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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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정치인한테는요. 자기 부고 기사를 제외하곤 모든 기사가 이득이에요.”
여의도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족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의 범주가 다를 뿐 아니라 그냥 종족이 다른 듯했다. p.136

기자는 마이크를 갖고 있다. 이를 누구 손에 쥐여주느냐는 전적으로 기자의 선택이다. 어떠한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사실 강자는 이미 자체적으로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어찌 보면 기자의 것보다 더 큰 마이크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더 줄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p.183

“선배, 좋은 기자란 뭘까요?”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들, 약자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기자. 난 그게 좋은 기자라고 생각해.” p.323


기자로서의 촉이 예민하고 열정 만수르인 고도일보 초짜 사회부 기자 송가을. 그녀가 특종 세 개를 연달아 터뜨리고 기자들의 워너비 부서인 정치부에 입성한다. 가까이서 보니 압도당할 것 같은 국회의사당. ‘어라? 국회의사당의 돔이 민트색이었어?, 그간 하늘색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민트색이었다니.. 이건 쫌 충격인데?’ 그러나 여의도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더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받으며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입으로만 떠들며 온갖 대접 다 받고 사는 국회의원나리들이 일을 하는 곳. 절절 끓는 욕망의 용광로 속에서 정치부 말진 기사 송가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2007년부터 취재 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는 송경화 작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회를 출입하며 국회의사당 바닥의 먼지 한 톨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취재한 그녀가 써내려간 글은 정치 현장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개판이 따로 없구만!” 소리가 절로 나오고 한숨이 나온다. ‘저런 것들을 내 손으로 찍었단 말이가?’ 하며 내 손을 찍고 싶어진다.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멱살을 잡고 싶어진다.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이 신생아부터 노인, 때론 죽은 자까지 우리 모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린 정말 잘 알 수 있을까?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속에 정말 제대로 된 기사를 써 내는 기자는 몇이나 있는 것일까? 약자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의 마이크가 되겠다고 한 결심을 끝까지 지키고 가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대선까지 1년 6개월. 1년 6개월이란 시간 속에 법 제정을 둘러싼 단식투쟁, 끝장 연설, 국정감사 시즌이면 돌아오는 로비, 선거의 승리를 잡기 위한 제보조작, 부당 동원, 흑색선전, 대의와 명분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야합과 은밀한 거래.. 그럼에도 그 속에는 자신의 소신대로 움직이려는 이들이 있다. 넘쳐나는 권력자들의 말이 아닌 들리지 않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의 마이크가 기꺼이 돼 주려는 이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이들.


전작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송가을 기자. 제대로 물 만난 듯한 페이지 터너!!
16년 차 기자가 써 내려간 활어마냥 팔딱거리는 글을 읽다보니 어느 새 날이 밝아온다. 책을 덮고난 후 바로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건 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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