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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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하며 시작하는 책의 서문을 펼치면서  분주한 일정 가운데서도 손에서 놓지않고 들고 다니며 틈틈이 읽었다. <언어의 온도>를 읽는 동안 미술 갤러리를 다니는 듯했다. 칸칸마다 일상에서 보고 겪는 이야기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언총', '애지욕기생', '경비아저씨의 수첩', '분노를 대하는 방법', '화향백리 인향만리", 아, 참 따스한 햇살이 내리 쬐는 정원에 있는 듯했다. 햇살 어린 이 온기는 마음을 덥히고 마음으로 느끼는 온도다.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내 말과 글의 온도는 몇 도쯤 될지 생각해 보았다. 나로서는 측정할 수 없었다. 주관적으로 볼 때, 차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가 아닐까. '언어의 온도'는 그 사람의 마음 온도에 따라 정해진다. 마음의 온도가 언어의 언도다. 역으로도 언어가 마음의 온도를 오르내리게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나의 말과 글, 마음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간 듯하다. 마음까지 시려지는 계절에 읽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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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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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서 여자의 감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여성들 가운데 모친과 아내가 가장 가까운 여성인데, 솔직히 두 사람의 내면을 헤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여자가 되지 않는 한 남자로서 여자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오래 전 모친에게는 '아들 놈들이 뭘 알겄냐?'는 핀잔을 들었고, 결혼 후에는 이해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충돌을 겪었다. 직업상 수 많은 여성들을 대해야 하는데 그들의 상황과 정서를 모른채 대충 지내고 말았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구입한 지는 여러 달 전인데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여성은 참으로 많이 오래동안 숨죽이고 살아왔다. 불편해도 무시당해도 억압을 당해도 그냥 입을 다문채 지내왔다. 이 책을 통해 나와 가까이 있는 여성들이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들, 말할 수도 없는 속앓이를 들을 수 있었다. 

초반에 산후 우울증과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김지영 씨가 남편에게는 남편의  대학 여자 동기의 목소리로 말하고, 명절날 시어머니에게는 친정 어머니의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에 당황했다. 김지영 씨는 당당하게 대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시절과 대학생활, 직장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운 순간마다 지영 씨를 대신하여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정작 자신이 말해야 할 때는 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 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내었다. 
: 얼마 전 결혼한 제자 부부를 만났었는데 부인이  딸을 출산하고 산후우울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힘들겠다고 예의상 건넨 말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내심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김지영 씨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_p105.  김지영 씨 아버지의 대사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말을 들은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영 씨에게 이 말은 돌덩이가 되어 가슴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엄마는 참지 못하고 식탁을 내리쳤다.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대부분 아버지들의 대사다. 나 역시 정확히 기억도 못하겠지만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비슷한 대사를 했을 테다. 

어렵게 입사하 홍보대행회사에서 기획프로젝트에 선발되지 못하고, 승진에 대한 압박을 받는 김지영 씨의 모습을 작가는 '미로에 선 기분'_p123 이라고 했다. 애초부터 출구가 없는 미로, 효율과 합리성을추구하는 기업 문화에 공정함을 따져 보지만 무력할 뿐이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하고 질문한다. :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구조에서 행복을 질문한다는 건 사치가 아닌가. 공정함과 행복을 잊지 않았다는 건 인간다움이 남아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얻도록 자비롭지 않다. 김지영은 아이를 갖고 나서 더 심한 차별을 겪는다. 택시를 탈 때, 지하철에서, 정형외과에서, 동네 커피숍에서, 툭툭 내 뱉는 통념과 편견에 가득찬 말에 분해 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_p164.
커피숍 옆 테이블에서 자신을 염두하고 한 이 말에 김지영 씨의 분은 극에 달하고 만다. 그래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무 표현도 못하고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만 쏟아 놓았다. 남편 정대현 씨는 아무 소리 없이 지영 씨를 끌어 앉고 토닥여 주었다. 
'맘충...', 타인을 벌레에 빗댄 표현에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 분위기가 느껴졌다.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 지적했듯이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여성들과 함께 하는 남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여성들과 남성들이 사는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자아실현과 건전한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경력단절, 육아와 가정, 등의 고민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잘 그려내 주었다. 여기서는 나오지 않은 부분을 염두해야 한다. 여성으로 살 때 얻는 삶의 의미와 기쁨이 있다는 것,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 따른 것 말고 여성 자체로서의 정체성과 행복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부분은 어느 쪽에서 말해주어야 할까.

여성들이여 기죽지 마시기를.
남성들이여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여성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기를. 
공감이 어렵다면 그냥 자주 끌어 안고 토닥여 주기라도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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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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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 하지만 어떤 낯섦도 적응하기도 하며, 다시 그 낯섦에 안주하는 인간. 인간에게 변화는 불편하다. 집요함으로 낯섦을 마주하여 욕망과 덕으로 감당해 가라고 한다. 낯섦은 이질성이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는 죽어갈 것이다. 
책은 낯섦의 불안이 올 때 타조처럼 머리를 처박지 말고 고개를 돌려 주목해 보라고 한다. 거기서 경이가 일어나게 된다고. 양주의 爲我, 푸코의 자기배려’, 노자의 貴以身爲天下’, 모두 인간 개인의 주체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주체력의 시작은 모두에게 근본적으로 있는 욕망이다. 이것은 단순 자기 만족과 집착의 욕망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욕망이다. 이 욕망으로 질문하고 자기를 찾으며, 명사가 아닌 동사로 살며, 보편에서 개별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홍순관의 <나처럼 사는 건>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들의 꽃이 / 산의 나무가 가르쳐줬어요. / 그 흔한 꽃이 산의 나무가 / 가르쳐줬어요.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 강아지풀도 흔들리고 있어요. / 바람에 음~”  

세상은 너무나 치열하게 냉혹하게 교묘하게 사람으로 자기대로 살지 못하게 한다. 이념, 신념, 통념과 가치관들이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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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으로 - 문학의 공간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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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自 걸어야 한다. 스스로 부닥칠 때 화관을 쓴 머리[首]가 될 수 있고, 그 자세로 달팽이처럼 기어갈 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내 길[道]을 만날 수 있다. 발로 체험하지 않고, 눈물과 노동의 손을 맞잡지 않고, 혀로만 설교하는 미소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현자는 여행에서 태어나고 진리는 거리에서 잉태된다. 그래서 니체는 핵심을 꿰뚫는 직설을 남겼다. "가벼운 발이 신성의 첫 속성이다."_니체" - p15

읽는 이로 하여금 한 없이 부끄럽게 하는 책이다. 걷지 않고서 그 길을 얘기할 수 없듯이 눈물과 노동, 삶의 현장 곁에 가보지 않고 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가벼운가. 그리스도교의 '성육'의 의미가 '곁으로'가 아닌가. 문학의 공간도 곁으로 다가서야 감각하려고 하는데 나의 공간은 얼마나 무감각한 공간인지. 겉에서 짓는 나의 미소는 신뢰를 줄 수 없다. '곁으로'와 '겉으로' 한 획의 차이가 주는 거리감이 참으로 멀게 체감된다. 많이, 그리고, 깊이 성찰케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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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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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코린토스, 올림피아, 아르고스, 스파르타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다니면서 기록한 기행문이다. 저자는 지리, 문화, 신화, 역사, 문학, 종교, 등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펠로폰네소스를 살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2013년에 출판한 책인데 이제서야 만났다. 읽으면서 아쉬움과 후회감이 크게 밀려 왔다. 2014년 터키~그리스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은 얼마나 준비없이 다닌 여행인지를 깨달았다. 코린토스에 들러 운하와 도시 터는 보았으나 아크로코린토스는 올라가지 않았다. 올림피아가 펠레폰네소스에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페디먼트를 못 본 것이 너무나 아쉽다. 스파르타에 가서 헬레네와 관련된 이야기와 레오니다스 왕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면 얼마나 풍성한 여정이 되었을까. 물론 나의 여정은 단체로 가는 것이었고 초대 기독교 유적을 중심으로 다녀야 했기에 여기에 나온 여정은 어림도 없었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 신화와 종교, 문학 등의 내용을 더욱 충분히 살피지 못한 탓으로 내 여정은 수박 것핥기와 다름 없다. 늦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리스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구글지도를 열어 저자가 간 곳을 찾아 보고 그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읽었다. 어느 정도 실제감을 맛볼 수 있었다. 고린도 박물관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페디먼트에 대한 설명은 얼마나 생생한지 모른다. 

이 책은 단순 기행문이 아니다. 저자는 혼자 다니지 않았다. 그리스 사람이고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 다녔다. 카잔차키스의 글을 곳곳에 인용하여 카잔차키스와 대화하듯이 엮어 내었다. 이것이 이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할 수 있다. 카잔차키스의 말 한 곳을 적어 본다. 

p176 "분명코 구원은 있다. … 그들처럼 신을 구름 위의 옥좌에 모셔놓아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 구원이다. 따라서 속세야말로 우리들의 수도원이고, 흙을 만지며 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자가 참된 수도자가 아니겠는가?" ...  "나는 각 시대마다 저마다의 '아우성'이 있다고 믿는다네. 따라서 지금 우리 시대의 외침을 듣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길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는 걸세. ... 이런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요구를 읽고 애쓰는 삶, 그것이 바로 참구원 아니겠는가. 그러니 천상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은 다르다는 뜻일세."

4장 "성과 속의 충돌" 에서 나온 구원에 대한 언급은 필자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실과 이상이든, 구원이든, 어쨌든 이 땅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이 땅의 종교들은 구원을 지향하는데 그것을 자꾸만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훗날 저기서로 미루고만 있다. 자신이 풀어 가려고 하지 않고 다른 이가 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을 현실에 이루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그리스로 가고 싶은 생각이 진한 그리움처럼 일어나 밀려왔다. 언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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