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수목원
한요 지음 / 필무렵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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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의 흔들림이

살랑살랑 흙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것 같은 책 표지가 주는 편안함

책 제목이 주는 알듯 모를 듯 다가오는 미지의 느낌이

마구 설레게 하는 [어떤 날, 수목원]



표지와 느낌이 다른 책등, 녹색의 헤드밴드,

그리고 면지의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은

북아트를 배울 때 책의 구조를 설명해주시며 보여주신 교본처럼 제법 두툼하다.

 

·뒤 면지의 수목원 입장권은 작가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한때는 나무들 이름을 외우며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열매가 어떤 모습인지

나무의 외피(겉모습)가 이러네 저러네 하며

동기들과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찍어온 사진들 보며 공부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 나무가 그 나무 같고 이름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만에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학창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거 같아 마음이 설렌다.

 

이른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처럼

기온이 평년보다 높으니 소중한 사람과 나들이라도 다녀오라는 글귀는 정겹기만 하다.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혼자 오롯이 숲을 느끼는 사람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동호회 사람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까지.

 

푸른푸른 나뭇잎과 나뭇잎 그리고 나무들,

산새와 곤충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는 수목원.

 

장소가 주는 사랑에 대한 글을 읽은 작가님은

10여 년 전 샤모니 산을 오르는 기차 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지금 죽어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완전히, 온전하다는 느낌을.

일 때문에 가게 된 수목원에서 다시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이따금 수목원으로 향했고.

자신이 느끼는 온전함이 장소가 주는 커다란 사랑 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목원을 걸으며 그린 것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날, 수목원]은 어디서부터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작가님이 수목원을 다니며 느꼈던 그때그때의 느낌을 글로 옮기고 그림을 그렸기에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같은 장소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구구절절 피어나는 시절을 걷게 만드는 그 곳.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숲이 되고 내가 일상이 되는 그 순간들,

어느새 생각과 기억이 파도처럼 저 멀리까지 왔다 사라진다.

 

평상시엔 엄두도 못내 내 뱉지 못하는 말들도

숲에선 나를 챙길 여유와 용기가 생겨 내뱉게 된다고...

숲은 그렇게 희망을 준다.

 

수목원을 찾는 이들이 지나는 길 사이사이엔

10년 전 태풍을 맞은 나무가 여전히 그 모습으로 그대로 쓰러져 있다.

자연은 거기서 다시 또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회복하듯이...

고목 언저리에서 이끼와 버섯 같은 생물들도 살아간다.

쓰러진 고목이 분해되는 데는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한순간에 모습을 감추는 게 아니라 서서히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목원 언저리에서 중심이 되어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바람을 느끼고

비가 오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잎끝에 살포시 내려앉은 물방울을 튕기며 반항도 해보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벗 삼아 누워도 보고

바닥에 쌓여 있는 나뭇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걸어도 보고

소복이 쌓인 눈길 위에 내 발 도장을 남겨도 보고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수목원 안에 존재해 있다.

 

나뭇잎이 무성한 노란 나무를 보니 우리 집 입구에 서 있던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집을 짓고 대문 옆에 심었던 은행나무는 화장실의 양분을 잘 빨아 먹었는지 키가 훌쩍훌쩍 자라 집보다 높게 뻗어 올라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을 가득 매달았다.

아빠는 은행 열매가 떨어져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아침저녁으로 대문 앞을 쓸고 또 쓸었다.

그리고 냄새나는 은행을 까서 한쪽에 조심스레 놓아두면

누군가가 가져갔는지 은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는 매번 그런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감당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수목원의 수많은 나무들처럼...

책 페이지페이지 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쏟아져 나온다.

 

때로는 동행이, 때로는 날씨가, 때로는 지나간 일과 먼 미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수목원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길에, 그곳을 걸을 때, 돌아올 때,

돌아와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목원이 누군가에게는 초록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유이며,

누군가에게는 소풍으로 기억되듯, 어떤 날은 단색으로, 어떤 날은 한두 가지 색만으로,

어떤 날은 다양한 색깔로 수목원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담아낸 그림책 같은 에세이다.

 

나에게 수목원이며

당신에게 어딘가일...

그렇다.

쿼렌시아.

자기만의 피난처이자 안식처, 회복의 장소라는 뜻의 쿼렌시아.

그곳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과 치유를 주고받는 마술 같은 공간.

수목원은 살면서 맞닥뜨리는 막연한 불안과 초초, 후회와 책망,

그로 인한 삶에 대한 물음표들을 고요히 품어 계속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작가님의 안식처였다.

 

나를 잠시 머물게 해 주는 그곳,

아늑한 벤치처럼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백의 하얀 페이지들은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수목원 여기저기를 누비며 나의 이야기를 찾으러 가라 한다.

작가님이 여백의 페이지에 나의 이야기를 채워달라고 소곤대는 듯하다.


 

이 책은 산책하기 좋은 어떤 날,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걷기 좋은 수목원이다.

수목원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색연필 드로잉으로 담아낸

맑고 담백한 그림책이다.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은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어떤 날, 수목원]

 

 



이 책은 허니에듀 서평단으로 출판사 필무렵으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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