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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 - 나의 안녕에 무심했던 날들에 보내는 첫 다정
김영숙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5월
평점 :
❝나에게 다정해도 괜찮아.❞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에세이는 뭐랄까, 좀 심심하달까? 그런 느낌이 드는 장르였다.
내가 굳이, 당신의 일상을, 이렇게 구구절절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오~~~~~ 하며 심드렁하게 읽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에세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들 앞에 애쓰며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한 감동, 동지애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당신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군요, 그걸 이런 마음과 모습으로 견뎌오셨군요. 아직도 분투중이시군요.
그럼에도 나아가는 모습들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의 메인 작가인 저자 김영숙. 25년 차 방송작가로 걸어온 그녀가 펼쳐놓은 이야기가 바로 그랬다.
중년의 남자들이 은퇴 후 모두가 꿈꾼다는 자연인.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하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자신만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이들. 그들이 풀어놓는 대하소설급 이야기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본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적용하고 마침내 수많은 눈들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모습들을 책에 펼쳐놓는다.
극적인 반전이 없다는 출판사의 소개처럼 글은 정말이지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다. 🫢
그런데…. 왜 계속 읽게 되지? 🤓
그리고…. 나 왜 우냐 😭😭😭😭
소록도에 취재를 간 이야기, 아홉 살에 엄마를 보내고 그 슬픔을 꺼내놓고 꺼이꺼이 우는 노년의 남성 이야기.
워킹맘으로 모두의 눈치를 보며 하루 종일 애썼던 시간속의 그녀. 엄마를 보내놓고 벚꽃나무 아래 앉아있는 누군가를 엄마로 착각하며 쏟았던 눈물, 상담 공부를 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용기 있게 꺼내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꽤나 몰입하며 읽었다.
❝언젠가 나와 사이가 각별했던 구순의 시할머니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행복했던 한 장면을 꼽으라면 언제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할머니는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던 어느 추석 날 어린 7남매를 목욕시키고 장에서 사 온 옷을 입혀서 방에 나란히 앉혀놓았던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노라고, 사진기가 없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고 했다. ❞ p.180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명절이면 목욕탕에 가서 가죽까지 벗겨낼 기세로 엄마는 때를 밀어주셨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집에 와서는 새옷을 입었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도 그런 삼남매가 너무 이뻤을까?
징그럽게 무섭지는 않았을까?
저것들 어떻게 먹이고 입히나. 하며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했던 내 지난 생각들이 무색해졌던 순간이다. 물론 내 엄마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에 천 번이 넘도록 들었던 “엄마!”란 소리. 귓밥을 파면 엄마가 찍혀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던 지난 시절이 왜 그토록 그리워지던지. 배 두둑하게 먹여놓고 목욕시키고 잠옷을 입혀놓으면 반짝반짝 빛이 났던 내 아기.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매일 봐도 자꾸 보고 싶은 내 첫 사랑. 그 아이와 지나왔던 시간들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과거는 늘 아름답게 추억되고, 현재는 힘들기만 하다고 여겨지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신에게 다정했던가. 왜 이것밖에 못 하냐고, 내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는 않았나. 이제는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해도 된다.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의 행복을 찾아도 된다.
내가 이래도 되나? 가족에게 미안한데.. 하는 생각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어느 시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보자. 잘 지내냐고 어떠냐고 그리고 애썼다고…
오늘부터는 당신의 안부를 물어도 좋다.
❝지금까지 어떤 삶의 사건들도 결국 자신의 가치를 손상시키지는 못했다는 것, 비록 수없이 흔들렸겠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이 응축돼 지금에 도착했기에 우리가 지나온 시간은 모두 의미 있었다는 것까지도.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