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쓰고 밥을 짓는다
김민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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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세상을 부숴버리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만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던 거였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삶을 놓아버린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있었다. 모든 순간은 내 것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던 모진 이별이, 어떻게 이런 일만 생기는 건지 원망했던 시련이,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힘겨운 시절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그래야만 했던 거겠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였다. p.81

▫️유서는 죽으려고 쓰는 게 아니라 살려고 쓰는 거였다. 유서를 마주하면 어떤 삶을 원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떤 부분을 후회하는지 알게 된다. 평소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끼게 된다. 유서를 쓴다고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삶을 대하게 된다. p.228


삶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 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곁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쓰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곁에 있어주고 사랑해줘 고맙다고 할 것 같다. 그 자리에는 돈도 명예도 스펙도 들어설 자리는 없다.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라고, 현재를 즐기라고, 너로 살아도 된다고, 눈치 보지 말라고, 넌 존재자체로 소중하다고 말하겠지. 유서 앞에 섰을 땐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도 자명하다.


가난과 차별, 임금체불에 폭력, 감금에 협박까지.. 안 당하고 살았으면 좋았을 일들을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작가의 기록을 읽어내려가는데 ‘나랑 참 많이 겹치네.’ 하는 생각을 했다. 가정 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느낀 우리 집의 가난이 그러했고,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을 오빠의 모습이 작가의 모습과 겹쳐서 누가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오빠도 그랬을까?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을까? 가족인데도 너무나 그 마음을 몰랐나 싶어 미안하고 미안했다.


긴 터널을 통과한 사람만이 빛의 소중함을 안다. 어두웠던 터널의 시간이 현재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란 깨달음만 있다면 그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험난한 산이 아닌 평지로 가라고 뚫어놓은 터널일 수도 있겠구나. 그 시간을 동력삼아 햇빛 아래서 찬란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그 걸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음. 그 걸음이 모여 만드는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인생. 남탓하지 않고 감사로 문을 여는 한 남자의 #인생찬가


우울과 희망이 공존하는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오뚝이 #뚝심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김민 작가는 이런 사람이구나.. 뚝심있는 사람, 누군가 넘어뜨리려 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감사함’으로 하찮은 돌덩어리를 보석으로 바꾸는 연금술사. 세상에 겁날 것도 하지 못할 일도 없는 강단이 있는 단단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한 번에 읽기 아까운 책이었다. 하나씩 곱씹으며 읽으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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