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사람의집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의 히스테리와 참전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결시키는 것은 일종의 도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피해자에게 난소 부근에서 유발되는 흔한 성평향적인 신경증 환자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전쟁에 다시 복귀할 수준으로 회복이 되면 더이상의 치료가 불필요한 전쟁 외상성 장애의 진단을 내린 것은 <심리적 외상>의 연구 자체의 결함이다. 파편화된 연구들을 일직선상에 세우고 현시대에서 허락된 담론의 포용성을 확장한다면, 실재하는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를 적극 파훼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시대의 담론이 이 책에서 열결짓는 심리적 외상의 범위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머리말에서 부터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쓰였음을 밝히고 있다. 페미니즘이 터부 또는 희화화 되고,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자리매김하는 하는 중에 여성주의적 입장만으로도 조용히 배척될까? 이런 걸 고민하기에는 이 책의 출간년도는 1997년, 우리나라 첫 출간도 십 년이 넘었으므로, 2022년 개정판 <트라우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곤란하다. 퇴화가 우리 사회를 좀먹듯 파먹고 있다는 반증일 만큼 곤란하다.

<트라우마>의 전반부는 18세기 프로이트의 연구에서부터 간헐적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었던 '심리적 외상'의 연구를 엮어나가면서, 의학적 관점 뿐만 정치 사회적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히스테리(히스테리아)의 정확한 원인을 지목하는 것이 여성 인권과 참정권 운동과 연결되고, 전후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는 결국 반전운동을 촉구한 맥락은 정치 사회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서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다.

한편으로 모든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 현시대에서는 심리적 외상에 불과한 트라우마가 엄살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계발식의 심리학자의 조언 대로 앞으로 나아가는게 중요하기에 아예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기술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부정이 30분 혹은 3초가 걸리든 실체 없는 엄살에 대한 부정이 필요하고, 어느 날은 3초만에 트라우마를 자동으로 극복하는 쾌거를 누리다가도 3년 동안의 원인 모를 개인적인 우울로 기운을 차리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반부에서 굵직한 역사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흥미로운 만큼 심리적 외상이 수면 위로 떠올라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다양한 증상들을 총망라해 가며 제대로 된 치료법들을 검토해 나가는 것도 흥미롭고 유익했다. 이러한 회복의 단계는 이미 자존감에 관한 논의의 질이 상당히 높아져 있고, 집단 상담등의 특정 영역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학과 정치의 연결과 같이, 흩어지고 간과된 심리적 외상에 대한 통합된 치료의 출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둔다면, 무지에서 비롯된 퇴행을 방비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하여 모든 맥락과 해결의 길을 밝히며, 제대로된 시작점에서 수 많은 연결고리와 심리적 외상의 단초들을 꿰어낼 수 있는 책.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거꾸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책이었다.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