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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김정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212/pimg_7778901011840300.jpg)
나는 늘 내게 화를 내거나 나를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귀를 기울이기로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짙은 핏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막막한 느낌이 차오르자 나는 늘 하던 방식대로 내가 있던 곳을 떠났다.
내가 맺은 모든 관계에서 단일한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매듭이 있는채로 풀지 못한 숱한 갈등, 그리워해야할것을 그리워하지 않은 죄책감, 애도하지 않은 채로 그냥 보내버린 죽음들, 그리고 이렇게 모든걸 어질러 놓은 자신을 만나게 되는 쓰라림이 기다리고있을뿐이었다. 나는 내 삶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삶의 밖에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어떤 소리를 듣고 또 어떤 장면을 보고 또 어떤 냄새를 맡고 우리가 더올리는건 아픔자체보다 아픔의 기억으로 남은것, 슬픔 자체보다 슬픔의 기억으로 남은건지도 모른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는 아픔이고 슬픔이었고 이제 나이가 든 나에게 그는 아픔의 기억이자 슬픔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억된 아픔은 그때의 아픔보다 더 둔중하게 아프고 기억된 슬픔은 그때의 슬픔보다 더 한스럽게 슬프다. 아마도 그 아픔이나 슬픔의 기억이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얹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내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아이가 낸 생채기를 안고 돌아온 내 나라에서 내 낸 생채기를 안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묻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나라를 떠나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나는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는 늘 내가 살아야 할 거처를 내 나라에 한정시키지 않게됐을까? 무엇이 나를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게 했을까?
내가 이렇게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헤매는 데는 어떤 모순도 아무렇지 않게 껴안는 어머니의 원칙없는 수용력을 직간접으로 물려받은점도 없지 않을것이다. 어머니는 보통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정신적 물리적 부조화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높은 구두에 타이트스커트를 입고도 손에 든 물건이 무거우면 머리에 이었고 다른사람들의 비행은 못참아하면서 자신은 더한 비행도 아무렇지 않게 저릴렀다. 항상 눈앞의 필요가 최우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두사람이 한국에 있는것이 아니라 국외자로 남의 땅에 살고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세금을 내고 이곳 시민으로 살아도 이곳 사람들에게 규와 나는 그들의 주목이나 지탄의 대상이 될 만큼의 관심도 받을수없는 국외자였다. 그러나 또 그 점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질문과 의심의 눈초리가 면제되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면 가만히 바라보거나 손을 잡아주고 무언가로 흥분해 마구 말을 쏟아내면 그냥 들으며 고개만 끄덕여 줄수 있었다. 수많은 일을 겪고 젊은 시절을 넘긴뒤,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 땅에서 규와는 그런 관계가 쉽게 유지 되었다. 이렇게 쉬운일이 그리도 어려워 여러변 뒤틀리고 꼬였던 것인지 참 알수없는 일이었다.
전에도 그랬던것처럼 아이도 규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내 사랑도 시간에 맡겨두자. 내가 먼저 건드려 피지도 않은채 떨어지는 꽃이 되게 해서는 안되겠지. 바람이든, 햇빛이든, 빗물이든 슷로 받고, 제가 나온 가지에서 제 마음대로 자라게 그냥 두는거지.
나는 해가 지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통증이 있는 것 같은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 뭐든 시간의 호주머니에 잘 넣어 두면 묵은 포도주처럼 익어 있겠지.'
우리네 인생은 큰길이 나 있는 신작로로도 지나가고 아주 소소한 우회로로도 통하지요. 그 소소하고 좁은 우회로에는 크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은 작은 비밀들이 꽃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답니다. 놀라운 일은 그 꽃잎들이 드러나 보일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많다는 거예요. 그 꽃잎 중 하나를 내가 주워 전해주었나 보군요. 그런게 우리 삶이 주는 우연의 선물이고 인연이라고도 하는 거겠지요.
아버지는 그에게 바람 같은 존재였다. 불어닥쳐 가까이 있으면 항상 그를 그 바람에 흔들리게 해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고 지나가고 나면 전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언제 불어와 언제 사라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늘 별말이 없었고 특별히 그를 데리고 어디로 가거나 같이 놀아 준 기억도 거의 없었다. 그는 어릴 적 그런 아버지가 어렵고 싫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그를 꽤 먼 놀이터에 데려가 놀게 하고는 한참 유심히 지켜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낯선 놀이터에 버려진 그는 해 질 녘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이런 불확실한 태도는 그 또한 헤매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가 책을 읽듯 그녀를 읽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주 신기하게도 자신의 삶을 산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읽으려고만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삶에서 이상한게 읽히면 책을 읽으며 그렇게 하듯 밑줄을 그어 놓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쳐진 밑줄 긋기가 자신의 삶에 등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아직 모르는것 같았다. 대안 현실에서 현실감을 찾으며 헤매는 그에게 지금 그의 앞에 놓인 현실로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고싶었다. 제대로 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위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마냥 허우적거릴게 아니라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다가 발로 바닥을 쳐야 하는것임을 일러 주어야 할것같았다.
내아버지와 어머니는 길을 잃게 만드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어요. 시대와 역사가 준 화난이었지요. 그런데 나는 왜 길을 잃었는지, 왜 집없는 아이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집을 소유하는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을 들일수있는 집이 돼야하는거죠. 집에는 살아있는 생명이 깃들어야 좋은 집이에요. 이곳으로 돌아와 내가 만든 집에 들인 것들은 모두 죽은 영혼들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죽은 영혼이 깃든 물건들에 집착했나 봐요. 그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기에는 이제 힘이 부치네요. 내 집에는 누군가가 쓰던것, 누군가가 깃들었다 사라져버린, 그런것만 가득하지요. 이즈막에 와서 너무 격하게 공감하는 쓸데없는 고감력이 생겼는지 이제 그 물건들에 깃든 죽은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제 그만 그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 있는 것들을 모두 빼내줄때가 됐지 싶어요.
공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와서 닿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을 걸며 다가온 이야기가 불러내는 애정과 연민이 그곳으로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의 힘이 뻗어 나간 상상력이라는 것이 보태지면 내가 바로 다른 누군가가 되어 그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고통까지 껴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하게 다가와 나를 다시 만들고 결국 나의 아주 깊은 곳을 건드려 나를 이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게도고 그것이 고리가 되어 또 다른 고리로 이어지는 인연이라는것은 알수없는 경로로 우리에게 닿는다. -본문 中
김정 이라는 소설가의 책은 처음인듯하다.
언젠가부터 베스트셀러중 끌리는 책을 읽거나, 한번 끌린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작품만 골라읽어, 낯선작가.
김정, 이 작가 참 독특하다.
무심코, 이책은 어떤책인가, 한두장 넘기다 이틀만에 다 읽어버린 책,
흡입력도, 내용도 좋다.
약간 몽환적이라고해야하나, 난 그랬다.
불운한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미국,프랑스와 독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주인공이야기와
우연히 찾은 서울의 골동품점에서 오래된 물건을 고치려 만난 젊은 남자에게서 학창시절 친구 혜주와 겹치는 이야기.
난생 처음본사람과 미국행을 결정하고, 방황하고,이별하고, 또다른 남자를 만나고 배신당하고, 다시 사랑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소설이지만, 난 이런 류의 소설이 좋다. 외롭고, 슬프지만, 차분해지는 책.
읽는내, 오롯 혼자인 주인공이 마음에 쓰여 그녀와 함께 하고싶었다.
조용히 그녀옆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김정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끌린다 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