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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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는 #차문디언덕에서우리는 이라는 소설로 처음 만났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로 떠난 여인을 중심에 두고 쓴 이야기를 읽고, 요가에 진심인 작가님이 참 매력있게 다가왔다. 요가의 나라인 인도에서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하고 요가 철학을 공부한 작가님의 이력이 이번에 나온 깊은 숨이란 책 곳곳에도 숨어 있었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깊은 숨”이란 책은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쓴 것이라고 한다. 요가를 할 때 깊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듯이 소설 “깊은 숨”을 읽으면서 그런 평안함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일곱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소위 말하는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느낌이다. 성소수자, 입양아, 나의 근원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숨을 쉬고 있지만, 마치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감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주저앉지 않고, 다른 이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준다. 탁주를 담그고, 요가를 하고, 입양아의 친부모 찾기를 도와주고,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고, 감추고만 싶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면서…


일곱 편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으로 실린 #코너스툴 이었다. 복싱에서, 휴식 시간에 선수들이 앉아서 쉬는 의자를 일컫는 말이 동두천의 한 서점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비록 링에서 싸우듯이 살아가고 있지만, 잠깐씩 앉아 쉬어 갈 구석 자리가 필요하죠. 사람들에게 이 서점이 그런 자리가 됐으면 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p.265

소설창작강연의 강연자의 자격으로 코너스툴을 방문하게 된 이오진 작가와 책방 대표 박호산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한다.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친구로서의 감정으로 다가선 두 사람, 그리고 뭔가 암시하듯 등장하는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 간간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쓴 소설을 작가에게 보냈던 두 사람은 어느 새 가꿔진다. 레즈비언이었던 작가는 그저 박호산을 인간적으로 알고 싶을 뿐이었으나 무슨 오해가 생겼을까?


시간이 흘러 박호산의 딸이 주목받는 신인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오진 작가는 그 딸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달라고..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작가들이 견뎌야 하는 시선들을 자신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게 글을 써 달라는 책을 읽는 내내, 성소수자로 살아오며 늘 마음 조렸을 이오진 작가에게 박호산은 정말 “코너스툴”이었구나 싶었다. 그 자리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싶은 마음도 함께..


펜데믹 시대에 헝가리로 글을 쓰러 떠난 작가의 이야기인 “오지 않을 미래”에서 마지막 작품인 “코너스툴”까지.. 우린 누군가에게 코너스툴이 되어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래야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 같아 일곱 편을 읽는 동안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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