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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현대 철학 - 아들러, 라캉, 마사 누스바움… 26인의 사상가와 함께하는 첫 번째 현대 철학 수업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3월
평점 :
고등학교 철학교사이며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는 임상 철학자 안광복의 <<처음 읽는 현대 철학>>은 26인의 사상가의 철학 중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쉽게 설명해주는 철학 입문서이다. 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직면한 문제들에 통찰을 더한 사유를 해나갈 수 있도록 질문하며 격려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철학 수업을 듣고 나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문제들에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고, 막연하게 느껴졌던 사회문제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더불어 각 챕터 말미에 짧게 추가된 저자의 생각이나 질문을 통해 독자는 더 깊은 사유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철학자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곱씹어보며 느리고 성실하게 나만의 생각을 추가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그리고 책의 뒷편에는 언급된 철학자들의 소개가 나와있어 먼저 읽어봐도, 나중에 읽어봐도, 그때 그때 읽어봐도 좋다.
고등학교 때는 윤리와 철학이 너무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라고 느꼈는데, 안광복 선생님의 제자들이라면 철학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심 부러웠다.
책에 소개된 철학자 중에 내 관심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울리히 벡’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를 ‘위험사회’라고 부른다. 산업사회에서는 물자 부족과 가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반면에 현대에는 온갖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벡은 사람들이 여전히 산업사회의 방식으로 위험을 다루려고 한다며 한숨을 쉰다. 이래선 위급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점점 잦아지는 세계적인 재난을 잘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104)
정치의 핵심은 ‘우리’와 ‘적’을 가리는 데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가난이 인류가 물리쳐야 할 적이었던 까닭에 이것은 유효했다. 하지만 경제가 전체적으로 나아지면서 산업사회는 또 다른 문제인 오염 물질과 공해를 낳았고, 이를 못사는 나라로 수출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이 발전할수록 위험의 수준과 정도도 커지는데,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전염병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지며, 안전하다고 말하는 원자력 발전소도 사고가 터지면 그 위험성은 상상 이상이다.
📗 중국을 적으로 삼는다고 해서 미세 먼지를 쏟아내는 공장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디론가 옮겨가 공해 물질을 다른 방식으로 내뱉을 뿐이다. 시간이 걸릴 뿐, 그 피해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일으킨 일본을 적으로 삼는다고 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가 사라질 리 없다. 벡은 위험 앞에선 적과 아군을 가리는 산업사회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위험사회에는 새로운 방식의 대응법이 필요하다. (p.106)
📗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은 ‘배고픔’이었다. 가난과 빈곤을 이겨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뜻이다. 반면에 위험사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은 ‘불안한 현실’에서 생긴다. (p.106)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위험하고 해로운지를 가려내기가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벡은 위험사회에서는 한 문제에 대해 각 분야의 각기 다른 이익이 달린 접근법이 아닌 각 학문 아래 놓인 현실의 맥락에서 함께 바라보는 ‘하위 정치’를 강조했다.
벡은 산업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성찰적 근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위험 공동체’를 형성하면 인류의 위기는 문명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해방적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환경문제와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고 환경단체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개개인의 관심과 국가차원의 노력과 범세계적인 의지가 없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삼지 않고 저자의 말처럼 독립과 자립의 흐름으로 갈 수 있다면,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조금은 덜 위험한 사회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