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전쟁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0
서석영 지음, 이시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십여 년 전 김해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시내에 나갔다가 깜짝 놀랄만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청소년 독서회를 담당하고 있어서 또래 아이들을 보면 괜히 더 친절하고 싶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귀 기울이곤 했었습니다.

평소 시내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던 저는 그날따라 북적거리는 시내를 만끽하고 싶어 무작정 발걸음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교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여중생들 뒤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쳐다만 봐도 생긋생긋 예쁜 아이들, 찰랑거리는 머리에 오동통한 볼살, 온 몸에 넘쳐 흐르는 생기 에너지까지 뒤따라가는 저에게도 그들의 에너지가 옮겨올 것 같아 발걸음도 가벼웠지요.
그런 상큼함도 잠시,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벗은 아이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던 '욕'은 저에게 쇼크를 뛰어넘은 먹먹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도서관의 여타 직원들에 비해 아이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의 관심거리와 고민, 그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아이들은 책을 읽을 줄 알고 나름의 고민을 스스로 찾아낼 줄 아는 생각의 힘이 있는 아이들이었던 것이고, 그날 시내에서 만난 그 아이들은 날 것 그대로의 우리시대의 청소년들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제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이 한 문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온통 욕으로 가득한 말들을 주고 받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당당한 목청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 당황하게 한 것은 그 아이들이 하는 '욕'문장을 어른인 제가 바로잡아 주기는커녕 갑자기 가빠진 호흡과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발로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급급했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평소 많았지만 아마 그때의 경험이 제가 지금껏 청소년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더 집착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욕전쟁>

(서석영 / 시공주니어) 이 책에는 욕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입에 줄줄 욕을 달고 사는 최시구의 주변에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동참하게 되고 남학생 패거리에 대항해 욕하는 여학생 무리가 만들어져 교실은 그야말로 욕장터가 되고 말지요.
어느 날 반 대항 피구 경기에서 상대편과 욕설을 주고 받다 그것이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지게 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욕의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것을 계기로 반에서 욕과의 전쟁을 선포해 욕을 할 때마다 벌을 주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 몰래 욕을 하기 위해 기발한 속임수를 떠올립니다. 욕 통장을 만들어 실컷 욕을 하기도 하고 욕 목록에서 자기가 잘 쓰는 욕을 빼기 위해 단식투쟁도 마다하지 않지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점점 업그레이드 되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욕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욕시험>


(박선미 / 보리) 이 책은 앞에 소개된 <욕전쟁>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보이는 책입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커다란 백지 시험지를 들고 와
"너거들, 어데 욕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게다가 다 적어 봐라." 하십니다.

무조건 욕을 쓰지 말라는 잔소리 대신 시험지에 아는 욕을 가득 쓰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아이들이 제대로 쓰지 못하자 선생님은 거기다 한 술 더 떠
"아아들이 니한테 약 올릴 때 욕 안 하고 싶더나? 그럴 때 하고 싶던 욕을 써 보래미." 하십니다.
주인공 야야는 그동안 선생님 딸이라 남에게 잘못 보이면 안된다는 마음 때문에 동무들이 애꿎은 말로 놀려대고,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을 해도 발만 동동 굴렀던 일들이 떠올라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욕으로 시험지를 빼곡하게 채워넣습니다.
막상 욕시험지를 냈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야야. 청소를 끝내고 교무실에 갔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야야의 시험지를 보고 놀려대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시험지를 공개한 담임 선생님에게 너무 화가 납니다.
담임 선생은 시험지를 보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면담을 하지요. 야야의 차례가 왔을 때 선생님은
"욕도 못하고 맨날맨날 달구똥 겉은 눈물만 뚝뚝 흘리더마는 그 많은 욕을 어데서 다 들었노?" 하십니다.
그 말을 듣자 뱃속 저기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 야야. 선생님이 야야의 답답하고 억울했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그간 서러워했던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게 됩니다.
남들 때문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안 해도 되고, 엄마 아버지 얼굴 때문에 더 좋은 말 듣기 위해 억지로 애쓸 필요 없다고 위로해 주십니다.
아이들이 말로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 마음을 어둡게 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시험지에 대고 욕이라도 시원하게 풀어 놓고 마음을 훌렁훌렁 씻어 버리라고 욕시험을 치게 하셨다는 선생님.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는 '욕'에는 대체 어떤 하고 싶은 말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아이가 욕을 입에 올리면 화들짝 놀라 그런 말을 쓰면 안된다고만 했지 아이가 왜, 어떤 마음으로 그런 욕을 하게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눈감았었습니다.
아무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 욕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분명 이유있는 쓰임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아들과의 대화 공책을 다른 용도로 한 번 써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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