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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보호인가, 가둠인가❞
천 년이 흐르도록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사크라 수도원. 그곳에 이제 막 숨을 거두려는 한 노인이 있다. 서원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40년간 그곳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었던 한 남자. 그에 대한 다양한 썰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건,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다. 바티칸의 엄명으로 겹겹의 잠금장치가 있는 곳에 가둬진 석상 피에타.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보호하려는 건가, 가두어두려는 건가.
그리고 시작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긴 이야기.
가난한 집, 왜소증.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난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미모). 전쟁으로 아버지가 죽자 석수장이인 알베르토에게 맡겨진다.
이탈리아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의 유력한 귀족가문인 오르시니의 막내딸 비올라. 책 읽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 배움에 목이 말라있던 아이.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비올라.
타고난 석공의 자질을 지닌 미모와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재능을 타고난 비올라의 우연한 만남. 그 후 그들이 나눈 우정, 갈등, 성장의 서사가 죽음을 앞둔 미모의 회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왜, 석상은 지하에 유폐되어 있는 것인가?
그 조각에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동명이인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비교되는 미모의 피에타.
그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일까?
모든 걸 가졌지만 자유롭지 않은 비올라, 가진 것이 없지만 자유를 가진 미모. 여자라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늘은 주류가 되지 못한다. 원치 않는 결혼을 거부하며 꺾였던 그녀의 날개는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동안 미모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간다.
2차 세계대전, 무솔리지 집권, 파시즘, 국가 주도하에 벌어지는 폭력. 타고난 재능도 정치를 찬양하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존재의 목적이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은 비올라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미모와 비올라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아픔을 품고 따로 혹은 같이 혼란의 시대를 건넌다. 현실이란 울타리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사,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선명한 묘사가 압권이다. 대리석을 깨는 망치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다소 두껍다고 느껴지는 600페이지지만 잘 쓰여진 소설은 두께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상당하다. 마지막엔 미모가 망치로 내 뒷통수까지 그냥 가격해버렸다!
❝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게, 상처를 받는 것이 /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쳐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네게 / 그들은 포기하라고, 잠자라고, 누우라고 요구할 텐데 / 네 입을 다물게 하고 널 구슬리고 네 무장을 해제하려고 들 텐데 / 나는 우리보다 앞섰던 다른 많은 여자들처럼 우뚝 선 여자다 / 나는 우뚝 선 여자다, 그리고 너 역시 그러리라.❞ p.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