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나에게 쓴 편지 카프카 전집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화영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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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고,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쓴 책들은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는 세상이 무방비 상태의 인간들을 찢고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너무나도 형안이 밝고, 너무나 현명했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그는 싸우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는 너무나 약해서, 몰이해와 비정함과 지성적 거짓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낼 힘이 없었던 것이다.” p.436, 밀레나의 카프카에 대한 애도사.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으로 알려진 밀레나 예젠스카.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폴락과 결혼을 하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결혼 후 빈으로 이주, 서툰 독일어, 남편의 잦은 부재 등으로 그들의 결혼은 시든 배춧잎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카프카.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밀레나는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둘은 작가와 번역가를 떠나 열정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카프카는 생애 후반 3년 간 밀레나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고, 자신의 일기장도 보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깊은 관계여야 자신의 일기장까지 넘길 수 있을까. 그만큼 자신을 잘 이해해줄거란 믿음이 있었던 걸까? 신랑에게 내 일기장을 넘길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오우 노우!!!


편지를 읽다보면 카프카가 병환으로 인해 점점 말라가고 있는 대목이나 식사를 거의 못하는 대목에선 뭐랄까 짠함이 밀려온다. 각혈이 멈추길 얼마나 바랐을까. 그녀를 만나길 얼마나 바랐을까. 힘든 몸 상태에서도 그녀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기차 시간표까지 연구하는 모습에선 여느 연인과 다르지 않는 모습과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판본에선 처음으로 편지들이 쓰인 날짜를 밝혔따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자료에서 ‘내적 논리에 따라 올바른 순서를 추정’하면서, ‘개개의 편지들을 연결할 수 있게 해 주는 명백한 단서’를 통해 순서를 추측해냈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 쓰인 노력이 어마어마할 것 같아 부록을 읽는 내내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클라라와 브람스가 주고 받은 편지 중, 브람스의 편지만 남아있다고 알려졌는데, 카프카와 밀레나와 비슷한 모양이다. 밀레나가 카프카에게 보낸 편지는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아쉽다 ㅠ


카프카의 문학을 읽는 이유는 20세기나 21세기나 인간들이 느끼는 불안, 고독, 소외, 실존에 대한 고민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카프카의 문학이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분들에게 이 책은 카프카에 대한 턱을 좀 낮춰주지 않을까? 카프카에게 한 걸음 다가가기!!
카프카의 편지뿐 아니라 밀레나의 애도사와 단편도 수록이 돼 있는데 그 글을 읽는 것도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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