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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이종욱 지음 / 뜨인돌 / 2021년 11월
평점 :
젊을땐 서울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지 자주 서울행 고속버스 티켓을 끊어 일탈을 했더랬다.
이제는 답답함과 삭막함의 서울 보다는 지금 사는 곳의 여유로움이 좋다.
뚜벅뚜벅 걷고 자분자분 그려낸 도시의 공간들 서울의 무늬들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건축사인 지은이가 구획을 나눠 서울 산책을 다니면서 보고 그린
‘서울 인문 산책 드로잉 에세이‘이다.
책커버엔 책에 소개된 건축물 드로잉이 쭈욱 나열되어 있네요.
커버를 벗기면 서울역과 을지로3가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서울의 시간과 공간을
서울역을 중심으로 도심과 골목의 익숙한 장소들에 서린 근현대의 면면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주변 도시공간의 인문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 태반이 근현대사의 중요한 발자취라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
시각적 쾌감을 주는 스케치와 드로잉을 통해 그곳들의 아름다음을 새삼 만끽하는 가운데,
경로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공간의 정체성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서울 도시 산책 경로를 제시한다.
경로상의 주요 도시공간들을 담아낸 시원시원한 스케치
평소 자주 지나면서도 눈여겨보지 못했던 장소들에 대한 새로운 주목을 이끌어 낸다.
공간과 건축, 도시에 대한 탁월한 눈을 지닌 지은이가 선보이는 인문학적 도시 걷기를 통해
서울의 근현대 생활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세상
앞으로도 타지로의 여행은 조심스럽고 사람들과의 만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위드코로나 상황 안에서 잠시나마 우리를 둘러싼 도시공간으로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그것도 책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여행의 시작 걷기의 시작점은 대한민국의 상징적 관문인 서울역이다.
도시의 생성과 변화에 대한 궁금증은 서울역 뿐 만 아니라 각 동네마다 긴밀하게 엮인 시대와 그 시대의 특성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1부의 걷기 경로들은 시간에 중점을 두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1990년대 초 개발시대, 마지막으로 도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2000년대 이후로 구분해 지은이가 걸었던 서울을 역사, 정치, 사회, 도시, 건축 등의 이야기로 언어화했다.
다시 말해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도시 스케치’를 했다.
500년 넘는 조선의 역사동안 크고 작은 내란과 외세를 겪으면서도 존재했던 정동일대 숭례문이 철거됨을 지켜봐야 했던 대한제국 국민의 마음은 어땠을까?
‘을씨년스럽다‘는 말 자체가 을사년에 있었던 슬프고 치욕적인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동 곳곳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들이 모두 ‘적벽돌’을 사용함으로써 ‘적벽돌’은 근대화된 서양건축의 상징이자 정동의 건축 콘텍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궁궐 체험을 갔다가 들렸던 서촌은 옛것의 현대화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서촌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각종 규제에 발이 묶이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서민 주거지로 정착되었다고 해요. 이러한 평범하고 조용한 주거지는 2000년대 이후 진취적인 서울시장을 만나면서 도시 마케팅과 도시 브랜딩 사업으로 핫플레이스가 되어
새로움과 변화, 혁신에 지친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서촌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돈 냄새를 맡은 개발업자들이 달려들어 이곳의 원주민을 내쫒는 변화의 칼바람 ‘둥지 내물림’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현상으로 서촌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서울역 역사는 스위스 루체른 역사를 모방했다고 해요.
지방에서 올라와 지리도 잘 모르던 시절 서울역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안오는거예요. 하염없이 기다리다 가까스로 만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서울역은 눈물 콧물을 흘리게 했던 장소네요.
한반도에 지어진 적지 않은 근대건축물들이 모방이란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일본의 근대건축이 서양근대건축의 모방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런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근대 건축물은 ‘모방의 모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부끄러운 과거의 잔재로 불린 명동예술극장이 철거 후 상업시설로 대체될 운명에 처했으나
문화예술계와 건축계가 강력하게 반대를 해서 정부가 건물을 매입하고 복원 및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09년 본래의 용도인 극장으로 되돌온 것을 티비 뉴스로 본적이 있어요..
건축은 처음 그것을 기획하고 설계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존재하는 시대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죠?
명동성당 역시 험난한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그 의미를 꾸준히 달리하였어요.
개발시대이자 군사정권 시대이기도 했던 70~80년대에 명동성당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부조리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성지였을 뿐 만 아니라 국가 발전이란 명분하에 희생을 강요받던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우고 함께 목소리를 냈던 사회적 약자의 피난처이기도 했지요.
후암동과 해방촌 일대에서는 이 지역의 일제의 신사와 문화주택지가 들어선 계기와 공간적 특색을 살피게 되구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108하늘계단이 신사 참배길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네요.
2부의 걷기 경로들은 구릉이라는 지형적 특색, 그리고 도시 구조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철도라는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한국 아파트의 산 역사 성요셉아파트, 서소문아파트, 충정아파트와
기생충의 배경이 된 아현동일대 등 경사지에 들어선 다양한 삶과 흥미로운 경관들을 살리면서도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소개 했다.
경의선숲길을 따라 걸으며 공덕동 일대에서 60~80년대 근대화와 개발 시대의 유산들을 만나고 옛 경의선의 수난사를 훑는다.
신촌연결선이 만들어 놓은 창천동 서측 가로경관과 신촌일대의 도시 구조의 특색과, 홍대스러운 공간에 대해 살펴본다.
버려진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빈 공간을 채우거나, 채우지 않거나.
지금가지 걸어온 옛 용산선 철길, 경의선 숲길은 빈 공간을 채우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채우지 않음으로서 역설적으로 사람들로 채워짐을 확인했다.
물질적인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운영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공간의 운명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인식하고 있는 장소에는 각각을 대표하는 시대성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한 장소에서 한 시절을 진득하게 머물다 떠나버리게 되면 자기가 머물던 시대와 그곳에서의 일들, 자주 보던 경관을 개인의 마음 한켠에 그대로 저장하고 반영하게 된다.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서 시대성을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장소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걸으면서 장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면 애정은 장소의 역사로 확장 될것이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오래 그리고 자주 보니 그동안 봤던 동네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고 애정이 생겼다.
애정이 생기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욱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알고 싶어졌다.
나의 도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으신 분들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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