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 - 퇴직 이후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 아홉 명의 이야기
이보영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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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
이보영 / 동녘라이프
퇴직 이후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 아홉 명의 이야기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가 청소년 상담사가 되거나, 전 직장의 경력을 반대로 활용해 금융소비자연맹에서 일하거나, 취미였던 와인 전문가가 되거나, 귀농을 하거나, 사회공헌을 택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각자 퇴직한 이유도 다르고, 하고 싶었던 일고, 할 수 있는 일도 달랐지만 '돈이 되는 일' 이라는 것보다 중요했던 것은 '사회적 자아로서의 일' 이었던 것 같다. 퇴사 후,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어떤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책은 아홉명의 인생 2막 이야기와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위한 팁과 정보들이 자세히 실려 있다. 퇴사 후에 어디에서 직업에 대한, 창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1.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위한 정부 취업 지원 프로그램
2. 창업을 위한 중비 과정별 지원 제도
3. 귀농 귀촌을 위한 준비 과정과 지원 제도
4. 사회공헌 일자리

나는 책 중에서 퇴사 후 서점을 창업한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단순하게 로망으로 여겼던 일을 실제로 준비하고 4년간 운영해온 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로 고민하고 궁금했던 부분들을 알 수가 있었다. 특히 1인 독립서점의 고충과, 동네서점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 해주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에서 찾을 수 있는 보람도 빠지지 않는다.

"임대료만 낼 수 있다면 나도 해 보고 싶어요." 그들에게 그는 진지하게 되묻곤 한다. 임대료 외에 필요한 다른 비용들,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노동과 심리적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느냐고 말이다. "관리비, 인건비는 물론이고 냅킨 한 장과 물 한 잔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수많은 의사결정의 연속이에요.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더군요."

모든 창업과 취준에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이 없는 휴식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는 말 처럼 백세 시대의 우리게엔 일과 휴식의 조화가 절실한 것 같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퇴직이라는 통조림을 딴 당신에게
시작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일'의 시작에서 우리는 모두 유통기한이 찍인 통조림을 하나 받는다. (...) 통조림 속 내용물엔 쇠 맛이 배어든다. 유통기한은 다가오고, 멈추거나 변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책은 평생을 해왔던 일을 마치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한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퇴직이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회적 자아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퇴직 후 인생 2막의 '성공 수기'나 바람직한 은퇴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길잡이가 아니다. 만족스러운 삶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고, 세상은 여러 요인에 의해 계속 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통조림을 개봉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이 두 번째든, 혹은 세 번째든,
무슨 요리가 될지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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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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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신혜우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다. 식물분류학자이자 화가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로 한 저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반려동물들인 마들이와 순무의 사진으로 시작해서 해외의 오지에서 찍은 험난한 여정의 사진들을 보면 식물학자라는 말보다는 산악가, 혹은 자연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책은 과학서가 아닌 직접 ‘식물상담소’를 운영하고 그 이야기들을 엮은 에세이이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쓴 소설 말고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볼 수 있어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신혜우 작가 역시 전작도 너무 좋았지만, 이번 작품도 개인적인 면을 느낄 수 있어 굉장히 따뜻하고 좋았다. 저자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글쓰기’를 목표로 한다. 그의 글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 점이 나는 가장 좋았다.

이 책에 앞서 출판한 <식물학자의 노트>는 과학책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글쓰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에 맞는 가장 좋은 글은 과학 논문이라고 생각했었죠. 실험과 이론으로 객관적 사실만을 담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p.10 서문)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잘 관찰하고 지켜보고 공부해야 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찰하고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는 것. 하지만 식물이 사람과 다른 것은, 그래서 때론 사람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람들처럼 나를 그때그때의‘기분’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들은 한번 친해지면 그 다음은 쉽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어도 안심이 되는 존재인 것 같다.
저자는 식물상담소를 운영하며 만난 여러 상담자들과의 일화를 통해, 식물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식물을 통해 얻은 지혜와 위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잡초라는 개념과 절화, 원예종, 침입종 같은 것들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자연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잡초이며 침입종이다. 인간만 없으면 다른 종들은 편하게 살 수 있다. 저자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이 지구를 차지하지는 않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나도 다른 종들처럼 좀 있다가 사라지는 개체일 뿐인데, 강아지풀은 평생 사는 동안 지구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반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내 생활은 어떤가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자연의 일부일뿐인 우리가 마치 주인인 양 착각하고 있는 우리가 뒤에 남기게 될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좀 더 선명했다. 집에 물건을 적게 두는 것, 부끄러운 걸 남겨두지 않는 것, 죽고 나서의 정리,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의 양도 꼼꼼히 생각하게 되었다. 생물은 태어나면 모두 죽게 되어 있으니까.
병이 내게 준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은 평온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살구나무의 살구를 관찰하는 그런 평화로운 직업을 가져야겠다 다짐했다. (p.33)

분무기로 잎에 물을 뿌려 식물의 갈증을 해소해주려는 건 헛된 사랑 표현이다. 구석구석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보다 차라리 가끔 한 컵의 물을 흙에 부어주는 게 낫다. 자주 잎을 닦거나 어루만지는 것도 식물에겐 스트레스가 된다.
만약 식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부질없는 사랑 표현만 계속하고 있다면 이건 분명 짝사랑일거다.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p.53)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름다운 꽃을 보게되지 않을까?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사랑을 조금 줄여보면 우리 인생에도 관계에도 기다리던 꽃이 필지 모를 일이다. (p.59)

식물을 오래 키운 사람들은 품에 안고 있다고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식물은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걸 깊이 깨달아서 식물을 위한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내려놓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p.161)

나만 알고 있는 미국나팔꽃의 모습처럼 나에게 소중하고 감격스러운 작은 순간들이 무언가를 좋아하게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식물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 좋아하는 다양한 이유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수업이 가장 좋은 수업이 되지 않을까? (p.81)

혼자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함께 좋아할 사람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그 길을 꿋꿋이 가다 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지면 나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런 때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건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p.117)

화분에 담겨 성장이 지연된 채 지내는 열대식물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서 크고 멋지게 자라는 열대식물처럼 우리도 각자에게 맞는 자리에서 비로소 멋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것 아닐까?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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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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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와 <체호프 희곡선> 함께 읽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을유문화사

평소 영미 문학과 한국 문학을 주로 접했던 나에게 낯선 분야였던 러시아 문학. 이 책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특성과 개요를 파악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급격히 발전했던 제정 러시아의 문학과 러시아 혁명 이후 1922년 소비에트 연방 탄생 이후의 문학적 특징을 비교 설명한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을 는 독자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보코프는 “자유를 누리며,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먼 나라에서 죄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금 그곳에서 뛰쳐나온 도망자들이 퍼뜨린 과장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나는 당대 러시아 작가들의 자유롭지 못함을 먼 발치에서나마 짐작하기만 할 뿐이다.

소비에트 연방 탄생 이전, 19세기 러시아는 자유로운 국가였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작가들에게 국가가 원하는 것을 쓰게 하기위해 책 출판을 금지하고 작가들을 유배시키고, 검열했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 요구된 것은 사회적 메시지였고,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켜버렸다.

이렇게 검열당하던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훌륭한 독자는 러시아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실제 러시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독자는 보편적 관념보다는 개별적 상상을 좋아한다. 그로써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흡수하고 이해하며, 작가가 의도한 즐거움을 즐긴다.

“다시 요약해서 강조하자면, 러시아 소설에서 러시아의 정신이 아니라 천재 개개인을 찾으려 노력하자. 그리고 거작을 둘러싼 틀이나 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거작 자체를 보자는 것이다.” (p.46)

이 러시아 문학 강의 책에서는 19세기라는 암포라를 채우는 여섯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에 대한 면밀한 해석과 냉철한 평가, 방대한 인용을 담고 있어, 책을 먼저 읽지 않고도 강의 내용을 이해 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각 작가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간략히 설영한 뒤 작품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지식이 없는 일반 청중(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대 학생들에게 나보코프의 강의는 단순한 경험이 아닌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보코프는 사회적 메시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관찰한 만큼의 삶을 보여주는 체호프를 높이 평가했다. 사회체제에 대한 해석은 예술작품을 왜곡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과 같이, 러시아의 체호프 역시 평범한 일상을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켰다.

저자는 말한다. “유머를 아는 사람들에게 체호프의 작품은 슬프다. 다시 말하면, 유머 감각이 있는 독자들만이 그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킥킥거림과 하품 사이에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전문 희극 작가들이다. (...) 체호프의 유머는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체호프식의 유머다. 그에게 있어서 재미있는 것은 동시에 슬픈 것이기도 하다. 재미와 슬픔은 둘이 같이 얽혀 있기때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슬픔 역시 볼 수 없다.” (p.460)

1896년 작 <갈매기>에서 체호프는 실생활에 일어날 법한 작고 엉뚱한 일들이 모여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매우 현실적으로 디테일한 설정들을 가진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질문을 하면 일반적인 작품에서라면 그 질문에 짝을 이루는 대답이 나와야 마땅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그 질문이 대답 없이 묻힌다. 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디테일한가. 나보코프가 꼽은 체호프의 성과는 ”결정론적 인과 관계의 늪에서 벗어나 극예술을 옭아매고 있는 빗장을 어떻게 풀어헤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p.518)이다. 그리고 미래의 극작가들에게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천재 체호프에 기대어 그만의 독특한 방식을 답습하려 하지 말고, 연극의 자유라는 몫을 더 크게 만들어 줄 창의적 방법을 모색하고 적용해 보라.“(p.518)고 충고한다.

책에 소개된 강의 내용을 통해 19세기의 암포라 속 작가들의 작품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왜 그런 작품들을 쓸수 밖에 없었는지가 이해되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소개된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나보코프의 말처럼 작품들을 읽으면서 사회적인 것을 개입시키지 않고 작품 자체에 온전히 집중해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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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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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이용재 / 푸른숲


<조리 도구의 세계>로 처음 만났던 이용재 작가님의 신작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이 나왔다. 전작을 읽었을 때 굉장히 독특하고 조리 도구를 바라보는 진지하고 집요한 모습, 그리고 신선한 표현들까지 재미있었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 책을 세트로 놓고 조리 도구와 식재료의 팁을 받아 요리하면 환상의 짝궁이 될 것 같다.


작가님은 박학다식하고, 먹는것에 진심이고, 심지어 정성스럽다. 그리고 소금 한 자밤(한 꼬집 안돼요. 소금이 아파해요) 만큼의 사소한 차이로도 맛깔나게 변하는 섬세함까지 갖추었다. 게다가 재료들과 대화도 한다! 그리고 식재료가 되고싶어하는 요리를 만든다! 


본격 식재료 에세이라고 선언한 만큼,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들이 소개된다. 향신료, 채소, 육류와 해산물, 과일, 달걀과 유제품류, 곡물 까지 구입요령부터 손질, 활용에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설명해준다. 이렇게까지 전문적인 에세이는 처음이다. 이것은 에세이인가 요리책인가 장보기책인가!


그 중 정말 놀라웠던 몇 챕터를 소개해본다. 


뱅쇼 만들기 -계피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소금 - 일반적인 소금과 맛의 악센트를 주는 소금. 나는 짯맛을 즐기지 않아서 이런 부분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폭발하는 짠맛을 찰나 선사하고 사라진다니. 놀랍다.


얼음 - 며칠 전 딸이, 집 얼음은 왜 이렇게 잘 깨지고 잘 녹아?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과자 먹듯이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먹는 딸. 그 답이 이 책에 있었다. 가정용 얼음과 편의점 돌 얼음의 차이. 어는 온도와 시간! 

그리고 비빔면에 얼음 제대로 쓰기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올리브 - 씨 채로 된 것을 요리에 사용할 때는 칼등으로 지긋이 누르면 씨가 쏙 빠진다!


홍옥 - 내사랑 홍옥은 다행히(?)도 과일귀신인 우리집 사람들이 손도 대지 않는 나만의 소중한 과일이다. 어릴 땐 흔했는데, 요샌 생산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박스째로 구입해야하는 곤란함이 있다. 그래서 하루 한알씩, 자르지 않고, 껍질째 입으로 베어먹을 때의 새콤달콤한 과즙이 줄줄 흐르는 것을 쓰읍 흡입하며 먹는 그 쾌감! 그 식감을 오래오래 보존하기 위한 팁은 정말 소중하다. 



작가님은 맨날먹는 밥, 맨날 먹는 반찬이 아니라, 같은 재료이지만 그 조합의 단순한 변화 만으로도 여러가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당장 책을 들고(꼭 들고가야한다. 나는 못외워 ㅋㅋㅋ) 시장으로 가 장을 봐오고싶게 만든다. 이번주엔 브로콜리 오븐구이랑 집버거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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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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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겨울을 기억한다. 서울의 겨울과는 달리, 런던의 겨울은 습해서 새벽이면 마당의 잔디를 온통 은색으로 물들였다가 해가 나면 점차 원래의 겨울 풀빛 색을 찾아간다. 해가 난 곳과 그늘진 곳의 극명한 차이를 좇아, 점차 해가 은색 구슬들을 녹이는 장면이 좋아 주말 아침이면 한참 동안 창밖 정원을 내다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영국의 겨울은 날이 정말 짧다. 그리고 습하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겨울의 멜랑콜리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다. 디자이너이자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책은 10월에 시작해 9월에 끝난다. 1월부터 12월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우울증을 앓아왔던 지난 25년간 터득한 겨울나기의 비법서 같다고나 할까? 10월에 시작하는 이유는, 아직 겨울이 오기 전인 10월에 마음의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저자의 표현과는 달리 우리는 책에서 그녀의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철새를 찾아 밤중에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매일 반려견과 함께 숲을 탐험한다. 영국의 겨울 날씨가 그녀의 우울증을 심하게 만들었다면, 영국의 자연은 그녀를 치유한다.


숲의 치유 능력은 비단 그들의 화학작용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도 이렇게 부지런히 피어나는 생명력. 아스팔트 사이에도 비집고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려 피어나는 그 끈질김에도 있지 않을까?


책에 묘사되는 풍경과 동물과 식물을 나는 열심히 머릿속에 그려본다. 영국의 야생은 내가 본 적이 없는 것들이 많기때문에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가 간혹 저자가 그린 스케치나 세밀화 또는 사진이 나오면 그 상상의 실체를 마주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온전히 마주한 자연은 마음속에 저장되어 몇 날 며칠을 야금야금 꺼내 먹게 된다. 깜깜하고 인적이 없는 밤하늘에, 별자리도 잘 모르지만 쏟아질 것같이 많았던 별들. 뒷산을 산책하다 만난 까치를 닮기도 하고 참새를 닮기도 했던 어치를 만난 일. 아이와 산책하다가 딱따구리가 구멍 낼 곳을 다듬고 톡톡 찧어보는 모습을 발견했던 일. 가을 산길에 잘 익은 도토리가 톡 데구르르 굴러가던 소리. 이런 기억들을 우리는 힘든 순간이면 하나씩 열람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거동이 불편하신 시이모님이 계시다. 혼자서 자연에 나갈 수가 없고, 나무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방에 살고계신 분. 가끔 바람을 쐬어드리고 아이들을 보여드리고 바다와 산을 보여드리고 나면 그 기억으로 몇 달이 행복하신 분. 그분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계절은 어느 한순간 찾아오지 않는다. 야생은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부터 열심히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겨울에 이미 땅속의 구근이 봄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켜듯이, 저자가 겨울이 다가오기 전 야생의 기운을 머리와 가슴에 저장해 겨울을 준비하듯이,


한창 겨울일 누군가의 마음도 그 계절을 지나, 봄을 준비하는 땅속처럼 생명의 기운이 꿈틀대기를, 겨울을 지나 봄의 색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지난달에 나타난 사양채와 갈퀴덩굴 새순처럼 이 꽃차례 배아도 그런 신호 중 하나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나는 한동안 개암나무 곁에서 머뭇거린다. (p.61)



나는 우울증에 붙들릴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맞서 싸우고, 간신히 벗어나 서서히 회복하며 다시 인생을 살아나가려 애쓴다. 벗어날 수 없는 진 빠지는 악순환이지만, 오늘도 나는 굳건하게 견디고 있다. 나는 우울증을 일관된 하나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p.175)


다음 날은 기분이 좋다.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인정하면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다. 나는 애니에게 목줄을 채워 오두막 뒤쪽 숲으로 걸어간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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