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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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해방일지 로 정지아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죽음, 사상이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굉장히 위트있게 해학적으로 그려낸 글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날들’. 이 책은 #숲의대화 가 출간된 지 만 십 년을 기념하여 나온 개정판이다.


“니는 프롤레타리아,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다.”
사상이 신념이었던 동갑내기 도련님 혁재. 혁재를 향한 사랑이 신념이었던 순심. 자신의 아이를 밴 순심을 운학에게 보내고 혁재는 빨치산 행렬에 가담하다 죽고 만다. 혁재를 그리워하는 순심을 평생 사랑한 운학. 자신이 죽으면 혁재와 헤어진 잣나무숲에 자신을 뿌려달라고 한다. 그 잣나무 숲에서 젊은 도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몽환적인 이야기.


“사랑이 워치케 신념이 된다냐.”
“사랑이 신념인 사람도 시상에는 있어라.” -숲의 대화


숲의 대화와 궤를 같이 하는 #혜화동로터리
헤어질 때의 인사가 “또 보자”가 아닌 “간다”로 변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세 노인의 이야기.
만석꾼의 아들로 빨치산이 된 ‘최’와 영어를 좀 한다는 이유로 미군 켈로(Korea Liaison Office)가 된 ‘박’, 프랑스 유학파 지식인 ‘김’의 대화를 통해 전쟁과 분단, 사상으로 얼룩졌던 한반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중증장애인 ‘그’가 자신이 가꿔놓은 헛개나무 과수원에 가정폭력으로 심신이 멍든 여인 ‘호아’를 숨겨주는 이야기다. 꽃처럼 살란 뜻으로 지어줬을 ‘호아’에게 헛개나무 꽃이 만발한 곳, 언제든 피할 곳이 필요하면 와도 된다는 의미로 내어주는 #천국의열쇠
나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으로 초대하는 그의 초대가 뭉클하기 그지없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던 아들이 어느 날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아들을 살리고자 23년간 변함없는 사랑으로 재활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노부부 이야기인 #브라보럭키라이프
사람구실 못하고 간신히 숨만 쉬는 아들이지만 그 아들이 보여줬던 기적들에 희망을 거는 노부부의 사랑은 눈물겹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도 품어 보는 희망,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을 살아가게 하는 기적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성격은 달라도 친자매처럼 지내온 세 과부 이야기인 #봄날오후과부셋 , 성격이 다른 자매가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이야기가 실린 #목욕가는날 , 종손을 외국인 며느리와 결혼시킨 이야기인 #핏줄 , 끝없이 땅속 암반을 캐내는 사내 이야기인 #인생한줌 , 글을 쓰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전직 기자의 귀촌생활의 어려움을 그린 #즐거운나의집 , 전직 고위층 간부의 아내인 김여사의 삶을 풍자한 #나의아름다운날들 , 노숙자들의 삶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존엄과 연대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절정


시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읽었다. 가독성이 뛰어남에도 빠르게 읽을 수 없었던 것은 각 작품마다 품고 있는 삶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이들의 괴로움, 그럼에도 끌어안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의 노력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잔인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삶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이들이 품어내는 삶이란 여정이 눈부시다. 누가 그들의 삶에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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