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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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판타지 거기에 호러까지 작품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는 천선란 작가라는 세계. SF가 이렇게도 따뜻할 수 있구나, 이렇게도 감동을 줄 수 있구나를 느끼며 장르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특히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SF의 진입장벽을 낮춘 천선란 작가. 이번엔 열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다양하고 단단한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이름 없는 땅에서 발을 딛고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지독히도 아름다운 이야기.

‘흰 밤과 푸른 달’, ‘바키타’, ‘푸른 점’, ‘옥수수밭과 형’, ‘제, 재’, ‘이름 없는 몸’, ‘—에게’, ‘우주를 날아가는 새’, ‘두 세계’,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까지.
열 편의 단편 중에서 #바키타 #옥수수밭과형 #두세계 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느 날, 빛나던 하늘이 갈라지면서 갑자기 나타난 외계생명 바키타. 그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공화합물과 쓰레기를 먹이로 삼는다. 인간들은 바키타를 믿으며 11년이란 세월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바키타는 쓰레기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먹으며 몸집을 불린다. 그리고 지구에는 바키타에 의한 인류 학살의 증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바키타의 가축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키타에 의해 공격을 받는 인간들의 모습은 그들이 동물을 학살하고 숲의 나무를 밀었던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는 인간이 바키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두 번 다시 어떤 것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p.79


자폐증 천재인 푸코는 부모님, 형과 함께 산다. 푸코에게 늘 다정했던 형은 백혈병을 앓다 끝내 숨지고 만다. 형의 부재로 인해 쓸쓸함과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푸코는 형과 자주 찾던 옥수수밭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을 만나게 된다. 자신과의 모든 일을 기억하는 형. 하지만 아직은 집에 갈 때가 아니라고만 한다. 그런데 전에 보이지 않던 숫자가 발목에 새겨져있다. ‘9’ 저것은 무엇인가..
형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푸코는 또 다른 형을 만나게 된다. 세 번째 형의 복사뼈 근처에는 ‘13’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정말 중요한 건 기억이야. 푸코와 아무리 똑같아도 푸코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건 푸코라고 할 수 없어. p.116


소설 기반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오감으로 읽도록 만든 ‘노랜드’ 온라인 서점. 소설 속 인물과 대화가 가능하고, 등장인물은 인공지능화가 이루어져있다. 어느 날 유라는 노랜드 사이트의 판매 도서인 ‘아락스’의 결말이 설명과 다르다는 항의를 받게 된다. 다양한 경로로 아락스에 접근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권한이 없다’였다. 아락스 구매 명단을 확인하던 유라는 서른다섯 번이나 완독했고, 나흘 전에 마지막 구매를 했던 신규영을 만나보기로 한다. 어렵게 만난 신규영은 어딘가 이상한 모습이다.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네가 나를 억지로 이해하려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폭력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지 마. p.351


소설이지만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열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간이 지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주불능 지구,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나일 수 있고, 너는 너일 수 있을지.. 나의 삶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따스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난 믿음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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