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제주해녀가 전하는 나를 뛰어넘는 용기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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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서귀포 올레 여행자센터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때 1층에서 전에 못 보았던  이 책을 만났다.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도 2년이 훨씬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길에서 책 한 권의 무게는 부담이었으나 다른 기념품보다는 책이 나을둣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이 끌어 당겼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숨', 딱 한 글자인데도 블랙홀처럼 끌어 당기는 단어다. 생명체라면 모두 자기 만의 숨을 쉰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숨을 쉰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 숨에 있다. 


- 이 책의 이야기는 결코 책상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다. 해녀들이 물질 한 번에 전복과 소라를 잡아 모은 것처럼 서명숙은 하나씩 해녀들을 만나고 들어서 그들의 바위같고 파도같은 이야기, 싱싱한 해산물 같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그물망에 담아 올렸다. 쇠귀 신영복이 수감생활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 냈듯이 서명숙도 자기 사는 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퍼 올렸다.  

- 물숨과 숨비소리, 테왁과 빗창, 불턱, 등의 이야기는 나의 일에 많은 것을 자극을 준다. 

-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힌 곳을 해녀 한 사람이 테왁을 메고 바다를 등진 채 걸어 오는 사진은 강렬하다. 검은 현무암 바위들은 그녀들의 굴곡진 생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다. 그녀들의 삶은 현무암처럼 검고 거칠게 식어 굳어져 버렸지만 굳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들의 숨이다. 해녀들은 물 속에서 만 빼놓고 어떤 경우에도 숨을 멈추지 않았다. 굳어 멈춘 현무암을 배경으로 걷는 해녀의 모습. 사진이라 정지된 채였으나 사진 속 해녀는 느릿느릿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숨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움직인다.

- 앞과 뒤 표지 배경 사진, 테왁을 잡고 헤엄쳐 오는 해녀를 당겨서 찍은 사진이다. 햇빛이 바다에 비춰 산란될 때 물비늘이 아웃포커싱으로 담겼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순간이다.  구름 속을 내려오는 천사처럼 보인다. 책에는 이야기와 함께 생생한 사진들이  담겨 있어 이 책은 더욱 생생하다. 책을 다 읽고 덮었다. 숨비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 

- 책의 제목이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이다. 이 책은 자기만의 숨을 쉬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자신과 마주 서게 하는 책이다. 자기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다. 어느 해녀가 직장을 다녀도 자신이 나사못과 다름 없었다는 말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깊이 공감이 갔다. 해녀들의 숨 이야기 였지만 독자에게도 질문한다. 이제는 자기와 마주 서서 자기 만의 숨을 쉬며 살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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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정치적으로 읽기
박원일 지음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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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불가피하게 재부팅과 재설치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귀찮은 과정이나 피할 수 없기에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 본다. <마가복음의 정치적 읽기>를 보면서 이젠 우리의 성경공부와 신학하기에도 그런 재설치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적절한 시기에 Reset과 Reboot의 단계를 꼭 가져야 한다. 왜냐면, 문화 환경과 하드웨어Hardware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운영체제O/S(성경해석과 신학)를 리셋하는 것이다. 일반 사회 환경과 학문은 통섭과 융합이라는 새 옷을 입었는데 성경 해석은 여전히 세상과 분리된 채 폐쇄된 옷(중세 패러다임과  낡은 환경)을 입고 지낸다. 내가 볼 때 이 책은 복음서에 대한 이해를 리셋/리부트 하자고 한다. 

복음이 예수의 복음이 되는 동안은 아직 예수의 복음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다. 복음은 내 복음이요, 내 말씀이 되어야 한다. 내 속에서 나오는 내 복음만이 나의 복음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다.(김흥호, <진리로 자유롭게 하리니>, p8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초라한 목공소에서 30년 동안 일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아 이 땅에서 겸손히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늘에 닿으려 하지 말고 작은 일을 받아들이며 복음에서 배우라. 마음이 온유하고 가난한 자가 되도록.”(고흐 / 스카이 제서니, <하나님을 팝니다>)

하늘에 닿으려 허비하는 삶이 아니라 작은 일을 통해 복음을 배워 땅을 딛고 사는 것을 생각해야 겠다. 복음서 이야기들은 내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의미있게 살아내라는 안내서가 아닌가. 아직 나의 복음이 아닌 것을 나의 복음으로 갖추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책에서 사용한 도구는 세 가지다. 문학적 이해와 역사적 접근과 신학적 해석이라는 방법론이다. 우선 성서는 문자로 기록되었지만 문자적 해석 만이 아니라 문학 장르에 따라 은유적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 가야 한다. 그 다음엔 성서가 쓰였던 역사적 정황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일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사상, 등 총체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학적 해석을 건너 뛰지 말아야 한다. 신학과 신앙을 분리하지 않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안셀름)이다. 신학을 하고 신앙을 한다는 것은 오늘을 실존적으로 의미있게 책임있게 살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최종 목표다. 건성으로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천국(?)으로 가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 낼 수는 없다. 저자는 ‘내 삶을 올인하도록 만드는 삶의 디자인’을 요구하고 있다(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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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들의 반란 - 저항과 묵시문학의 기원
리처드 호슬리 지음, 박경미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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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자료를 대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하나는 묵시문학에 대한 부분이다. 묵시문학은 미래의 막연한 시점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 정도로만 여겨졌으나 묵시의 내용을 기록한 이들은 어두운 현실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희망을 갖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기관들에 대한 편견이다. 신약 복음서에 소개되는 서기관들을 폐쇄적이고 성전중심의 유대교의 이론가들로 알고 있었는데 호슬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서기관들의 고뇌와 갈등을 배울 수 있었다. 1부는 헬레니즘 제국들의 통치 아래에 있던 서기관들 이야기이고 2부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보인 서기관들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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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시대착오적인 폭력들
존 쉘비 스퐁 지음, 김준년.이계준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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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퐁의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 하나. ‘약물의 남용과 오용’이 생각났다.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을 과도하게 쓰고 어떤 경우에는 임의로 사용하며, 때로는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사용하듯이 말이다. 기독교는 그 동안 성경이란 약을 많이도 오용하고 남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의존을 넘어서 중독과 내성으로 시달려 왔다. 무엇보다 위험해 진 것은 사고력이 둔화되고 타인에 대해 과도한 배타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명과 평화의 신앙 안에 어째서 이토록 폭력적 성향이 들어 있는 것일까? 스퐁은 그 이유를 성경 자체에서 찾는다. ...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필독을 권한다. 깨어나고 싶지만 무언가에 가위눌려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강력 추천한다. 존 쉘비 스퐁의 책을 찾아 왔다면 이미 깨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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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대한 새로운 전망 - 종교를 넘어, 천국과 지옥을 넘어, 초자연적 유신론을 넘어
존 쉘비 스퐁 지음, 한성수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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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저자의 급진성과 낯선 표현에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사유의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자의 맑고 깊은 사유의 숲에 오래 동안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지 모른다. 스퐁의 이야기는 우리의 시선이 지금 이곳을 벗어나지 않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의식은 한층 더 확장되고 깊어진 듯하다. 


요한복음을 신비주의 관점으로 새롭게 접근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 속에, 우리도 하느님의 존재에 함께 참여하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의식이 하느님의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것을 충만하게 의식함으로 우리가 '생존의 존재에서 사랑의 존재로 옮겨가며, 하느님의 실재에 참여하며 그 실재를 드러낸다'고 한 말한다. 그래서, '믿기보다는 경험하며, 교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며,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가 참여하는 궁극적인 존재'(p250)라고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을 오래 펼쳐두고 보았다. 


스퐁은 정통신앙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나와 생각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신앙의 과제가 단순한 믿음에 머물지 않고 살고living, 사랑하고loving, 존재하는being 과제이며, 그래서 신앙의 사명은 개종Convert가 아닌 변혁Transform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거기서 폴 틸리히의 말처럼 존재할 용기Courage to be를 발견하고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라고(p294).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존재의 근원을 망각하고 존재의 용기 없이 사는 삶은 부유하게 될 뿐이다. 보이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연결된 생명의 끈을 의식하며 그 의식을 더 확장시켜 가야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 존재하여 영생의 일부가 되는 것은 무슨 말일까? 장벽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완전한 자아의식을 지닌 인간됨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맛보게 하는 것, 이것이 스퐁에게는 영생의 의미 속으로,  보편 의식 속으로 들어 가는 통로다(p295). 


매우 솔직하고 급진적인 서술이다. 동의 비동의를 말하기보다 나의 이성과 마음이 아직 이 책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비좁기만 하다. 이토록 깊고 절박한 통찰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주에서 한 점, 아니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 지구에서 잠깐 숨쉬다 가는 인생이 무한의 하나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을까마는, 우리에게는 그 존재자에 대한 상상만큼은 허락되었다. 행운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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