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식 만화 만들기 - 영화적 만화 창작을 위한 이론+실기 수업
오쓰카 에이지 지음, 선정우 옮김 / 북바이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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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은 만화가 영화화 되고 있고, 반대로 영화가 만화가 되기도 한다. 최근 <그 해 우리는>은 웹툰에서 드라마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에서 웹툰으로 만들어졌다. 매체간의 교류는 더 빠른 속도로 자유자재로 이동하고 있고, 이미 문화 소비자는 양 쪽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듯 하다. 하지만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라마만 보기도 하고,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은 웹툰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저 취향의 문제일까?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상대적으로 비선호하는 매체에 대한 아쉬움은 무엇 때문일까? 매체가 전환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손실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고도 보인다. <영화식 만화 만들기>는 이러한 손실인 만화와 영화의 매체 전환에 따르는 ‘해리’와 ‘충돌’에 대해 아주 전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이 책을 읽어본다면, 묘한 아쉬움 대신에 전환의 묘미에 푹 빠져 양쪽 매체를 볼 때에 놀라움을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 만화를 서로 대비할 때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여기서의 만화는 엄밀히는 웹툰이 아닌, 컷 크기가 다양하고, 양쪽 페이지롤 시선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만화책의 만화를 이야기한다. 웹툰은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가며 보는 것이 고정되어 있어서, 만화보다는 자유롭지 않다. 영화는 에니메이션이 아닌, 실제 촬영하는 영화를 말한다. 이에 따라, 카메라의 앵글, 시간의 소요 등에서 훨씬 느린 호흡을 가진다.


영화 제작자나 만화가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는 만드는 사람의 입장 뿐만 아니라, 독자 내지 시청자의 보는 방식의 차이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이사이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일단 영화로 만들어지면 만화에서 가능했던 독자의 주관적 편집은 불가능해진다. 만화 독자는 칸을 자신의 눈과 머리로 편집해서 읽는 데 익숙하다 보니 제삼자가 편집한 것을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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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만화와 영화 사이의 비판적인 논조가 궁금해서 선택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가감하여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보다는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유용할 듯 하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점을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지 말고, 실제 실습과 워크숍 과제를 해보면서 체득하기를 권하고 있기도 하다. 초반부에 제작 순서에 따라 만화가 영화를 차용해 나간 작품들과 영화로 만들어졌던 만화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일본 작품을 많이 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열성적인 서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만화와 영화 사이에 <전환에 따르는 '해리'와 '충돌'> 외에도 다른 기법 또는 문제점에 대한 수많은 고찰이 있을 수 있으나, 저자는 이 주제에 집중해서도 끊임없이 구체적인 사례로 논평한다. 해박한 전문가이자, 열정적인 도전자의 자세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의 열정에 힘입어 <영화식 만화 만들기>를 읽어본다면, 영화와 만화간의 전환이 있을 경우, 막연한 비판 보다는 구체적인 감상을 할 수 있을 듯 하다.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일단 영화로 만들어지면 만화에서 가능했던 독자의 주관적 편집은 불가능해진다. 만화 독자는 칸을 자신의 눈과 머리로 편집해서 읽는 데 익숙하다 보니 제삼자가 편집한 것을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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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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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의 정치 분야 유일한 장편이라니, 이 안에 눌러담은 발자크의 통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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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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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의 문제를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쓴 내밀하고도 완전한 이야기를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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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사람의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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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히스테리와 참전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결시키는 것은 일종의 도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피해자에게 난소 부근에서 유발되는 흔한 성평향적인 신경증 환자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전쟁에 다시 복귀할 수준으로 회복이 되면 더이상의 치료가 불필요한 전쟁 외상성 장애의 진단을 내린 것은 <심리적 외상>의 연구 자체의 결함이다. 파편화된 연구들을 일직선상에 세우고 현시대에서 허락된 담론의 포용성을 확장한다면, 실재하는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를 적극 파훼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시대의 담론이 이 책에서 열결짓는 심리적 외상의 범위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머리말에서 부터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쓰였음을 밝히고 있다. 페미니즘이 터부 또는 희화화 되고,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자리매김하는 하는 중에 여성주의적 입장만으로도 조용히 배척될까? 이런 걸 고민하기에는 이 책의 출간년도는 1997년, 우리나라 첫 출간도 십 년이 넘었으므로, 2022년 개정판 <트라우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곤란하다. 퇴화가 우리 사회를 좀먹듯 파먹고 있다는 반증일 만큼 곤란하다.

<트라우마>의 전반부는 18세기 프로이트의 연구에서부터 간헐적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었던 '심리적 외상'의 연구를 엮어나가면서, 의학적 관점 뿐만 정치 사회적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히스테리(히스테리아)의 정확한 원인을 지목하는 것이 여성 인권과 참정권 운동과 연결되고, 전후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는 결국 반전운동을 촉구한 맥락은 정치 사회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서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다.

한편으로 모든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 현시대에서는 심리적 외상에 불과한 트라우마가 엄살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계발식의 심리학자의 조언 대로 앞으로 나아가는게 중요하기에 아예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기술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부정이 30분 혹은 3초가 걸리든 실체 없는 엄살에 대한 부정이 필요하고, 어느 날은 3초만에 트라우마를 자동으로 극복하는 쾌거를 누리다가도 3년 동안의 원인 모를 개인적인 우울로 기운을 차리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반부에서 굵직한 역사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흥미로운 만큼 심리적 외상이 수면 위로 떠올라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다양한 증상들을 총망라해 가며 제대로 된 치료법들을 검토해 나가는 것도 흥미롭고 유익했다. 이러한 회복의 단계는 이미 자존감에 관한 논의의 질이 상당히 높아져 있고, 집단 상담등의 특정 영역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학과 정치의 연결과 같이, 흩어지고 간과된 심리적 외상에 대한 통합된 치료의 출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둔다면, 무지에서 비롯된 퇴행을 방비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하여 모든 맥락과 해결의 길을 밝히며, 제대로된 시작점에서 수 많은 연결고리와 심리적 외상의 단초들을 꿰어낼 수 있는 책.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거꾸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책이었다.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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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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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대표작이자 <철학적 콩트>라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생각보다 얇고, 술술 읽히고, 재미있는 막장 블랙 코미디와 같다. 책을 든 채로 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지만 어이없어하며, 주인공 캉디드(candide : 천진한, 솔직담백한, 순진한)와 그의 스승 낙관주의자 팡글로스(Pangloss : 모든 혀/언어, 수다) 둘 모두에게 분통을 터트리며 훌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웃기고 당황스러운 인물들의 행태를 가볍게 즐기기에는 배경이 너무 처참하다. 일종의 지옥도와 다름없다. 중간에 잠시 모든 것이 완벽한 지상 낙원 엘도라도도 등장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당시의 유럽 각국의 상황, 가치관과 종교를 실랄하게 풍자하고 있으므로, 엘도라도를 빼고 전부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이다.

 

아마도 많이 알면 알수록 이 책은 더 재미있게, 더 실랄하게 와닿지 않을까? 재밌게 읽고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유는, 뭐든지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내가 알듯 말듯하고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캉디드가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자꾸만 책장을 넘겨서 그런 듯 하다. 뒷이야기가 아무리 궁금해도 팡글로스의 어원을 찾아보고, 누구를 풍자한 것인지 서칭하고, 리스본 지진(1775년)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마, 더 깊이 더 많이 찾아볼 수록 캉디드는 양파처럼 계속 다른 면을 보여줄 듯 하다.




캉디드가 맞딱드린 전쟁과 자연재해, 인간의 악랄한 면, 여성과 약자의 착취 등의 상황은 현재에도 변주되는 일이다. 따라서 소설 속 캉디드의 소뒷걸음질 치는 듯한 선택과, 스승 팡클로스의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우스운 코미디로 볼 수 만도 없다. 주변 인물들의 약아보이는 선택도 그들을 제대로 구제하지는 못한다. 서로에게 은인이 되기도, 유용한 방법을 제안할 때도 있지만, 세상사 많은 풍파 속에서 어떠한 선택도 임시방편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철학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친절한 책이기에 후반부로 갈 수록 해결책을 내어준다.

 

심하게 딱하고 원래로서는 10페이지도 못되어 죽고도 남았을 캉디드는 모든 상황에서도 주인공 버프를 제대로 받아 살아남는데, 소설속 캉디드가 진화하여 계몽주의 시대의 가르침을 주창하기에 이른 것은 차라리 감동스럽다. 우습고도 잔혹한 코미디를 읽다보면 신분제도 웃기고, 종교의 신봉이 얼마나 위험한지, 낙관주의도 참 말도 안된다고 생각될 뿐더러,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계몽주의의 철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책이다.




18세기는 볼테르의 시대, 프랑스는 볼테르의 나라라고 하는 만큼, 볼테르를 환호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분명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조금은 빛바랜 가르침일 지라도, 이에 이르는 과정을 한 편의 철학적 풍자 소설로 읽는 경험은 짜릿했다. 배경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채로 한 번 읽어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굵직한 사건들과 풍자의 강렬함을 남긴 작품이라, 자주 꺼내어 음미하게 될 듯 하다.

 

잔혹한 세상에 필요한 가치관을 점검해 볼 수 있었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재미있는 콩트로 깊은 생각을 하며, 더불어 배경지식도 무한히 넓히고 싶은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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