야 하며, 자신의 아내도 없고 자신의 자식도 알 수 없다. 과연 행복하겠는가? 플라톤은 개인의 행복 따위는 중요한게 아니고, 사회 전체의 행복을 봐야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 연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어차피 사회의 구성원일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사회의 이익만 증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여기까지 읽고 "플라톤 또라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플라톤의 급진적인 생각은 그의 삶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플라톤은 굉장히 불행한 경험을 한다. 귀족주의자인 친구는 민주 시민들에 의해서 추방 당했고, 본인의 스승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다. 본인도 신변의 위험이 생겨서 해외로 망명 생활을 한다. 이런 불행한 생활을 한다면, 당연히 이런 불행의 원인이 무엇일까? 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역사주의 관점을 취한 플라톤의 답은 "변화"다. 변화가 문제인 것이다. 인종의 퇴화가 도덕의 상실이 부패를 부르고 이 부패가 계급투쟁을 발생시켜 결국 정치를 붕괴시키고 사회가 나락으로 치닿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사회의 변화 = 쇠퇴의 과정' 이라는 등식은 자연스럽다. 그럼 이제 플라톤이 할 일은 무엇일까? 변화의 추진력을 찾는 것이다. 왜? 제거해버려야 사회의 변화 같은 쇠퇴의 과정이 사라질 것이고 그래야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원인은 이미 알았다. 결국 "인종의 퇴화 - 도덕의 붕괴 - 계급투쟁 - 뻥! - 인 것이다. 결국 계급투쟁을 막아야 한다. 계급투쟁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변화가 사라지고 그래야 불행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계급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플라톤이 찾은 방법이 플라톤의 국가 개념에 드러나 있다. 1. 관리해야 할 대상을 좁히는 것이다 : 계급 투쟁은 결국 개인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개인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모든 개인을 관리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따라서 관리해야 할 대상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까? 정치에 있어서 권리를 일부 계급에게만 주고 나머지 계급은 그저 의무만 주면 된다. 그럼 나머지 계급이 가만히 있겠냐고? 권리 중에 '무기의 소지' 등 무력에 대한 권리를 포함시키면 나머지 계급은 분명 불만은 생겨도 투쟁을 할 힘은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계급의 구조에 드러난다. 플라톤 국가의 계급은 수호자 - 전사 - 노동자 로 구성된다. 수호자와 전사 외에는 무기 소지도 불가능하고, 군사적 목적의 육체 단련도 시키지 않는다. 고로 전사는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함과 동시에 국가의 체제를 방어한다. 결국 투쟁할 힘을 쥐고 있는 계급이 수호자와 전사 밖에 없다. 2. 관리해야 할 대상들 간의 단합 수준을 높인다 : 결국 투쟁할 힘을 쥔 계급들이 서로 반목하지만 않으면 체제는 안정된다. 그럼 이 계급들이 서로 단합하게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본성 자체가 너무 난폭하면 안된다. 이건 뭐 이미 본성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눴으니 해결이다. 그럼 단합을 할 기본적인 토양은 갖춰져있으니 환경만 만들어주면 된다. 환경은? 계급 간의 구간을 벌리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전사-수호자 계급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기본적 본성 자체가 나태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계급 외부의 위험 요인이 있으면 당연히 계급 내부적으로는 단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비인도적인 체제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런 비인도적인 체제가 주는 고통이 '사회의 변화'가 가져오는 불행보다 작다고 봤기 때문에 이런 체제를 고안한 것이다. 


 칼 포퍼는 이에 대해 플라톤이 위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문제점은 잘 인식 했지만, 그의 치료법이 문제점보다 더 나빴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시대인들이 혹심한 시련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체제를 구상한 것이니까. 플라톤이라는 인간 자체가 자비심 없는 냉혹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로서는 불행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이겨내고자 최선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치료법이 정말적 오류라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플라톤이 구상한 사회는 전형적인 닫힌 사회다. 이런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의 이행은 인류사 관점에서 굉장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부족주의로부터 인도주의로, 전체주의로부터 개인주의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닫힌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닫힌 사회의 붕괴에 대한 반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반발의 원인을 포퍼는 '긴장과 불안'이라고 지적한다. 긴장과 불안은 닫힌 사회의 붕괴의 결과다. 개방적이고 부분적으로 추상적인 열린 사회는 우리에게 계속 능력을 요구한다. 이때 열린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 합리적으로 되기 위한, 적어도 우리의 감정적 사회적 욕구를 억제하려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보고 책임질 능력을 말한다. 즉, 노력의 요구가 긴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긴장이 결국 우리에게 지식과 합리성, 협동과 상호부조를 선사하고, 그 결과 우리는 생존의 기회가 증가하며 인구가 늘어나게 만든다. 우리가 받는 것들에 비해서는 나름 저렴한 대가라는 것이 포퍼의 견해고, 내 견해도 같다. 


 열린 사회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과 고찰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길 바란다.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무역 등 꽤 많은 것들을 함께 다루고 있는데 그걸 잘 버무려서 서평으로 쓸 능력이 없어서 이정도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 특히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 아주 재미있다. 


 후, 드디어 마지막 문단이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꽤 어려운 책이다. 책의 약 600페이지 분량 중에 300페이지가 본문에 대한 주석이니까. 포퍼 스스로도 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고전'이라는 이름에 부합하게(?) 읽는 사람이 드문 편이다. 하지만 포퍼가 플라톤의 이론을 통해 보여준 전체주의적 역사주의적 망령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도 그 망령들이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어렵고 딱딱한 책이지만 현대적 시민을 위한 기본적 소양을 담은 책이라는 것이다. 열린 사회는 항상 긴장과 불안을 초래한다. 하지만 그 긴장과 불안은 우리가 누리는 번영을 위해 감수해야 할 대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대가 지불하는 첫 걸음은 포퍼의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다쓰고 예약 하는데 튕겼다. 결국 다시 썼다. 울고 싶다. 처음에 썼던 글보다 아무래도 개판이다. 아 우울하다. 서글프다. 짜증난다. 아 왜 임시저장은 첫 단락까지만 되어 있는 것인가! 아! 망할! 에이! 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식투자 백전백승의 법칙 - 단도투자
모니시 파브라이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투자서 중 한 권이 바로 이 모니시 파브라이의 <주식투자 백전백승의 법칙>이라는 책이다. 모니시 파브라이의 "단도투자"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좋은 투자철학의 정수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일단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일지 않는다." 이 개념 너무 좋다. 이 개념에만 충실해도 최소한 "주식으로 패가망신" 따위의 수식어로 수식 받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내 투자의 모토 중 하나다. 아무튼 시작부터 너무 찬양만 했는데, 저자와 책에 대한 소개로 넘어가자. 


 저자인 모니시 파브라이는 헤지펀드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며, 1999년부터 수수료 차감 후 기준으로 연간 20% 이상의 수익률을 창출한 탁월한 머니매니저이다. 또한 버핏의 파트너십 구조를 그대로 모방해서 운영할 정도로 버핏과 멍거 철학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신봉의 결과가 좋으니까. 지속적으로 더 신봉하게 되는 양의 루프 속에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투자철학도 사실 그리 복잡하거나 긴 이야기가 아니다.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이게 전부다. 사실 그런데 이렇게 끝내면 너무 불성실한 서평이 될테니, 최대한 자세히 써보려고 노력하겠다. 하지만 실제 철학은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이게 전부다. 


 여러가지 설명과 사례를 통해 철학을 설명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파텔 모델 단도" 부분과 단도투자의 9가지 원칙 부분만 보면 이 책의 내용 파악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작성해보려고 한다. 


 파텔 모텔의 단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파텔이라는 사람들은 인도 출신의 미국 이민자들이다. 다른 이민자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파텔이라는 사람들은 특히 이민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아 가진 재산 한푼 없이 미국에 떨어진 가난한 이민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미국의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1960~70년 대 대호황기에 대규모로 건설된 모텔들이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재량지출이 줄어들자 큰 위기에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자, 생각을 해보자. 모텔 같은 대규모 부동산은 대부분 은행 부채를 끼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은행 부채의 이자는 고정비용이다. 그런데 모텔의 수요는 여행 등 소득 증감에 크게 영향을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당연히 오일쇼크로 경기가 침체되면 모텔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는 감소하고, 고정비용은 그대로인데, 수입이 감소하면 당연히 위기에 빠진다. 이때 높은 부채비율은 위기를 패닉으로 발전시킨다. 이자를 못내면 저당권을 설정한 은행이 경매를 통해 원금을 회수하려고 할 텐데 수 많은 모텔이 동시다발적으로 경매시장에 나오면 당연히 가격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은행의 담보가치 하락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파텔이라는 사람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이랬다.

 파텔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런 패닉으로 인해 가격이 싸진 모텔은 당연히 파텔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파텔들은 돈이 없다. 하지만 은행으로서는 이 상태로 경매 시장에 내놔봐야 원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파텔이 최소한의 자본만 마련한다면 80~90% 수준의 대출을 제공해줄 용의가 있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손실을 볼 것이라면 차라리 이놈에게라도 맞겨보고 안되면 그때 경매시장에 내놓는 것이 손실을 극소화 할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파텔의 입장에서도 이건 꽤 남는 장사다. 일단 파텔처럼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이민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단순 노동에 불과한데 단순 노동은 가족을 부양하기에 소득이 충분치 않다. 그리고 모텔은 기본적으로 숙박업이기 때문에 모텔 사업을 하면 집을 살 필요가 없다. 고로 파텔은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주거문제까지 해결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미 파텔은 일부 이기고 들어가는 꼴이 된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모텔을 인수한 파텔은 자신들의 경쟁우위를 발휘한다. 바로 비용우위라는 경쟁우위다. 이들은 모든 직원을 내보내고 자신들이 모든 업무를 전부 담당함으로써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다. 그리고 이런 비용우위는 가격 인하 여력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곧 경쟁력 재고를 의미한다. 그리고 파텔은 레버리지 비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만 시키면 금방 원금을 모두 회수하고, 대출금까지 상환할 수 있는 탁월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여기서 또 중요한 특성이 관찰된다. '레버리지가 높다'라는 점이 '고위험'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파텔은 해당 모텔 인수를 위해 모텔을 담보로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보증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실패하면 그냥 0으로 돌아갈 뿐이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사실상 없다. 그리고 더욱이 파텔과 같은 비용우위를 발휘할 수 있는 소유자 - 브루스 그린왈드 경쟁우위전략의 최상의 소유자에 해당 - 마저 해당 사업에서 실패한다면 은행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럼 은행으로서도 최상의 선택은 파텔과 손을 잡고 모텔이 수익을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잘되면 왕창 벌고,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내가 이야기를 옮기는 과정에 생략한 부분이 좀 많아서 논리가 엉성한 부분이 꽤 있다. 하지만 책에서 직접 사례를 보면 "잘되면 왕창 벌고,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의 사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암튼 우리는 파텔의 사례를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패닉이 곧 기회의 시작이다 2. 확실한 경쟁우위를 갖춰라 3. 이해하기 쉬운 사업을 해라 4. 성장에 대가를 지불하지 마라 5. 플랜 B를 갖추고 있어라 

 1, 2 번은 확실히 납득할 수 있을테고, 3, 4, 5 번은 의문을 갖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책을 보시라! 고 하면 너무 무책임하니까 간단히만 설명하면, 모텔 사업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나? 그런데 과연 파텔이 화학처리시설을 인수했어도 자신의 역량을 살 릴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파텔의 성공은 파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사업을 했다는 요인의 영향도 받았다. 성장에 대가를 지불하지 말아라, 지금 청산가치에 거래되고 있는 물건 사면서 성장의 대가를 지불했겠는가? 그야말로 피와 눈물이 흐르는 시기에 성장 가능성은 공짜로 따라오는 옵션에 불과하다. 플랜B 파텔은 분명한 플랜B를 갖고 있었다. 바로 본인의 노동력이다. 어차피 갖은게 없다. 따라서 50,000달러 짜리 모텔에 투자했다가 실패해도 잃을 것은 자신의 자본 5,000 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노동력은 당시 시급 1.6달러로 주간 60시간을 일한다고 할 때 연간 약 5,000달러 만큼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망하면 육체노동해서 다시 5,000달러 벌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논리적 비약이 많다. 그건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결국 이런 파텔의 일화와 그 밖의 미탈, 마니알 일화 등을 통해 저자가 알리고 싶은 개념은 "단도 투자의 9가지 원칙"이다.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사업에 투자하라 

2. 단순한 사업에 투자하라

3. 고전하는 분야의 고전하는 사업에 투자하라 

4. 지속적 경쟁력을 갖춘 사업에 투자하라.

5. 적은 종목에 투자하고, 많이 투자하고, 적은 횟수로 투자하라

6. 아비트리지에 초점을 맞춰라.

7. 내재가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매입하라 

8. 위험이 적고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하라

9. 혁신 사업보다 모방 사업에 투자하라. 


 결국 정리해보면 이렇다. 파텔이 모텔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모텔 산업 패닉 시기에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아주 싼 가격에 자산을 매입한다(원칙 3, 7). 그리고 모텔 산업은 상당히 오래된 비지니스 유형이며,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사업이다. (원칙 1, 2) 거기에 파텔은 스스로가 모텔 산업의 최상의 소유자였다. 파텔 수준의 비용 절감은 백인 등 다른 인종이나 기존 주민이 따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방법이다. (원칙 4), 모텔 산업은 당시 불확실성이 아주 높았다. 유가의 향방에 따라 세계 경제의 향방이 결정될 것인데 유가의 향방을 알 수 없으니 굉장히 불확실성이 높다. 하지만 이미 바닥에 가까운 가격에 샀기 때문에 망할 가능성이 사실 높지 않다. (원칙 8) 파텔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모텔 사업에 비중 100%로 투자했다. (원칙 5) 이다. 원칙 9가 빠졌다고? 원칙 9는 초기의 몇몇 파텔들이 모텔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자, 그런 선구자 파텔을 보고 따라한 다른 파텔들의 행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미국 인구의 0.2% 밖에 되지 않는 파텔이라는 사람들은 미국 전체 모텔의 50%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니 원칙 9번도 성립이다. 


 이 밖에도 집중투자에서 나온 캘리 공식, 파브라이 본인의 이야기, 각 원칙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정말 좋은 내용이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투자서 중 하나라고 하는 이유를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라는 사고방식, 그리고 첫 째도 둘 째도 안전마진이라는 것이다.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 마법 같은 비대칭성은 안전마진이 선사해주는 부산물이다. 그리고 패닉에 빠진 제일 "안좋아 보이는" 산업의 기업에 투자하라는 부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지금이 새벽 1시에, 상당히 피곤한 상태라서 정말 좋아하는 책이고 인상 깊게 본 책인데 다른 책보다 서평의 질이 낮다. 그러니까 꼭 책을 직접 보시라. 쉽고 효과적이면서 재미있다. 더 말이 필요한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 다시 한번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정말 강~~~~~~~~~~추다!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잘되면 왕창 벌고, 잘 안돼도 얼마 잃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동경제학에 관하여]

 행동경제학 책이다. 솔직히 행동경제학 별로 안좋아한다. 중요한건 알겠는데 너무 파편화되어 있어서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 감이 안잡히기 때문이다. 읽을 때는 "아, 그렇지 그렇지" 하는데 막상 읽고나서 적용하기는 애매한 그런 기분 정말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성적 충동>이라는 책을 읽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일단 저자에 대한 믿음이다. 로버트 쉴러는 <비이성적 과열>로 유명한 예일대 교수인데, MOOC를 통해서 로버트 쉴러 교수의 수업을 접해본 바로 - 혹 관심 있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코세라 링크를 걸어놓습니다. - 굉장히 탁월한 교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조지 애커로프는 뭐 말할 것도 없이 '레몬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다. 이 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논문인 '레몬이론' 자체가 정보비대칭에 따른 시장의 비효율성을 다룬 논문이라서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즉 믿을 수 있는 전문가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두 번째는 결국 케인즈 때문이다. 일반이론을 읽으면서 케인즈가 지적한 경기변동의 원인이 바로 'Animal spirits' 이다. 투자 과정, 그리고 금융시장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감 따위의 성질의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케인즈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 자체가 엄청 땡겼다. - 역시 작명은 잘해야 한다. - 그래서 그냥 분량도 얼마 안되고 저자도 믿을만하기 때문에 읽어보자는 생각에 평소 안좋아하는 행동경제학 관련 책이지만 읽어보았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1부에서 '야성적 충동' 이론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자신감, 공정성, 부패, 화폐 착각, 이야기 라는 5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경제가 주류 경제학계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 사실 주류 경제학계라는 말도 좀 웃기다. 이제 행동경제학도 사실상 주류 경제학이다. 그런데 딱히 다른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주류 경제학계라는 말을 사용하겠다. - 엄밀하고 정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이게 이 책이 담고 있는 전부다. 그리고 2부는 그 '야성적 충동'이라는 이론을 배웠으니 이제 이론이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력을 갖는지 검증해보자는 차원에서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8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론을 바탕으로 해설을 시도한다. 8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왜 경제는 불황에 빠지는가 2. 왜 중앙은행이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가? 3. 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4. 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장기적으로 반비례하는가? 5. 왜 미래를 위한 저축을 비계획적으로 운용하는가? 6. 왜 금융시장과 기업투자는 변동성이 심한가? 7. 왜 부동산은 주기적 부침을 겪는가? 8 왜 소수계의 빈곤은 계속 대물림 되는가?] 질문들을 보면 알겠지만 꽤 무게감 있는 질문들도 있고, 흥미를 유발하는 질문들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야성적 충동'이론을 바탕으로 두 저자는 해당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한다. - 안되면 책을 안썼겠지 - 물론 2부도 재미있었지만, 난 1부가 더 인상적이었고, 2부는 뭐 직접 읽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으니 1부 위주로 서평을 작성하려고 한다. 

 1부에서 시작은 '야성적 충동' 이론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애덤스미스 - 보이지 않는 손' 인 것처럼 '케인즈 - 야성적 충동' 이다. 야성적 충동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라는 주체가 고전경제학에 비해서 더 필요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주로 서두에서 해준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경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동기" 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동기" 이외의 것을 경제 이론에 넣기 시작하면 모델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모델링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결국 "경제적 동기"만을 바탕으로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경제학의 시도는 엄밀하고 정확한 경제학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위기에 속수무책인 경제학" 이라는 오명도 같이 떠안았다. 다만 여기서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은 '야성적 충동'이 빠진 경제학이 '병신'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경제학은 그 자체로도 유용하다. 지난 수십 년간 괜히 연구비 잘 받으면서 성장한 학문이 아니다. 잘 써먹었으니까 성장을 한 것이다. 다만, 경제학이 자꾸만 '불황'이나 '위기' 따위에 취약한 것이 '야성적 충동'이라는 요인을 제거한 것 때문이니까. 이제는 '야성적 충동'까지 넣어서 보다 더 설명력 높고 실용적인 경제학을 만들자는 것이 저자들의 주요 논점이다. 
 이 '야성적 충동' 이라는 요인이 사실 좀 애매하다. 그래 동물적 직감 같은거라는 것은 알겠다. 이성적인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근데 구체적으로 뭐냐? 구체적으로 알아야 써먹어 볼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저자들이 5가지 야성적 충동의 요인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야성적 충동, 즉 우리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성질의 것들은 [자신감, 공정성, 부패, 화폐 착각, 이야기] 라는 것이다. 

 야성적 충동 이론을 이해하고 써먹으려면 다 중요하고 빼 놓으면 안되는 요인들이다. 뭐 하나가 빠지면 야성적 충동 이론도 절음발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서평인 관계로 그냥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들만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아주 재미있다. 이건 평소에 우리가 제일 자주 행하는 비합리적인 성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사실 경제학 모델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거의 고려되는 요인이 아니다. 예컨대, 이런 게임이 있다. A, B라는 두 사람과 100 달러가 있다고 하자. A, B 는 게임을 하기로 한다. A가 먼저 몇대 몇으로 나눌지 고르고, B가 그걸 승낙할지 거부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B가 승낙하면 돈은 A가 분배한 비율대로 나눠 갖는다. 하지만 만약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의 돈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A는 99달러를 본인이 갖고 1달러를 B보고 갖으라고 할 것이다. - 최소 단위를 1 달러라고 가정하자. - 왜냐하면 B는 자신의 몫이 0보다 크면 무조건 콜을 하는 것이 이익이다. 아예 안 받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받는 것이 이익이니까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게임을 해보면 99:1로 분배를 하면 B 측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100이면 100 전부가 거부한다. 1달러 안갖고 말겠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사실 이게 잘 설명이 안된다. 분명 콜 하는게 이익이다. 그런데 사람은 대부분이 거부한다. 즉, 인간의 의사결정은 '경제적 동기' 외에도 '비경제적 동기' - 이 경우에는 공정성에 대한 동기 - 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반응을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1. "에이 비합리적이네! 합리적으로 살아야지!" 2. "당연하지! 왜 1달러를 콜 하냐!" 라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1번에 가까웠었다. 특히 1학년 경제학부생이 되었을 때는 당연히 1번의 입장이었다. "세상은 잘못됐어!! 이런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다니!!"라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 낳고 경제학 낳은 것이지, 경제학 낳고 사람 난 것 아니다. "에이 틀려먹은 세상"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참고해야지"가 오히려 합리적인 접근법이다. 내가 요즘 계속 되새기는 말인데 "현상이 이론보다 선행한다" 라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은 현상을 "관찰"해서 답을 찾아야지, 먼저 이론을 만들어 놓고 "현상"을 거기에 끼워넣으려고 하면 안된다고 요즘 계속 되새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내려야 한다. 남이 비합리적으로 나오시면 내가 합리적으로 대처해야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나? 

 또 "화폐 착각"이라는 개념도 아주 재미있다. 이 화폐 착각이라는 개념이 아주 묘하다. 결국 Real 변수의 세계냐 Nominal 변수에 세계냐의 문제다. 분명 이론은 항상 실질 변수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전개된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숫자들은 사실 명목 숫자들이다. 결국 이 간극을 메우려면 "인간은 명목 변수를 보면서도 실질 변수로 변환해서 실질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라는 가정을 더해야 한다. 결국 이게 맞냐 아니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거시 경제학에 있어서 만약 인간이 '완전히 화폐의 착각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자연실업률은 분명한 진리다. 그런데 만약 '완전히 화폐의 착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자연실업률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근데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분명 '기대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책에서 통근열차의 금연 경고 문구를 통해 '아닌 것 같은 증거'를 소개한다. "담배피면, 10일 이하의 구류나 5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음" 이라는 문구에서 10일 이하의 구류와 50달러 이하의 벌금이라는 두 처벌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더 예를 들자면, 만약 정말 사람들이 "완전히 화폐 착각으로부터 자유롭다면" 법조문부터 고쳐야 한다. 법에 "~일을 했을 경우에는 X 년 이하의 징역 또는 Y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는 규정은 틀려먹은 조항이다. Y원은 2013년 가치와 2014년의 가치와 2015년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늦게 범죄를 저지를 수록 죄의 처벌이 낮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이 완전하게 화폐 착각으로 부터 자유롭다면 법조문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일을 했을 경우에는 X년 이하의 징역 또는 (Y = 법안 통과한 해에 설정한 벌금의 액수(1+연간 물가상승률)^법안 통과 이후 지나간 시간)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고 만들어야 한다. 조금 더 세련되게 Y 원을 정의할 수 있을텐데, 안떠오른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화폐 착각의 증거들이 꽤 많이 널려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화폐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례들도 존재한다. 즉 화폐 착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혹은 완전히 속박되어 있다는 주장 자체가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자유롭다'는 분명 아니므로 자연실업률 이론은 기각되어야 한다. 이 부분 꽤 재미있었다. 

 이하는 이제 다른 요인들을 설명하고, 그걸 앞에서 언급한 8가지 질문에 적용해서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건 생략한다. 직접 읽어보시길.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아이디어 = 케인즈의 아이디어 + 현대 경제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증거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또 'Return to keynes' 다. 물론 케인즈가 전부 옳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 결국 이전의 경제학이 무시해버렸던, 혹은 놓쳤던 '야성적 충동'이라는 비경제적 동기, 비합리적 선택 등을 다시 경제학의 범주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노력이라는 점을 놓고 봤을 때 역시 케인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저자들의 견해와 반대되는 것이 있다. 저자들은 애덤스미스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 물론 설명을 돕기 위해서 겠지만 - 근데 난 개인적으로 애덤스미스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경제학자' 애덤스미스는 대체로 옳은 소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은 방정식과 통계로 이루어진 "정밀한" 과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이디어"이자 "사고 체계" 였다. 따라서 "대체로" 옳은 소리를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애덤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후대의 학자들이 "엄밀한 방정식"으로 옮기면서 고민이 부족해서 "대체로 옳은" 애덤 스미스의 말을 "그대로" 옮겨버린 것이 문제지. 애덤 스미스는 딱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쌀집 계산기도 없는 세상에 살던 시대의 사람에게 정밀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행동경제학 책 치고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책 자체도 어렵지 않고, 너무 현학적인 내용도 아니라서 다른 분들에게도 즐거운 독서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