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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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신혜우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다. 식물분류학자이자 화가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로 한 저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반려동물들인 마들이와 순무의 사진으로 시작해서 해외의 오지에서 찍은 험난한 여정의 사진들을 보면 식물학자라는 말보다는 산악가, 혹은 자연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책은 과학서가 아닌 직접 ‘식물상담소’를 운영하고 그 이야기들을 엮은 에세이이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쓴 소설 말고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볼 수 있어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신혜우 작가 역시 전작도 너무 좋았지만, 이번 작품도 개인적인 면을 느낄 수 있어 굉장히 따뜻하고 좋았다. 저자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글쓰기’를 목표로 한다. 그의 글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 점이 나는 가장 좋았다.

이 책에 앞서 출판한 <식물학자의 노트>는 과학책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글쓰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에 맞는 가장 좋은 글은 과학 논문이라고 생각했었죠. 실험과 이론으로 객관적 사실만을 담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p.10 서문)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잘 관찰하고 지켜보고 공부해야 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찰하고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는 것. 하지만 식물이 사람과 다른 것은, 그래서 때론 사람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람들처럼 나를 그때그때의‘기분’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들은 한번 친해지면 그 다음은 쉽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어도 안심이 되는 존재인 것 같다.
저자는 식물상담소를 운영하며 만난 여러 상담자들과의 일화를 통해, 식물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식물을 통해 얻은 지혜와 위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잡초라는 개념과 절화, 원예종, 침입종 같은 것들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자연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잡초이며 침입종이다. 인간만 없으면 다른 종들은 편하게 살 수 있다. 저자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이 지구를 차지하지는 않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나도 다른 종들처럼 좀 있다가 사라지는 개체일 뿐인데, 강아지풀은 평생 사는 동안 지구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반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내 생활은 어떤가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자연의 일부일뿐인 우리가 마치 주인인 양 착각하고 있는 우리가 뒤에 남기게 될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좀 더 선명했다. 집에 물건을 적게 두는 것, 부끄러운 걸 남겨두지 않는 것, 죽고 나서의 정리,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의 양도 꼼꼼히 생각하게 되었다. 생물은 태어나면 모두 죽게 되어 있으니까.
병이 내게 준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은 평온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살구나무의 살구를 관찰하는 그런 평화로운 직업을 가져야겠다 다짐했다. (p.33)

분무기로 잎에 물을 뿌려 식물의 갈증을 해소해주려는 건 헛된 사랑 표현이다. 구석구석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보다 차라리 가끔 한 컵의 물을 흙에 부어주는 게 낫다. 자주 잎을 닦거나 어루만지는 것도 식물에겐 스트레스가 된다.
만약 식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부질없는 사랑 표현만 계속하고 있다면 이건 분명 짝사랑일거다.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p.53)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름다운 꽃을 보게되지 않을까?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사랑을 조금 줄여보면 우리 인생에도 관계에도 기다리던 꽃이 필지 모를 일이다. (p.59)

식물을 오래 키운 사람들은 품에 안고 있다고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식물은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걸 깊이 깨달아서 식물을 위한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내려놓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p.161)

나만 알고 있는 미국나팔꽃의 모습처럼 나에게 소중하고 감격스러운 작은 순간들이 무언가를 좋아하게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식물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 좋아하는 다양한 이유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수업이 가장 좋은 수업이 되지 않을까? (p.81)

혼자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함께 좋아할 사람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그 길을 꿋꿋이 가다 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지면 나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런 때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건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p.117)

화분에 담겨 성장이 지연된 채 지내는 열대식물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서 크고 멋지게 자라는 열대식물처럼 우리도 각자에게 맞는 자리에서 비로소 멋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것 아닐까?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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