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에서>

아기를 낳으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질이 충분하며,
내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희생과 헌신이 나의 유전자임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밤중 젖을 물리며 잠 좀 실컷 자고 싶다고 한숨을 내쉴 때,
아기를 업은 펑퍼짐한 아줌마가 거리의 쇼윈도에 비칠 때,
밥 먹을 짬조차 없어 식탁 앞에 서서 물에 만 밥을 마실 때,
고된 육아로 지친 밤 11시, 현관문을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릴 때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열 펄펄 끓는 아이에게 무엇부터 해줘야 할지 몰라 허둥댈 때,
남들 다 있는 전집교구, 아무리 큰 맘 먹어도 장만하지 못할 때,
실수로 밥그릇을 엎은 아이의 등짝을 후려칠 때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닐까 자괴감이 듭니다.

이런 나의 눈에 다른 엄마들은 모두 좋은 엄마처럼 보입니다.
모유수유에 성공하고, 이유식도 손수 만들어 먹이며
빈번한 아이의 장난이나 실수에도 능숙하게 뒤처리하는 엄마,
자식의 학업과 재능을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전문가가 될 만한 엄마.
그들처럼 되기엔 나의 모성은 턱없이 부족하게 여겨집니다.

 

나는 진정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이렇게 힘들기만 한 것일까요?

<엄마의 자존감, 그 무서운 대물림>

"난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너도 이 다음에 너 같은 딸 낳아 키워 봐."

결론이 나지 않는 엄마와 딸의 논쟁.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을 때

당신의 어머니께 똑같은 말을 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의 딸이었던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의 딸에게 똑같은 말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엄마가 나에게 보낸 냉정한 시선과 차가운 말들,

때로는 남자 형제와의 차별로 마음을 할퀸 상처들.

아물지 않은 채로, 상처 받은 채로 덮어두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누군가 봉인해둔

상처를 몰래 끄집어냈나 봅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며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나는 절대 내 아이에게 하지 않겠노라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고된 육아와 살림에 지친 한 여자가 거울 앞에 있습니다.

그 여인의 눈빛과 목소리는 내가 아닌, 나의 어머니 것이었습니다.

절대 물려받고 싶지 않았던 내 어머니의 모습.

나는 왜 나의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요?

나의 모성은 왜 나에게 상처만 주었던 어머니의 모성을 닮아가고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고

좋은 엄마로, 행복한 엄마로 변화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봅니다.

엄마가 행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 되어 나를 기쁘게 합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내 행복의 전부일까요?

아이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이 때문에 웃는 날이 많지만, 아이 때문에 힘들기도 합니다.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마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성인이 된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될 때

휘청거릴지 모릅니다.

열심히 엄마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어느 순간 나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엄마이기 전에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는, 자신 또한 엄마의 모습을 닮고자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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