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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류의 <반도에서 나가라>를 막 독파했다. 분량이 많아 사서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얼마 전 모 신문의 국제부장 칼럼에서 이 소설이 언급되기에 기회를 봐서 도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이러니 저러니 많은 말들이 있을 수 있다. 북한 특공대 묘사가 과장의 전형이 아닐까라느니, '신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정부가 실제로 저렇게 허술할까라느니, 이상한 집단이 정예군을 몰살시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느니 등등.
이런 모든 국부적인 장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효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한 나라(some nations)의 내부 동향에 대한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이라는 점이다. 앞의 '어떤' 나라는 일본이 될 수도, 한국이 될 수도, 미국이 될 수도 있다. 한 때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톰 클랜시의 '테크노 스릴러'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브레인스토밍 성격의 가상소설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톰 클랜시 소설의 경우 당사자가 당연히 미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미국 국방부가 톰 클랜시를 초빙해서는 '소설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발생가능한 모든 테러 유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무라카미 류의 이 소설은 일본판 '톰 클랜시 리포트' 정도로 생각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에서 제기한 브레인스토밍 주제는, "과연 미국이 일본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주제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붙는다 : "일본이 현재와 같이 동북아 경시, 미국 유착 일변도로 간다면." 실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미국이 일본을 지구상에 하고 많은 '평범한 나라' 중의 하나로 본다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동맹? 알게 뭐람.
내란? 알아서 하세요.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침략? 사태가 커지지 않아 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잡겠다고 레바논 전체를 쑥대밭으로 헤집고 있는 지금, 미국의 레바논에 대한 태도가 이 소설 속에서는 일본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만 믿던 일본이, 작중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알 게 뭐람' 태도에 혹독한 굴욕을 맛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에 고소해 할 것이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현실의 일본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램이나 환상을 현실과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일본인 작가가 자신들의 오만을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발표한 것이지, 무슨 우국지사인양 실제로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떠벌리는 내용이 아니다. 배경 설명만 보아도, 미국 달러가 폭락했다는데 일본 다음으로 미국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그 중국에 가장 많은 직접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이 덩달아 초토화 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픽션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만 '특히나' 더 망한 것으로 묘사된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미국이 한국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은 돈의 힘으로 버텨왔다지만, 우리가 일본만한 돈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과연 누구 빽으로 버텨왔는지 아니꼽더라도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 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일본에서 미국과 파탄난다는 시나리오를, 미국과 여러 모로 삐걱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실험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 것 같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