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 외 옮김 / 돌고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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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겼다.“ p.67

모성이라는 사건! 아이를 원하건 원치 않건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것은 분명 축복이기도 고통이기도 하다. 한정된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일을 충실히, 만족스럽게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창작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여성이라면 어떨까?


여성의 교육 확대와 피임법의 발달로 임신을 선택할 수 있었던 20세기 여성작가들. 그들은 돌봄과 작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었던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작가인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등에게 작가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이를 버렸다고 비난받은 도리스 레싱,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이를 아파트 비상계단에 가두었다고 무고를 당한 앨리스 닐의 이야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유아차를 밀고 가다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가운데 아이의 부름에 응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 두었던 작가들의 모습도 있다. 조각조각난 창작의 시간들을 이어붙여 하나의 패치워크를 완성해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어슐러 르 귄”이었다. 그녀의 재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남편 찰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를 돌보는 낮시간에는 상상의 영역을 확장시켰고, 밤 시간엔 그 상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 나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창작에 쓸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그 삶이 자신에게 안겨주는 긍정적인 면과 풍요로움에 집중한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개인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가정을 꾸리고 집안일을 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게 된다 안 할 수는 없는 그 시시한 일상적 일들이 내 삶에 균형을 잡게 한다.”p250


창작과 양육 사이의 긴장감, 끊이없는 감시와 비난의 시선 속에서 작가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녀들의 고군분투를 읽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세상에 내놓은 창작물들은 죄책감, 창작을 향한 허기, 슬픔, 좌절, 아이들을 사랑 등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지금도 끝없이 방해받으며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이땅의 많은 여성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줄리 필립스 역시 돌봄과 작업 속에 균형을 잡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을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 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마치고 보니 둘 다 대학생이 돼 있었다”(p.534)고 하니 말이다. 지금도 돌보과 작업이 현재진행형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계속 써주시라.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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