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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 지구공동생활자를 위한 짧은 우화, 동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우아한 공방
장 뤽 포르케 지음, 야체크 워즈니악 그림, 장한라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9월
평점 :
고요한 법정 안. 좌석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은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적막 속에 재판을 생중계할 카메라가 켜지고 인간의 목소리를 얻은 동물의 품위 있는 변론이 시작된다. 지적이면서 풍자 가득한 우화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멸종위기종을 지켜 달라는 환경 보호론자들의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발과 발전만 생각해도 바쁜데 동물 복지라니! 어떻게 예산을 줄여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한 가지 꾀를 낸다. 동물들을 법정으로 불러 모아 국민 참여 재판을 열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단 한 종만을 보호하는 것이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수리부엉이는 당당하게 법정에 선다. 용맹한 사냥꾼으로 명성을 떨치며 인간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던 그는 이제 살충제에 중독되어 번식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별똥별처럼 빠르게 날아 등장한 유럽칼새는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빌딩 숲에 집을 잃었다. 들북살모사, 붉은제독나비 등 차례차례 불려 나온 이들은 대부분 거침없는 개발에 속수무책으로 사라지고 있다. 변론에 나선 동물들은 한 종의 멸종이 일으키는 연쇄작용을 알기에 자신만 특별 대우해 달라 요구하는 대신 모든 생물과 동물이 보호받아야 세계가 지탱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물러섬 없는 인간과 물러설 곳 없는 동물의 팽팽한 법정 공방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하다. 등장인물들이 토해내는 대사와 지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디서부터 우리와 닿아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구공동생활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금 고민하고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끝에서 맞이할 결말은 공멸이란 사실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변론이 끝난 뒤 동물들은 자신의 서식지로 돌아가고 인간만이 법정에 남아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주시하며 판결을 기다릴 이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이제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다짐을 실천으로 보여줄 차례이다.
우리가 살아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당신들에게 요청한 적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요청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당신들 허락이 필요하지 않아요.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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