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이종욱 지음 / 뜨인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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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땐 서울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지 자주 서울행 고속버스 티켓을 끊어 일탈을 했더랬다.

이제는 답답함과 삭막함의 서울 보다는 지금 사는 곳의 여유로움이 좋다.

 

뚜벅뚜벅 걷고 자분자분 그려낸 도시의 공간들 서울의 무늬들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건축사인 지은이가 구획을 나눠 서울 산책을 다니면서 보고 그린

서울 인문 산책 드로잉 에세이이다.

 

책커버엔 책에 소개된 건축물 드로잉이 쭈욱 나열되어 있네요.

커버를 벗기면 서울역과 을지로3가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서울의 시간과 공간을

서울역을 중심으로 도심과 골목의 익숙한 장소들에 서린 근현대의 면면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주변 도시공간의 인문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 태반이 근현대사의 중요한 발자취라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

 

시각적 쾌감을 주는 스케치와 드로잉을 통해 그곳들의 아름다음을 새삼 만끽하는 가운데,

경로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공간의 정체성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서울 도시 산책 경로를 제시한다.

경로상의 주요 도시공간들을 담아낸 시원시원한 스케치

평소 자주 지나면서도 눈여겨보지 못했던 장소들에 대한 새로운 주목을 이끌어 낸다.

공간과 건축, 도시에 대한 탁월한 눈을 지닌 지은이가 선보이는 인문학적 도시 걷기를 통해

서울의 근현대 생활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세상

앞으로도 타지로의 여행은 조심스럽고 사람들과의 만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위드코로나 상황 안에서 잠시나마 우리를 둘러싼 도시공간으로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그것도 책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여행의 시작 걷기의 시작점은 대한민국의 상징적 관문인 서울역이다.

도시의 생성과 변화에 대한 궁금증은 서울역 뿐 만 아니라 각 동네마다 긴밀하게 엮인 시대와 그 시대의 특성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1부의 걷기 경로들은 시간에 중점을 두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1990년대 초 개발시대, 마지막으로 도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2000년대 이후로 구분해 지은이가 걸었던 서울을 역사, 정치, 사회, 도시, 건축 등의 이야기로 언어화했다.

다시 말해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도시 스케치를 했다.

 

500년 넘는 조선의 역사동안 크고 작은 내란과 외세를 겪으면서도 존재했던 정동일대 숭례문이 철거됨을 지켜봐야 했던 대한제국 국민의 마음은 어땠을까?

을씨년스럽다는 말 자체가 을사년에 있었던 슬프고 치욕적인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동 곳곳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들이 모두 적벽돌을 사용함으로써 적벽돌은 근대화된 서양건축의 상징이자 정동의 건축 콘텍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궁궐 체험을 갔다가 들렸던 서촌은 옛것의 현대화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서촌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각종 규제에 발이 묶이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서민 주거지로 정착되었다고 해요. 이러한 평범하고 조용한 주거지는 2000년대 이후 진취적인 서울시장을 만나면서 도시 마케팅과 도시 브랜딩 사업으로 핫플레이스가 되어

새로움과 변화, 혁신에 지친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서촌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돈 냄새를 맡은 개발업자들이 달려들어 이곳의 원주민을 내쫒는 변화의 칼바람 둥지 내물림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현상으로 서촌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서울역 역사는 스위스 루체른 역사를 모방했다고 해요.

지방에서 올라와 지리도 잘 모르던 시절 서울역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안오는거예요. 하염없이 기다리다 가까스로 만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서울역은 눈물 콧물을 흘리게 했던 장소네요.

한반도에 지어진 적지 않은 근대건축물들이 모방이란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일본의 근대건축이 서양근대건축의 모방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런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근대 건축물은 모방의 모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부끄러운 과거의 잔재로 불린 명동예술극장이 철거 후 상업시설로 대체될 운명에 처했으나

문화예술계와 건축계가 강력하게 반대를 해서 정부가 건물을 매입하고 복원 및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09년 본래의 용도인 극장으로 되돌온 것을 티비 뉴스로 본적이 있어요..

 

건축은 처음 그것을 기획하고 설계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존재하는 시대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죠?

명동성당 역시 험난한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그 의미를 꾸준히 달리하였어요.

개발시대이자 군사정권 시대이기도 했던 70~80년대에 명동성당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부조리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성지였을 뿐 만 아니라 국가 발전이란 명분하에 희생을 강요받던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우고 함께 목소리를 냈던 사회적 약자의 피난처이기도 했지요.

 

후암동과 해방촌 일대에서는 이 지역의 일제의 신사와 문화주택지가 들어선 계기와 공간적 특색을 살피게 되구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108하늘계단이 신사 참배길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네요.

 

2부의 걷기 경로들은 구릉이라는 지형적 특색, 그리고 도시 구조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철도라는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한국 아파트의 산 역사 성요셉아파트, 서소문아파트, 충정아파트와

기생충의 배경이 된 아현동일대 등 경사지에 들어선 다양한 삶과 흥미로운 경관들을 살리면서도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소개 했다.

 

경의선숲길을 따라 걸으며 공덕동 일대에서 60~80년대 근대화와 개발 시대의 유산들을 만나고 옛 경의선의 수난사를 훑는다.

신촌연결선이 만들어 놓은 창천동 서측 가로경관과 신촌일대의 도시 구조의 특색과, 홍대스러운 공간에 대해 살펴본다.

 

버려진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빈 공간을 채우거나, 채우지 않거나.

지금가지 걸어온 옛 용산선 철길, 경의선 숲길은 빈 공간을 채우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채우지 않음으로서 역설적으로 사람들로 채워짐을 확인했다.

 

물질적인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운영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공간의 운명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인식하고 있는 장소에는 각각을 대표하는 시대성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한 장소에서 한 시절을 진득하게 머물다 떠나버리게 되면 자기가 머물던 시대와 그곳에서의 일들, 자주 보던 경관을 개인의 마음 한켠에 그대로 저장하고 반영하게 된다.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서 시대성을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장소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걸으면서 장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면 애정은 장소의 역사로 확장 될것이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오래 그리고 자주 보니 그동안 봤던 동네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고 애정이 생겼다.

애정이 생기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욱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알고 싶어졌다.

 

나의 도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으신 분들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걸으면보이는돗서울 #이종욱 #드로잉 #에세이 #뜨인돌 #여행 #건축 #서울 #골목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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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 뜨인돌 그림책 63
안데르스 홀메르 지음, 이현아 해설 / 뜨인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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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하고도 파릇파릇한 상상력이 가득한 글 없는 그림책[우리의 시간]

 


겉표지만 보고는 좀처럼 이 책이 무슨 내용일까 난해하기만 한데

속표지의 그림은 행복하기만 하다.

빨간색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초록색 옷을 입은 아이를 들어 올리고 있다.

아이는 웃으며 만세를 부르고 아이를 흐믓하게 바라보는 여자의 표정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슬픔이 넘실넘실 밀려온다.

 

여자는 어디 아픈지 링거를 맞으며 힘없이 앉아 아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 뒤 백발의 어른은 애써 태연하게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집의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 보인다.

속표지에서 보았던 행복한 모습의 그림은 액자가 되어 벽에 걸려 있다.

 

엄마와 이야기를 한 아이는 방을 뛰쳐 나가고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애가 닳은 할머니는 문 앞에서 아이를 달래지만..,

 

아이는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하기만 하다.

자신이 가지고 놀던 곰탈을 쓰고 창문을 빠져나가 여행을 떠난다.

 

그곳엔 엄마가 앉아 있던 빈 의자가

엄마의 무릎을 덮던 숄과 함께 있다.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요?

 

아이는 반려묘와 함께 밤하늘을 온 우주를 여행한다.

눈물을 담은 구름 한 조각도 담고

반짝반짝 붉은 광석도 담고

자전거를 타고 북을 두드르며 악기를 연주하는 일행들 뒤를 따라 어딘가로 떠난다.

그러나 기쁘지 않다.

놀이공원의 기구를 타고 있지만 신나지 않다.

 

아이는 어두컴컴한 낯선 땅속에서도 초록색 광물을 주워 담고

초록색 광물은 연료가 되어 기차를 어딘가로 이끈다.

할머니가 가꾼 식물이 커다랗게 자라 그곳에서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그러다 입에 파이프를 물고 녹색의 긴 아우라를 내뿜는 아주 큰 물소를 만닌다.

큰 물소는 낯설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아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물소를 대한다.

 

아이는 그동안 모아 온 것들을 한데 모아 사랑을 만든다.

아이가 그동안 모은 것들은 아이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고~~

여행에서 돌아와 곰의 탈을 벗고 엄마에게 안기며 마음을 전하는 아이.

엄마의 마음도 한결 놓인 듯 얼굴이 편해 보인다.

엄마의 마음,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인 듯하여 마음이 찡하며 아려온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식물에 물을 뿌린다.

생명수와도 같은 할머니의 손길은 식물을 넘어 우리들의 마음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독특함과 신비함이 가득한 마음속으로 떠난 아이의 시간여행.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기차, 물소와 파이프, 잠자리채, 트럼펫, 녹색 광물 등 여행 내내 발견한 소중한 것들은 아이의 집 방안에 그동안 고이 모아 두었던 추억의 단편들이었다.

아이는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따라 신비로운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는지,

그리고 기억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떠올리면서...

아이는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차근차근 기억한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면서 아이는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이처럼 씩씩하고 용기 있는 아이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할 수많은 어려움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언젠가 다가올 내 이야기인것 같아 마음이 뭉클하고 무겁지만,

우리 아이도 함께 한 시간들을 추억삼아 이 과정들을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책 [우리의 시간]을 만나보세요.

 

 

이 책은 허니에듀 서평단으로 출판사 뜨인돌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우리의시간 #안데르스홀메르 #뜨인돌 #이별 #추억 #사랑 #인생 #시간여행 #기억

#글없는그림책 #허니에듀 #허니에듀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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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수목원
한요 지음 / 필무렵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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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의 흔들림이

살랑살랑 흙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것 같은 책 표지가 주는 편안함

책 제목이 주는 알듯 모를 듯 다가오는 미지의 느낌이

마구 설레게 하는 [어떤 날, 수목원]



표지와 느낌이 다른 책등, 녹색의 헤드밴드,

그리고 면지의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은

북아트를 배울 때 책의 구조를 설명해주시며 보여주신 교본처럼 제법 두툼하다.

 

·뒤 면지의 수목원 입장권은 작가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한때는 나무들 이름을 외우며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열매가 어떤 모습인지

나무의 외피(겉모습)가 이러네 저러네 하며

동기들과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찍어온 사진들 보며 공부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 나무가 그 나무 같고 이름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만에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학창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거 같아 마음이 설렌다.

 

이른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처럼

기온이 평년보다 높으니 소중한 사람과 나들이라도 다녀오라는 글귀는 정겹기만 하다.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혼자 오롯이 숲을 느끼는 사람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동호회 사람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까지.

 

푸른푸른 나뭇잎과 나뭇잎 그리고 나무들,

산새와 곤충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는 수목원.

 

장소가 주는 사랑에 대한 글을 읽은 작가님은

10여 년 전 샤모니 산을 오르는 기차 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지금 죽어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완전히, 온전하다는 느낌을.

일 때문에 가게 된 수목원에서 다시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이따금 수목원으로 향했고.

자신이 느끼는 온전함이 장소가 주는 커다란 사랑 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목원을 걸으며 그린 것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날, 수목원]은 어디서부터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작가님이 수목원을 다니며 느꼈던 그때그때의 느낌을 글로 옮기고 그림을 그렸기에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같은 장소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구구절절 피어나는 시절을 걷게 만드는 그 곳.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숲이 되고 내가 일상이 되는 그 순간들,

어느새 생각과 기억이 파도처럼 저 멀리까지 왔다 사라진다.

 

평상시엔 엄두도 못내 내 뱉지 못하는 말들도

숲에선 나를 챙길 여유와 용기가 생겨 내뱉게 된다고...

숲은 그렇게 희망을 준다.

 

수목원을 찾는 이들이 지나는 길 사이사이엔

10년 전 태풍을 맞은 나무가 여전히 그 모습으로 그대로 쓰러져 있다.

자연은 거기서 다시 또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회복하듯이...

고목 언저리에서 이끼와 버섯 같은 생물들도 살아간다.

쓰러진 고목이 분해되는 데는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한순간에 모습을 감추는 게 아니라 서서히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목원 언저리에서 중심이 되어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바람을 느끼고

비가 오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잎끝에 살포시 내려앉은 물방울을 튕기며 반항도 해보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벗 삼아 누워도 보고

바닥에 쌓여 있는 나뭇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걸어도 보고

소복이 쌓인 눈길 위에 내 발 도장을 남겨도 보고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수목원 안에 존재해 있다.

 

나뭇잎이 무성한 노란 나무를 보니 우리 집 입구에 서 있던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집을 짓고 대문 옆에 심었던 은행나무는 화장실의 양분을 잘 빨아 먹었는지 키가 훌쩍훌쩍 자라 집보다 높게 뻗어 올라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을 가득 매달았다.

아빠는 은행 열매가 떨어져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아침저녁으로 대문 앞을 쓸고 또 쓸었다.

그리고 냄새나는 은행을 까서 한쪽에 조심스레 놓아두면

누군가가 가져갔는지 은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는 매번 그런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감당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수목원의 수많은 나무들처럼...

책 페이지페이지 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쏟아져 나온다.

 

때로는 동행이, 때로는 날씨가, 때로는 지나간 일과 먼 미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수목원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길에, 그곳을 걸을 때, 돌아올 때,

돌아와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목원이 누군가에게는 초록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유이며,

누군가에게는 소풍으로 기억되듯, 어떤 날은 단색으로, 어떤 날은 한두 가지 색만으로,

어떤 날은 다양한 색깔로 수목원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담아낸 그림책 같은 에세이다.

 

나에게 수목원이며

당신에게 어딘가일...

그렇다.

쿼렌시아.

자기만의 피난처이자 안식처, 회복의 장소라는 뜻의 쿼렌시아.

그곳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과 치유를 주고받는 마술 같은 공간.

수목원은 살면서 맞닥뜨리는 막연한 불안과 초초, 후회와 책망,

그로 인한 삶에 대한 물음표들을 고요히 품어 계속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작가님의 안식처였다.

 

나를 잠시 머물게 해 주는 그곳,

아늑한 벤치처럼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백의 하얀 페이지들은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수목원 여기저기를 누비며 나의 이야기를 찾으러 가라 한다.

작가님이 여백의 페이지에 나의 이야기를 채워달라고 소곤대는 듯하다.


 

이 책은 산책하기 좋은 어떤 날,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걷기 좋은 수목원이다.

수목원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색연필 드로잉으로 담아낸

맑고 담백한 그림책이다.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은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어떤 날, 수목원]

 

 



이 책은 허니에듀 서평단으로 출판사 필무렵으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어떤날수목원 #한요 #필무렵 #수목원 #안식 #드로잉 #에세이 #허니에듀 #허니에듀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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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생각하는 마흔인데요 -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고원 지음 / 영수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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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오늘만 생각하는 마흔인데요](고원 지음)를 만나봅니다.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의 책크기가 제일 맘에 드네요.

그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옥색의 표지 색도 맘에 쏙 들구요.

울퉁불퉁 아니 뾰족뾰족 선인장 반지속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입니다.

 

불혹이라 함은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위정편()〉에 언급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나는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도달한

오늘만 생각하는 오십대랍니다.

 

'유혹에 저항하느라 자책할 바 에야 차라리 홀라 당 넘어가 보는 건 어떨까?'

이 글귀 멋지지 않나요?

 

갈대처럼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며 사는 삶이 아름답다는 걸

주인공 원보다 훨씬 늦게 알았네요.

이 책을 조금 빨리 만났더라면 내 삶도 변했을까요?


원이 친정엄마의 유품반지를 보며 미혹되지 않으려 했던 엄마를 떠올리는 장면을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의 반지를 꺼내어 보았어요.

그 느낌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여자는 가꾸어야 한다며 화장품과 악세서리를 자꾸 사며 꾸미기를 좋아하던 엄마,

그 모습이 이해가 안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

엄마도 미혹되었 던 불혹의 시절을 보냈었는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아내로, 며느리로, 직장인으로, 자식으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만 남아있는 현실.

내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나를 위한 시간과 소비는 사치가 되어버려

잠시라도 한눈을 팔라치면 보지 않아도 되는 눈치를 보게 되는 현실.

그로 인해 어느샌가 멀리 멀어져만 가버린 나의 꿈.

이제 나도 내 꿈에 책임을 지고 싶은데 이제는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금세 시든 꽃처럼 아무리 좋은 것도 한 순간뿐이고,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허망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렇게 많이 웃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순간을 즐겼기 때문이래요.

순간에 온전히 미혹되었기 때문에...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무쇠보다 더 단단한 줄 알았어요.

그러나 아프고 나니 무엇을 하려고 해도 제약이 따른답니다.

지금은 겨울방학에 2주일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더 많은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시간을 보내려고 공통의 시간(여행)을 가지려 노력 중이예요.

밖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주변에서는 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몸이 아픈데 어디를 그렇게 돌아댜니냐며 걱정을 해주지요.

걱정하는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이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아름다움을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것이죠.


좋아하는 걸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하지만 너무 늦은 때는 있다.’라는

말에 나는 완전 공감합니다.

아프고 병들면 못 논다고 젊어서 놀라는 노래가사처럼

적기를 놓치면 그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르신들이 내가 죽어야지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그 이면에는 인생의 쓰건 달건 간에 맛을 봤으니 인생이란 걸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입안에 넣고 알사탕처럼 우물거리고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영원히,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다는 거.

어르신들은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니까 더 원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몸이 죽음을 향해 간다고 해서 마음까지도 죽음을 향하는 건 아니니까.

 

 

대나무처럼 올곧게 버티다 힘없이 꺾여버리는

큰 일을 겪었기에 이제는 버티지 않으려 합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미세한 흔들림에도 흔들리며 열심히 미혹 당하려 하지요.

삶에 활력을 찾으려 자꾸 딴짓을 하면서 말이죠.

내가 미쳐 몰랐던 세상,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눈을 돌려 활기를 찾으려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라 그러면 멋진 세상을 만날 것이다!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불혹이든 지천명이든 망설이지 말고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에 미혹당해보시기를....

 

 

 

 

 

이 책은 허니에듀 서평단으로 출판사 영수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오늘만생각하는마흔인데요 #고원 #영수책방 #불혹 #미혹 #40#허니에듀 #허니에듀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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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학원 준비반 준비반 아이스토리빌 44
전은지 지음, 김무연 그림 / 밝은미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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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일등학원 준비반 준비반[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일등을 향해 돌진하는 학생들의 입시를 위한 경쟁이야기를 펼쳐내는 건가 싶었는데~~  

 

얼마전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직장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경계하는 눈초리.

 

일등학원은 학원비만 내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영어 학원이 아니다.

현재 자기 반에서 일등이거나 아니면 일등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또는 일등이 되고 싶어서 무지하게 노력하는 학생만 받아 주는 학원이다.

 

이미 일등인데 도대체 학원에 왜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 일등인 아이들은 1,

일등은 아니지만 조만간 일등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은 2,

당분간은 일등이 되기 힘들지만 일등이 되려고 엄청 노력하는 게 확실한 아이들은 3반이다.

3반 아이들 실력도 만만치 않아서 3반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실력은 안 되지만 3반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아이들은 3반에 들어가게 준비해 주는 일등 준비반에 들어간다

   

 

주인공 신수아는 아무나 갈 수 없고 선택받은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특별한일등학원이 아닌 학원비만 내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평범한일반 학원에 다닌다.

일등학원 옆에 있는 수아가 다니는 학원은

한마디로 일등학원이 아닌 일등학원의 준비반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일등학원 준비반 준비반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를 도와주는 학원이 있다니..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고가의 비용을 받고 학습을 도와주는 컨설팅 업체가 있는데

이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숨이 턱 막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에 속상하다.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짠하게 와 닿는다.

 

그런 학원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

전학 온 즉시 일등학원 2반에 합격한 안바다.

가느다란 다리와 예쁜 얼굴에 옷도 잘 입고. .

염색한 머리카락에 비싼 머리핀까지 하고 다니는 바다는

수아에게 거슬리고 못마땅했다.

어디하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없는 바다 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은 공평하다는 신념이 무너지는 것 같아

요즘 말로 짜증이 난다.

 

우연히 바다의 손에서 발견한 수상한 흉터!

수아는 바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쟤는 날라리가 분명해. 아니면 일진일 수도 있어.

친구들 때리고 돈 뺏는 일진 말이야.

다시 보니까 뒤통수가 아주 불량해 보여.

저 정도로 불량하고 또 멋 부리는 데 정신이 팔린 날라리라면 일등학원은 아니겠네.

저런 애가 일등학원에 붙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원래 예쁜 애들은 일등학원에 잘 못 붙어.”  

 

얼마 후 학교에는 바다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하고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바다도 뭔가를 감추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일등, 멋진 외모 근사한 옷차림,

비교와 경쟁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로 소중한 건 무엇일까?그런데 수아의 이런 비뚤어진 마음,

정말 수아만의 잘못일까?

알게 모르게 뭐는 좋고 뭐는 나쁘다고 우리가 다 함께 선을 그어 놓은 세상엔

잘못이 없을까?

부모님이 텔레비전이 SNS가 좋은 거라고 보여 주는 것들을

수아 같은 어린이가 무시할 수 있었을까?

올림픽에서 제일 높은 시상대에 선 일등도 칭찬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꼴등도 칭찬해 주는 일,

크고 작고 날씬하고 뚱뚱한 모든 겉모습은

서로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 다 개성이 있는 거라고 말해 주는 일,

특별한 옷차림을 하고 온 친구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도 좋지만

그게 평범한 옷차림에 대한 비교거리는 될 수 없다고 알려 주는 일.

 

오늘도 비교와 경쟁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로 소중한 건

그런 게 아니라고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친구에게 던진 한마디가 학교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무래도 바다는 학교 폭력에 휘말려 우리 학교로 강제 전학을 온 거 같아.”

우리 반에 일진이었던 애가 있대.”수아에게 대단히 사악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바다가 미웠고, 미운 만큼 자세히 보다 보니 수상쩍은 게 보였고,

그걸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뿐이다.

 

무심코 한 사소한 말과 행동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수아도 몰랐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별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이 나쁜 짓이 되기도 한다고.

그게 말과 행동이 갖는 무게다.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 폭력은 아니다!

말로 때리는 것도 폭력이다!‘

    

뉴스로 티비로 많이 보게되는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의 단면을 보는 듯 하다

 

수아 한 사람의 추측이 이라는 날개를 달고 소문이 되어 학교 전체에 퍼지는 데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문은 진위 여부를 가릴 새도 없이 바다의 마음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함쟁이 엄마라는 그림책이 오버랩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잔소리와 쓴소리들이

아이의 온몸을 생채기 내서 너덜너덜해진 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는 한마디로 아이의 마음을 달래면 그것이 과연 달래질까?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만 폭력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해주는 [일등학원 준비반 준비반]

 

치열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아이들이 올바르게 갈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 책은 허니에두 서평단으로 출판사 밝은미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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