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킨 이야기 에디터스 컬렉션 14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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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실로 스승님이 사는 세계로구나. 이제 마침내 스승님과 같은 세계에 살게 되었구나!‘ p. 304


아름다움과 사랑에 미친 탐미 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다니자키 준이치로. 그의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슌킨 이야기”를 만나 보았다. 얼마 전 #고전살롱 1월 선정 도서인 설국으로 만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일본의 탐미 문학자 중 한 사람이다. 야스나리가 신라면 맛이라면 준이치로는 마라탕 맛이랄까? 첫 작품부터 세다!!


작품 못지 않게 작가의 이력 또한 상당히 독특하고 세다. 자신의 첫 번째 부인 지요와 이혼을 하고 친구 사또에게 재가시키로 한 ‘아내 양도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혼을 하려던 이유는 더 기가 막히는데, 열다섯 살 어린 처제에게 이끌려서라고 한다. 순종적이고 정숙한 아내와 달리 모던하고 강한 매력을 가진 처제에게 끌렸다는.. 와….
그 처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뮤즈가 된 듯 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문신‘, ’소년’에 등장하는 소녀와 처제의 이미지가 흡사하다고 하니 말이다.


표제작인 슌킨 이야기는 아홉 살에 안질로 인해 시력을 잃어버린 슌킨과 그녀의 길잡이이자,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사스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슌킨은 부유한 약재상인 모즈야 가문의 딸로 태어난다. 무용과 음악에 소질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얼굴을 가졌지만 실명이 되고 난 후, 무용은 접고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미센과 고토에 몰두하며 천부적인 재능을 뽑내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실력 그리고 고집세고 오만한 성격은 많은 적을 만들고야 만다. 모즈야 가문에 일을 배우러 온 사스케는 슌킨의 ”사스케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로 그녀의 수행원이 된다.


주종 관계였던 슌킨과 사스케는 슌킨이 사스케에게 사미센을 가르치면서 스승과 제자사이가 되고 종내에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녀의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사스케는, 불의의 사고로 얼굴에 화상을 입고 아름다운 얼굴을 잃어버린 슌킨을 위해, 너만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하마디로 자신의 두 눈을 바늘로 찔러 실명하게 만든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같은 처지가 된 것, 그녀가 평생 살았던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된 사스케는 눈은 멀었지만 기뻐하고 그런 그의 사랑에 슌킨은 말을 잇지 못하는데….


일곱 편의 작품에는 일본 문화, 거리의 풍경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머릿 속에서 영화 한 편 정도 상영할 수 있으리라. 특히나 자연을 묘사하는 부분은 오감을 자극하고야 만다.


센주 쪽에서 짙은 안개 속을 헤치고 나오는 스미다강은 고마쓰섬의 모퉁이에서 한 번 굽이친 후, 망망한 대하의 모습을 갖추고 봄에 취한 듯 나른한 물결을 햇빛에 반짝이면서 아즈마교 아래로 빠져나갑니다. 이불 같은 촉감이 느껴질 듯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는 몇 척의 보트와 꽃 놀이 배가 떠 있습니다. p.26


일곱 편에 담겨 있는 사랑 이야기는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왜곡된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놀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파괴하고 그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모습은 많이 불편했다. 작가 자체가 SM 기질이 있으신가 의심하게 되는데, 작가의 삶이 작품에 많이 투영되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맞는 걸로.. 독특하고도 낯선 작품을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매력을 지닌 작가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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