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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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와 <체호프 희곡선> 함께 읽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을유문화사

평소 영미 문학과 한국 문학을 주로 접했던 나에게 낯선 분야였던 러시아 문학. 이 책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특성과 개요를 파악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급격히 발전했던 제정 러시아의 문학과 러시아 혁명 이후 1922년 소비에트 연방 탄생 이후의 문학적 특징을 비교 설명한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을 는 독자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보코프는 “자유를 누리며,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먼 나라에서 죄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금 그곳에서 뛰쳐나온 도망자들이 퍼뜨린 과장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나는 당대 러시아 작가들의 자유롭지 못함을 먼 발치에서나마 짐작하기만 할 뿐이다.

소비에트 연방 탄생 이전, 19세기 러시아는 자유로운 국가였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작가들에게 국가가 원하는 것을 쓰게 하기위해 책 출판을 금지하고 작가들을 유배시키고, 검열했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 요구된 것은 사회적 메시지였고,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켜버렸다.

이렇게 검열당하던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훌륭한 독자는 러시아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실제 러시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독자는 보편적 관념보다는 개별적 상상을 좋아한다. 그로써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흡수하고 이해하며, 작가가 의도한 즐거움을 즐긴다.

“다시 요약해서 강조하자면, 러시아 소설에서 러시아의 정신이 아니라 천재 개개인을 찾으려 노력하자. 그리고 거작을 둘러싼 틀이나 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거작 자체를 보자는 것이다.” (p.46)

이 러시아 문학 강의 책에서는 19세기라는 암포라를 채우는 여섯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에 대한 면밀한 해석과 냉철한 평가, 방대한 인용을 담고 있어, 책을 먼저 읽지 않고도 강의 내용을 이해 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각 작가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간략히 설영한 뒤 작품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지식이 없는 일반 청중(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대 학생들에게 나보코프의 강의는 단순한 경험이 아닌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보코프는 사회적 메시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관찰한 만큼의 삶을 보여주는 체호프를 높이 평가했다. 사회체제에 대한 해석은 예술작품을 왜곡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과 같이, 러시아의 체호프 역시 평범한 일상을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켰다.

저자는 말한다. “유머를 아는 사람들에게 체호프의 작품은 슬프다. 다시 말하면, 유머 감각이 있는 독자들만이 그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킥킥거림과 하품 사이에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전문 희극 작가들이다. (...) 체호프의 유머는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체호프식의 유머다. 그에게 있어서 재미있는 것은 동시에 슬픈 것이기도 하다. 재미와 슬픔은 둘이 같이 얽혀 있기때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슬픔 역시 볼 수 없다.” (p.460)

1896년 작 <갈매기>에서 체호프는 실생활에 일어날 법한 작고 엉뚱한 일들이 모여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매우 현실적으로 디테일한 설정들을 가진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질문을 하면 일반적인 작품에서라면 그 질문에 짝을 이루는 대답이 나와야 마땅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그 질문이 대답 없이 묻힌다. 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디테일한가. 나보코프가 꼽은 체호프의 성과는 ”결정론적 인과 관계의 늪에서 벗어나 극예술을 옭아매고 있는 빗장을 어떻게 풀어헤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p.518)이다. 그리고 미래의 극작가들에게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천재 체호프에 기대어 그만의 독특한 방식을 답습하려 하지 말고, 연극의 자유라는 몫을 더 크게 만들어 줄 창의적 방법을 모색하고 적용해 보라.“(p.518)고 충고한다.

책에 소개된 강의 내용을 통해 19세기의 암포라 속 작가들의 작품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왜 그런 작품들을 쓸수 밖에 없었는지가 이해되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소개된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나보코프의 말처럼 작품들을 읽으면서 사회적인 것을 개입시키지 않고 작품 자체에 온전히 집중해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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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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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이용재 / 푸른숲


<조리 도구의 세계>로 처음 만났던 이용재 작가님의 신작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이 나왔다. 전작을 읽었을 때 굉장히 독특하고 조리 도구를 바라보는 진지하고 집요한 모습, 그리고 신선한 표현들까지 재미있었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 책을 세트로 놓고 조리 도구와 식재료의 팁을 받아 요리하면 환상의 짝궁이 될 것 같다.


작가님은 박학다식하고, 먹는것에 진심이고, 심지어 정성스럽다. 그리고 소금 한 자밤(한 꼬집 안돼요. 소금이 아파해요) 만큼의 사소한 차이로도 맛깔나게 변하는 섬세함까지 갖추었다. 게다가 재료들과 대화도 한다! 그리고 식재료가 되고싶어하는 요리를 만든다! 


본격 식재료 에세이라고 선언한 만큼,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들이 소개된다. 향신료, 채소, 육류와 해산물, 과일, 달걀과 유제품류, 곡물 까지 구입요령부터 손질, 활용에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설명해준다. 이렇게까지 전문적인 에세이는 처음이다. 이것은 에세이인가 요리책인가 장보기책인가!


그 중 정말 놀라웠던 몇 챕터를 소개해본다. 


뱅쇼 만들기 -계피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소금 - 일반적인 소금과 맛의 악센트를 주는 소금. 나는 짯맛을 즐기지 않아서 이런 부분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폭발하는 짠맛을 찰나 선사하고 사라진다니. 놀랍다.


얼음 - 며칠 전 딸이, 집 얼음은 왜 이렇게 잘 깨지고 잘 녹아?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과자 먹듯이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먹는 딸. 그 답이 이 책에 있었다. 가정용 얼음과 편의점 돌 얼음의 차이. 어는 온도와 시간! 

그리고 비빔면에 얼음 제대로 쓰기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올리브 - 씨 채로 된 것을 요리에 사용할 때는 칼등으로 지긋이 누르면 씨가 쏙 빠진다!


홍옥 - 내사랑 홍옥은 다행히(?)도 과일귀신인 우리집 사람들이 손도 대지 않는 나만의 소중한 과일이다. 어릴 땐 흔했는데, 요샌 생산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박스째로 구입해야하는 곤란함이 있다. 그래서 하루 한알씩, 자르지 않고, 껍질째 입으로 베어먹을 때의 새콤달콤한 과즙이 줄줄 흐르는 것을 쓰읍 흡입하며 먹는 그 쾌감! 그 식감을 오래오래 보존하기 위한 팁은 정말 소중하다. 



작가님은 맨날먹는 밥, 맨날 먹는 반찬이 아니라, 같은 재료이지만 그 조합의 단순한 변화 만으로도 여러가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당장 책을 들고(꼭 들고가야한다. 나는 못외워 ㅋㅋㅋ) 시장으로 가 장을 봐오고싶게 만든다. 이번주엔 브로콜리 오븐구이랑 집버거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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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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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겨울을 기억한다. 서울의 겨울과는 달리, 런던의 겨울은 습해서 새벽이면 마당의 잔디를 온통 은색으로 물들였다가 해가 나면 점차 원래의 겨울 풀빛 색을 찾아간다. 해가 난 곳과 그늘진 곳의 극명한 차이를 좇아, 점차 해가 은색 구슬들을 녹이는 장면이 좋아 주말 아침이면 한참 동안 창밖 정원을 내다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영국의 겨울은 날이 정말 짧다. 그리고 습하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겨울의 멜랑콜리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다. 디자이너이자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책은 10월에 시작해 9월에 끝난다. 1월부터 12월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우울증을 앓아왔던 지난 25년간 터득한 겨울나기의 비법서 같다고나 할까? 10월에 시작하는 이유는, 아직 겨울이 오기 전인 10월에 마음의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저자의 표현과는 달리 우리는 책에서 그녀의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철새를 찾아 밤중에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매일 반려견과 함께 숲을 탐험한다. 영국의 겨울 날씨가 그녀의 우울증을 심하게 만들었다면, 영국의 자연은 그녀를 치유한다.


숲의 치유 능력은 비단 그들의 화학작용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도 이렇게 부지런히 피어나는 생명력. 아스팔트 사이에도 비집고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려 피어나는 그 끈질김에도 있지 않을까?


책에 묘사되는 풍경과 동물과 식물을 나는 열심히 머릿속에 그려본다. 영국의 야생은 내가 본 적이 없는 것들이 많기때문에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가 간혹 저자가 그린 스케치나 세밀화 또는 사진이 나오면 그 상상의 실체를 마주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온전히 마주한 자연은 마음속에 저장되어 몇 날 며칠을 야금야금 꺼내 먹게 된다. 깜깜하고 인적이 없는 밤하늘에, 별자리도 잘 모르지만 쏟아질 것같이 많았던 별들. 뒷산을 산책하다 만난 까치를 닮기도 하고 참새를 닮기도 했던 어치를 만난 일. 아이와 산책하다가 딱따구리가 구멍 낼 곳을 다듬고 톡톡 찧어보는 모습을 발견했던 일. 가을 산길에 잘 익은 도토리가 톡 데구르르 굴러가던 소리. 이런 기억들을 우리는 힘든 순간이면 하나씩 열람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거동이 불편하신 시이모님이 계시다. 혼자서 자연에 나갈 수가 없고, 나무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방에 살고계신 분. 가끔 바람을 쐬어드리고 아이들을 보여드리고 바다와 산을 보여드리고 나면 그 기억으로 몇 달이 행복하신 분. 그분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계절은 어느 한순간 찾아오지 않는다. 야생은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부터 열심히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겨울에 이미 땅속의 구근이 봄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켜듯이, 저자가 겨울이 다가오기 전 야생의 기운을 머리와 가슴에 저장해 겨울을 준비하듯이,


한창 겨울일 누군가의 마음도 그 계절을 지나, 봄을 준비하는 땅속처럼 생명의 기운이 꿈틀대기를, 겨울을 지나 봄의 색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지난달에 나타난 사양채와 갈퀴덩굴 새순처럼 이 꽃차례 배아도 그런 신호 중 하나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나는 한동안 개암나무 곁에서 머뭇거린다. (p.61)



나는 우울증에 붙들릴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무기를 동원해 맞서 싸우고, 간신히 벗어나 서서히 회복하며 다시 인생을 살아나가려 애쓴다. 벗어날 수 없는 진 빠지는 악순환이지만, 오늘도 나는 굳건하게 견디고 있다. 나는 우울증을 일관된 하나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p.175)


다음 날은 기분이 좋다.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인정하면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다. 나는 애니에게 목줄을 채워 오두막 뒤쪽 숲으로 걸어간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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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
안톤 숄츠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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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
안톤 슐츠 / 문학수첩

저자 안톤 슐츠는 독일에서 태어나 동양의 철학, 종교, 문화에 관심이 생겨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정착하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고 있다. 외부인이자 내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행복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서문은 존 레넌의 일화로 시작한다.

“내가 다섯 살이 됐을 무렵, 어머니는 늘 행복이 삶의 열쇠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크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햇다. 나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럼)당신이 인생을 이해 못 한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 일화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가’로 연결되며, 교육이 나아가야할 길까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의 연간 행복지수 순위에서 거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자살률은 늘 상위를 차지한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한 세대만의 순전한 의지와 고된 노동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엄청난 성공 신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공 신화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꿈꾸는 롤 모델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왜 유달리 불만족스럽고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가? 왜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저조한 나라가 되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로 외적 성공에 따른 내적 공허함을 꼽는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아야 하지만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무형의 규제와 획일화된 주입식 행복에의 정의로 인해 내가 만드는 행복이 아닌 외부에 의해 정해진 기준을 만족시키는 행위로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는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한국과 비교해 독일의 교육제도가 심하게 부러운 면도 있었고, 가끔은 ‘한국인이 아니라서 이해 못해’ 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너무 이론적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론이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 생각만으로 결론 짓기 보다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의 형식으로 읽어나가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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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믐날 밤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방정환 지음, 허구 그림, 장정희 해설 / 길벗어린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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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믐날 밤>
방정환 글, 허구 그림,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해설 / 길벗어린이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으로 발간 된 이 책 <4월 그믐날 밤>을 4월 그믐날 밤과 새벽에 읽고 5월 초하루 새 세상이 열릴 때까지 썼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4월 그믐날 밤, 화자인 어린이는 꽃들이 다음 날 열릴 축제를 위해 부산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본다. 바로 다음 날 밤이 ‘새 세상이 열리는’ 5월 초하루이다. 하지만 축제준비는 순탄치 않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나지만 결국 친구들의 기지와 협력으로 마침내 기다리던 5월 초하루의 아침이 밝아온다.

앉은뱅이 꽃, 진달래꽃, 젓나무 꽃, 복사나무, 개나리꽃, 할미꽃, 아가 꽃, 잔디 풀, 버들잎, 개구리, 참새, 제비, 종달새, 꾀꼬리, 나비, 벌레가 힘을 합해 봄의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이 재롱잔치를 준비하는 모습 같아 귀엽고 설렜다. 또한 이것이 아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 같기도 하였다. 이름이 있는 각자의 개성을 지닌 생명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야 봄의 축제를 완성할 수 있다.

4월 그믐날 밤에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5월 초하루, 즉 5월 1일이 바로 100년 전인 1992년에 처음 제정된 어린이날이다.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자 드디어 ‘아이들은 천덕꾸러기 불쌍한 아이’에서 ‘어린이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어린이로 다시 태어난다.

‘날만 밝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그들은 모두 새 옷을 입고 큰 잔치 준비를 바쁘게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날, 새로운 생명력이 깨어나고 꽃과 새들이 노래하는 좋은 날. 방정환 선생님은 생명력을 가득 지닌 계절을 아이들의 날이어야한다고 생각한것일까. 봄은, 아이들이 그러하듯 새 세상을 알리기 위해 꽃과 나비들과 새들이 부지런히 노력한 계절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 봄이다.

우리는 새 봄을 무심코 그냥 ’봄이 왔구나’, ’꽃이 피었구나’ 한다. 새 봄의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결사의 노력을 다해 자라 어른이 되고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저 자연히 자란 줄로만 안다. 100년 전의 숨은 노력들이 지금의 어린이들의 봄을 만들어 주었구나 생각하니 글과 그림은 아름다운데 자꾸 눈물이 났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그냥 선물을 받아 신나는 날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노키즈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사어가 되는 날이기를, ‘외국인 아동은 제외’ 라는 말이 정부 안내문에서 사라지는 날이기를, 아동폭력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여 먼 옛날의 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이 책은 방정환연구소장이신 장정희님의 해설이 수록되어있어 읽는 깊이가 더해졌고, 북토크를 들으며 다시 한번 더 의미를 새기는 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어린이 해방 운동에서 말한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이었다. -조선소년운동협회, 1923년 5월 1일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1.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1.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다음은 <4월 그믐날 밤>에 소개된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1926년 5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어린이날>
돈 없고 세력 없는 탓으로 조선 사람들은 이때까지 내리눌리고 짓밟히어 아프고 슬픈 생활만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사람 중에서도 그 쓰라린 생활 속에서도 또 한층 더 내리눌리고 학대받으면서 무참하게 짓밟혀만 있어 온 참담한 중에 더 참담한 인생이 우리들 조선의
소년 소녀였습니다. (...)

새로 피어날 새싹이 어느 때까지든지 내리눌려만 있을 때 조선의 슬픔과 아픔은 어느 때까지든지 그대로 이어만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이 없이 뻗어날 새 목숨 새싹이 어느 때까지든지 눌려 엎드려만 있지 않았습니다. 5년 전의 5월 초하루! 몇 백 년, 몇 천 년 눌려 엎드려만 있던 조선의 어린이는 이날부터 고개를 들고 이날부터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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