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공간이 어쩌면 무의식적인 무언가를 양산하지 않을까.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내가 보기에 유대인 소년들은 인기있는 아이들이나 운동선수들조차 주변에 미묘하게 충전된 듯한 자장을, 동떨어진 듯한 기류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 기류가 그 소년들 자신과 그들의 자질이나 소망에서가 아니라 학교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느낌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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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글쓰기로 경쟁하는 학교.. 나도 김탁환 작가님과 헤르만 헤세를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작가로 여기듯,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작가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든 영향을 받았다. 헤밍웨이든, 커밍스든, 케루악이든. 아니면 그 작가들 전부,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작가들로부터.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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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 교사입니다
김보영.박수정 지음 / 저녁달고양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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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 2021.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북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저녁달고양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북카페와 출판사, 그리고 저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북카페 책과 콩나무 : https://cafe.naver.com/booknbeanstalk

 

 




  책의 제목을 끈 순간, 이것은 내 이야기이고 그래서 더욱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책을 만났다. 어쩌면 이 책을 만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서평을 시작하고자 한다.

  해당 도서를 알게 된 것은, 서평단 모집 마감일은 지난 513일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서 실업급여를 수령하기 위한 구직활동의 일환으로 지원한 학교의 전문상담 기간제교사 자리에 합격해서 면접을 보러간 바 있다.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광주의 모 중학교였는데, 2개월 자리이고, 임용공부를 하기에도 방해는 되지않으리라 생각해 다소간 합격의 마음을 품고 면접자리에 임했다.

  앞선 면접자분이 나오시기를 대기하던 중, 본교무실 선생님들의 안내로 마침 국어선생님 책상에 앉아 대기하게되었는데 바로 그 국어선생님의 교무실 책상에 놓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오잉 제목부터 나잖아? 내얘기잖아?'는 생각이 스쳤고, 책 중독자라 이건 어떤 책일까 살펴보던 와중, 그 책이 저자사인본이라 더욱 그 책을 소장한 선생님이 부러워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해당 책의 정보를 검색하게 되었다.
  심지어 책과 콩나무카페에서 해당 책을 모집하는 중이었으며 신청 마지막날이었기에 이책과의 만남을 개인적으로 필연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아마 저자분 중 한분인 김보영선생님께서 내가 면접보고온 학교서 근무중이신듯 하다.
학창시절부터 오랫동안 책 중독자로서 다독해왔고 스무살 이후 서평단에 참여해 블로그에 올린 서평들이 이제는 적지 않은 양이라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서평단으로서 책을 무상제공받아 서평을 올리게 된 책들 중 가장 빨리 완독후(책을 반나절만에 일독했다.) 서평을 쓰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분들의 삶이 곧 내 삶이고, 책의 제목이 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과목은 다르지만 나도 두 분 저자분들처럼 중학교 1학년, 열세살의 어린 나이부터 교직을 마음에 품고 자라왔다. 아마 교사라는 꿈은 어쩌면 모범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내향적이고, 수업시간에 가장 집중해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던 나는 또래친구들보다 선생님들께 인정받고 싶어했고 성실한 학생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피드백을 곧 나를 이루는 가장 주요한 가치로 내면화해왔던 것 같다.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이 바로 국어 교과였기에, 국어 교사를 목표로 두고 삶을 살아왔다. 저자분들과 과목과 다를 뿐 오랜 세월 교직을 바라온 그것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책의 첫부분부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범대에 바로 입학한 두분 저자분들과는 달리, 나는 사범대 입학에 실패했다. 교원자격을 취득하고 몇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한으로 남는 부분인데, 3때는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수시전형에 합격했으나 너무나 하향지원한 학교라 결국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했고, 재수시절 서울의 사범대 국어교육과 두곳에 수시전형 1차에 합격했으나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결국 최저등급이 없었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시작부터 좌절감과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조급함을 안고 나의 스무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스무살의 나는 그렇게 영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직이수를 바란다면 쉬운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고, 교직에 선발된 다음 학점이 조금 안나올지라도 듣고싶었던 과목들을 들으면 되는 일인데 마음만 급하고 영리하지 못했던 나는 어려운 과목을 욕심내어 먼저 들어 결과적으로 교직이수 면접에 올라갔으나 등수에 밀려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3학년 때 준비한 사범대 편입에서는 예비 1번을 받고 최종적으로 불합격 결과를 받았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 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데까지 대학입학 후 6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렵게 취득한 교원자격증임에도 불구하고 임용의 벽은 더욱 높고 단단했다. 특히 주요교과의 경우 지원자에 비해 TO가 현저히 적은 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만약 내가 다시 대학교 1, 2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사범대학 울타리를 벗어나 보고 싶다. 선생님이 될 거라는 굳건한 의지가 있어도 말이다. 아이들도 이른 나이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선생님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온 선생님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26.

 

  결국 임용TO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 복수전공한 심리학으로 임용을 보고자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20대의 10년에서 이룬 가장 주요한 성취는 교원자격증을 두 개 취득한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시간강사부터 시작해 기간제도 했고 경력도 쌓았으나 책을 읽으며 저자분들의 생각에 공감할 지점들이 참 많았다. 지금 다시 20대 초반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여행도 다니고 책도 더 양껏 읽으며 그 시기를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 초반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먼 길을 돌아가고 있지만, 나중에 합격하여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그 긴 여정이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91.

 

 

 

 


  저자분들은 졸업 이후 임용에 올인하는 시기를 충분히 가지신 것 같은데, 기실 나는 오히려 대학원을 졸업해 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임용고시라는 너무 큰 산을 넘기 버겁기도 하고 무서워서 회피해오고 일과 공부를 병행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20대 초반에 즐기지 못한 친구들과의 여행도 다녀보고, 뮤지컬도 보러 다녔다. 사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왜 몰입해 공부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도 드는데, 저자분들도 이런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일과의 병행, 올인, 취미생활 등 여러 주변환경에서 각자의 고민들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다른 결로 나타날 뿐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지난 몇 년간, 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시험날의 기억이 떠올라 긴장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길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겨울을 가장 좋아했는데, 임용고시 n수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찬 바람이 불면 두려움이 먼저 느껴져서 겨울이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38.

 


  사범대학에 다니면서 미래에 선생님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늘 사람을 쉽게 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 나는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성하고 뉘우치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선생님이 되어서도 색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 고정관념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늘 그런 문제에 깨어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아직 경험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66.

 

 


  이런 취미활동 덕분에 길고 긴 임고생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취미활동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더 빨리 좋은 결과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하루 20시간씩 공부만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 취미 때문에 숨을 잘 쉬며 버틸 수 있었다. 오래 걸리고 있지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잘 하니까, 임용고시 합격도 기다리고 있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99.

 


  어쩌면 이런 고민과 경험의 시기가 삶에 한 번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또래들이 점점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 또한 최대한 빨리 임용고시에 합격해 안정적으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할 지인데 하는 걱정과 조급함은 늘 존재한다. 특히 나에게는 저자 중 한 분인 김보영 선생님처럼 안정성을 쉽사리 포기하고 기간제교사로 평생을 살아갈 용기가 없기에, 임용시험은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며 삶에 필수적인 관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과 내가 향유하는 여러 관계들이 부디 임용시험의 독으로 여겨지기보다 앞으로의 교직생활에 있어 중요한 거름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해 본다.

 


  나는 아직 나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고, 기간제 교사에 대한 못 미더운 편견에 맞설 용기가 없어. 그래서 계속 임용고시에 도전해보려고 해.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정교사가 되는 날이 멀리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열심히 달려볼게. 정교사라는 날개가 나에게 붙여진다면, “역시 제가 자격 있던 것 맞죠?”라고 말하듯 훨훨 날아볼게.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75.

 

 

 


  서평의 말미에 이른 이제야 고백하자면, 임용시험에만 집중(올인)하고자 마음 먹고 공부를 하던 와중, 붙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실업급여 수령을 위해 지원한 학교 두 곳에 붙은 바 있다. 어차피 두 곳에 붙었으니 한 곳은 포기해야만 했고, 남은 한 학교가 집 근처인지라 매우 많은 고심을 했다. 남은 실업급여 2회를 포기하고,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병행이 가능할 것인가? 현재로선 이것이 복() 혹은 기회인지 독()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고민 끝에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기에 오히려 간절함을 안고 공부하며 일과 병행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왕 결정했으니, 국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전문 상담 정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는 기회로 올해를 만들어야만 한다.

  불안함이 없지 않지만, 나는 기간제일때나 혹은 임용 합격 후 정교사가 되어서나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내 삶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가르침의 내용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픈 한 사람일 뿐이다. 때문에 지금의 나를 믿고 지금의 불안을 조금은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껴도 괜찮다는 저자분들의 작은 메시지가 내게는 큰 위로로 다가왔고, 완독과 함께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선물받았다.

  김보영 선생님, 그리고 박수정 선생님! 어느학교에서 동료로 만나든 함께 성장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단에서 뵙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북극성, 남십자자리와 일치한다. 교사는 북극성과 남십자자리처럼 학생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게 지식이든, 인성이든, 가치관이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니 옛날 옛적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북극성이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처럼 다양한 지식과 가치관이라는 바닷속에서 헤매고 있을 아이들에게 교사라는 별이 여전히 필요하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165-166.

 

 

 


  반드시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줬던 반장을 비롯한 나를 진짜 선생님으로서 사랑해준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보다 더 따뜻하고 커다란 사랑으로 아이들을 아껴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조건에 기간제인지 정교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204.

 

 

 

 


  “당신은 결국 선생님이 될 거예요.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끼셔도 됩니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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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장 - 못다 부른 노래 1987-1997
최강문 지음 / 빈빈책방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https://pedagogics.tistory.com/159 [Magister Ludi]

 

 

 

 


 

"내 꿈은 말이야, 저 별처럼 한결같이 살고 싶어. 길 잃은 누군가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변하지도 않는 그런 존재 말이야."

 

 

"그게 바로 선생님이네. 혜정이는 천직을 잘 찾은 것 같아."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28쪽. 

 

 

  최근 '빈빈책방'이라는 인문사회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 대해 알게되어 출판사의 책을 찾아보다가, 최강문 작가님의 『다시, 광장』 이라는 책을 접한 뒤, 책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기실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은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이었다. 책에 대한 깊은 정보 없이 제목과 역사소설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읽게 된 작품이다보니 처음에는 『광장』을 패러디한 소설이려나?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작품의 중간에도 최인훈의  『광장』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긴 한다. 뒤에서 후술토록 하겠다.)

  작품은 1984년부터 1997년 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신군부의 독재가 이어지던 1984년, 대학생으로서 어두운 사회의 한복판을 살아간  당시의 20대 청년들. 84년 대학 신입생이 된 인석, 혜정, 용우, 수홍, 현태. 그들 모두는 2010년대의 20대로서 대학생활을 해 온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대학생으로서 청년기를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했고, 사회문제에 깊이있게 고민했으며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옳은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20대였다. 특히 작품의 초반부에 나는 그들 중에서도 국어교사를 목표로 하는 혜정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교직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있는 혜정과 같이, 나도 중학시절부터 평생 국어교사를 소망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책을 다 읽지는 못할텐데, 어떻게하면 좋은 책을 잘 고를 수 있을까요?

혜정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춘길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독서 모임을 해봐. 주기적으로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다음 책을 무엇으로 정할지 서로 의논도 하고. 그러면 정말 도움이 될 거야."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33쪽.

 

 

 친구들이 춘길 선배의 추천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는 대목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 또한 유년시절부터 책을 즐겨읽어왔고, 대학 시절 가장 먼저 들었던 동아리가 대학 연합 독서토론동아리였기 때문이다. 그들도 1980년대의 20대들도 2010년대의 20대와 마찬가지로 대학생활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대학생으로서 지식과 생각, 가치,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독서모임을 지속했다.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광장』… 우리도 학창시절 성장 과정에서 당대 사회현실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 수없이 공부해 온 작품들을, 작품 속 친구들 또한 사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바로 보기 위해 토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필적이 닮았다? 유태인이다? 그것만으로 간첩으로 몰다니 정말 말이 안 되지 않아?"

"맞아 수홍아. 그런데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는 증거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지. 하지만

프랑스 군부는 진상을 계속 은폐하기만 했대. 법원도 군부의 편을 들어 거짓을 지키기 위해 진범 스파이를 무죄 석방하기까지 했어. 그러자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났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36쪽.

 

 

 

 


 

"넌 책도 다양하게 읽는구나. 교양서적하며, 소설책도 많이 있고. 최인훈의 『광장』, 나도 있는데. 이데 올로기가 뭐라고 그렇게 남과 북이 아닌 제 3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소설 읽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 결국에는 세상에 없는 이상향을 좇아 푸른 바다로 투신하잖아.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율도국을 찾아 떠난 홍길동 이야기도 생각나고.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곳이잖아? 멀리 있을 이상향이 아니고."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39쪽.

 

 

 

 


 

 "아, 그런 이야기도 나왔어? 비록 소설 형식이기는 하지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었던 셈이야. 청계천 알지? 지금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는. 그곳이 60년대 말까지 난쟁이라고 표현된 노동자, 도시빈민들이 살았던 곳이었어. 70년대 초 개발 바람이 일면서 정부에서 다 쫓아냈지. 그래서 그들이 간 곳이 경기도 광주대단지, 지금의 성남시. 소설에도 나오잖아."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42쪽.

 

 

 그러나  MT장소에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중 그들을 의심하던 주인의 신고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영화 <변호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북한서적 아니냐, 혹은 막스 베버를 마르크스로 착각하는 형사의 이야기... 이 시대의 20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유롭고 편안한 가운데 독서모임을 하는 것과 달리 80년대의 청년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수한 독서모임이 '운동권'이나 '간첩'으로 의심받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친구들은 나름의 변화나 내적 갈등들을 겪으며 그들 삶의 경로는 각각 변하게 된다.

  인석은 한국대(서울대의 소설 속 명칭) 사회학과를 다니는 명문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온전히 던지며 운동권의 선두에 앞장서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종국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공장노동자로 위장취업하여 노동자들과 연대한다.  법대생인 용우는 더욱 철저히 권력을 지키고 힘을 갖고자 하는 마음에 사법시험에 매진해 검사가 되고, 혜정은 교사가 되었으나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해직되기까지 한다. 현태는 옥상에서 사고를 당한 후 장애를 지니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진실을 좇는 기자가 되었으며, 수홍은 안기부(국정원)에 입사했으나 그럼에도 친구들을 저버리지 못한다.

 각기 처한 상황과 선택은 다르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각각 나름의 신념과 가치를 지니고 격동의 80년대에 대응해왔다. 자신을 내던지고 독재정권에 열정적으로 투쟁한 인석이나, 전교조에 가입하는 등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혜정과 비교하면 용우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 용우마저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한 청년으로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서른을 눈앞에 둔 지금의 내가, 2010년대가 아닌 그 당대의 대학생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자문하게 된다. 인석이나 혜정같은 용기도, 그렇다고 용우나 수홍처럼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선택을 하기도 두려운 나는 이 작품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날 무렵인 90년대생의 나로서는 살아가보지 않은 80년대 청춘들이 겪은 고뇌의 깊이와 선택에 대해 감히 함부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 그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었으며,(스무살에서 12년이 지난 후에도 30대 초반의 청년에 불과하다.) 운동권으로 학생운동을 해왔다고 해서 ,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간첩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도, 정치검사나 안기부 직원이라 하여 극우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모두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청년들은 각자 자기만의 신념과 가치로 삶을 살아내고 버텨왔을 뿐이다.

 

 

 


 

"학생운동? 막상 대학에 들어와보니, 아름다운 줄로만 알았던 세상이 전혀 아름답지 않더라구. 군사독재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가진 자는 더욱 갖게 되고, 노동자, 농민, 빈민은 더욱 굶주리는 그런 구조를 깨닫고 나서는 그냥 눈 감고, 귀 먹고 벙어리로 살 수가 없더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지."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난 세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믿어."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 94쪽.

 

 

 

 

 


 

"오빠야가 출세해가 돈 벌면 안되나?"

"물론 그렇게 하면 나와 우리 가족은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당장 이 동네 이웃들은? 나 혼자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 벽을 허물어서 다 함께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야."

"나는 오빠야가 잘됐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꼭 생각해주어야 되나?"

"인옥아, 난 다른 사람들도 다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거야. 그것이 학생 운동의 목표이고, 또 민주화운동의 지향점이야."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162쪽.

 


 

 

"세상이 아무리 자본주의 세상이라지만, 돈과 권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잖아요. 그 친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거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서령씨도 풍물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가요?"

"풍물을 하면서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늘 받아요. 더없이 기쁘죠. 게다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 아닌가요? 용우씨야말로 인생의 목표가 무언지 묻고 싶네요."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191쪽.

 

 

 이 소설은 정치적 신념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간 청년들의 고뇌와 선택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며 동시에 90년대생인 내가 80년대 독재정권 시기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유의미했다. 교과서, 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80년대 독재정권 시절과 현대사회의 역사에 대해 배워왔으나 교과서의 한 줄로 접해온 것이나, 다른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그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청년들이기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그만큼 흥미롭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또한  청년들이 실존인물이라고 생각될 만큼 작품이 생생했으며 가독성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이 책의 청년들은 바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부모세대이자, 정치인들의 모습이리라 여긴다.

 다만 결말부가 조금 아쉬웠는데, 작품의 인물소개글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뒷이야기나 자세한 고민, 반전 등이 작품 속에 담겨있지 않았다. 때문에 97년에 이어 98년부터 2020년까지를 다룬 후속 권이 나오지 않을까 추정하는데, 이 청년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과연 그들의 우정은 어떤 형태로 남게 될지 궁금증이 앞선다. 계속되는 내용이 기대되는 한편 마음에 남는 부분이 너무도 많아 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잘들 한번 찾아보세요.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개인 모습일 수도 있고,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겠습니까?"

- 최강문, 『다시, 광장』, 빈빈책방, 2020,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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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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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pedagogics.tistory.com/ [Magister Ludi]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열린책들, 2020.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이리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후기입니다.

(이리스(Ebook Readers Society)카페 운영진분들과 열린책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리스 '내손으로 고른 서평책 (feat. 열린책들)' 이벤트 :  cafe.naver.com/bookbook68912/74256

 

 

 

 

‘가브리엘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롤린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예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1막 제4장」, 『심판』, 열린책들, 2020.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개미』를 통해 한국 사회에는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작가이며 작품의 팬층이 두터울 정도이지만, 유년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나는 그의 소설 『개미』를 읽다가 미처 완독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무』라는 작품 역시 청소년기에 구입 후 미처 완독하지 못한 채 내 방 책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 시절 잠시나마 법학 부전공을 할까 생각하며 법학개론 수업을 들었을 정도로 나름 법과 정치, 정의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바, 『심판』이라는 작품 제목은 나를 매료시켰다. 표지 디자인 또한 파란색에 디케의 눈을 그린 작품의 표지도 매혹적이였으며,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야기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의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이는 다소간의 걱정거리였다. 내가 과연 이 작가의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작품은 무력한 한 인간일 뿐인 ‘아나톨’이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워댄 결과 폐암 수술 중 수술이 잘못되어 코마상태에 빠지며 시작한다.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아나톨은,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다가 결국 그의 상황을 수용하면서, 그의 수호천사이자 변호사인 ‘카롤린’과 검사 베르트랑 사이에 놓여 그의 마지막 생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작품의 배경설정을 통해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에서 묘사된 것처럼 동양, 우리네 설화 속에도 사후세계에 이르러 여러 관문을 거치고 업보(業報)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는 상상력이 존재하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후 세계에 대한 어떠한 ‘집단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장에서 판사 ‘가브리엘’의 법봉 아래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나톨은 다음과 같이 스스로의 삶을 회고한다.

 

‘아나톨 제 삶이요? 음…… 저는 꽤 좋은 사람이었어요.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죠. 그리고 좋은 가장이었어요. 사람들한테 지갑도 잘 열었고요. 일요일마다 미사에 가는 가톨릭 신자였고, 윗사람과 동료에게 인정받는 좋은 직업인이었죠.’

- 베르나르 베르베르, 2막 제2, 심판, 열린책들, 2020.

 

 

 특히 지상에서 판사였던 아나톨이 이제는 피고인의 신분으로 사후세계의 판관에게 심판받고 있는 상황은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사후의 심판 기준은 지상에서의 기준처럼 그가 가정에 충실했으며 인심이 좋았는지, 판사로서 이룬 직업적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상의 기준과 다른 사후의 기준은 그가 아나톨 피숑으로 살기 이전, 그의 앞선 생들이 살아가며 이루지 못한 삶의 지향점들을 충분히 이루었는가에 있다. 즉 그에겐 그의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고유한 ‘카르마’가 존재하는데 아나톨 피숑이 스스로 그의 카르마와 삶의 지향점을 선택했으나 그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그 세 가지의 영향 하에 놓인다는 뜻이죠. 유전이라 하면 부모, 그리고 당신의 성장 환경을 말해요.

당신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거나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간다면, 그건 유전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무의식이 당신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그건 카르마가 지배적인 탓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자유 의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유전과 카르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2막 제1, 심판, 열린책들, 2020.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걸 여기서는 아주 좋지 않게 보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대로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너는 단 하나의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손가락으로 아나톨을 가리키며)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어떻게 썼죠? 전혀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형…… 아니, 다시 말해 삶의 형을 구형합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2막 제2, 심판, 열린책들, 2020.

 

 심리학에서 흔히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유명한 유전과 환경 논쟁이 유명한 것처럼, 우리의 삶은 유전과 환경이라는 각각의 요소들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삶의 자국을 남기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있다.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통해 결정된 선택들만이 유전과 환경(카르마)를 극복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아나톨 피숑이 지난 생애의 끝에서, 자신이 선택한 ‘배우’라는 꿈과 운명의 배우자를 좇아 가지 않고, 예술인으로서의 삶보다는 ‘판사’로서의 삶을 택한 것을 우리는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비록 신의 의도에는 어긋난 선택일지 모르나, 소명(召命)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후세계의 심판대에서는 비난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검사측의 논리와 판사의 구형이유보다는 아나톨의 수호천사이자 그의 변호사를 자처했던 카롤린의 논리에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다할 수 있는 최선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가 한 선택들은 수백만의 다른 인간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한 손을 뻗어 무게다는 시늉을 하더니 다른 손으로 평형을 맞춘다.) 외도보다 신의를, 거짓보다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예술 분야의 직업보다 진지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재판장님. 단 한 번도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은 자만이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2막 제4, 심판, 열린책들, 2020.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말미, 아나톨은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달픔과 지난함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삶의 형’이 구형되었음에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거부하고 사후세계의 판관으로 남기를 원한다. 사실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아나톨은 알콜중독자 부모에게 태어나 학대를 이겨내고 법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내세를 선택했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삶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나톨의 선택과는 대조적으로, 오랫동안 사후세계의 판사를 역임해왔던 가브리엘은 이제는 다시 인간으로서 삶을 누리고 싶다며 아나톨을 대신해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자처한다.

 아나톨과 가브리엘의 모습은 죽음 그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는 우리 내면의 양면성이 두 방향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우리에게 내생이 있다면, 다시금 사람으로 태어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과, 지상에서의 삶을 다시 영위하기에는 너무나도 두렵고 힘든 양가감정.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면의 여러 갈래들 중,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올곧이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유전의 영향이든, 환경(카르마)의 영향이든, 혹은 자신의 이성과 경험이 선택한 자유의지든. 나름의 당위성을 지니고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따라 충실히 살아왔다면 아나톨처럼 사후 심판의 순간에서 내가 만들어온 삶의 결(존재의 서정성)을 인정해주고 뒤에서 지지해 온 수호천사의 변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어떤 것을 선택하기도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어떤 모험도 하지않는 삶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의 그 어떤 인물도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심지어 아제미앙 교수까지도.) 카롤린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서 늘 완전무결한 판결을 내려온 사람은 그 누구도 없기에. 무수한 선택의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에.

 나는 앞으로의 생에서 아나톨처럼 자신이 믿는 가치를 향해 올곧이 나아가는 한편 가브리엘처럼 지금까지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필요할 경우 누군가를 대신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기실 내가 만 스물여덟 평생을 들여 지금껏 추구해 온 ‘교사’라는 삶의 목표가 과연 내가 선택한 카르마의 강렬한 영향일지, 혹은 카르마를 거스름에도 불구하고 내 고유한 이성이 발현한 자유의지가 선택한 것일지 이 지상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까짓것 무슨 상관이랴. 내가 믿는 ‘올바른’ 방향이 있다면 언젠가 천상의 누군가는 날 변호해 주리라 믿어본다.

 

‘당신이 모험을 계속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려는 거예요. 당신의 영혼은 젊다는 걸 기억해요. 어린아이 같죠. 그 영혼이 너무 비좁은 껍질 속에 갇혀 있게 하지 말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진화하게 내버려 둬야 해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1막 제8, 심판, 열린책들, 2020.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 이 짧고도 강렬한 작품은 작품을 읽는 시간보다 이 작품을 곱씹고 자기만의 메시지로 체화하는 시간이 훨씬 걸리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작품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과 행동 동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던 한편, 「옮긴이의 말」에서 표현된 것처럼 아나톨 피숑의 수술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료계 인력부족 문제, 연로한 환자를 위해 안락사를 자처한 간호사에게는 중형을 내리는 반면 살인자는 방면한 사법계의 정의문제, 아나톨의 자녀들을 통해 드러나는 데이트폭력과 청년세대 문제, 바칼로레아의 권위와 목적 상실 등 교육부와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 등 프랑스 사회 의료계, 교육계, 사법계의 문제를 위트 있게 지적하고 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프랑스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 역시 쉽게 한국 사회의 의료, 교육, 사법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한 의료계 파업. 지방쪽 의료계 인력부족, 수능으로 인한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성폭력 범죄자의 12년 형으로 인한 출소문제와 대책마련, 사법계의 공정성 등……,)

 이처럼 이 작품은 문학작품이 존립할 수 있는 가장 본연의 요소인 작품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서도 실은 그 이후 생각의 과정을 오래 머금게 하는 작품이기에, 나는 이 작품을 수작(秀作)으로 꼽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작품들(『고양이』, 『기억』, 『잠』, 『나무』 등)을 더 읽고싶다는 생각이 든 만큼,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와의 제대로 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시초가 될 책이 될 것으로 의미가 크다.

 

‘괜찮아요, 지금부터 당신의 내생을 위한 이상적인 여정을 우리가 함께 고를거니까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3막 제1, 심판, 열린책들, 2020.

 

지상에서 유람 잘하고 와요. 그리고 당신이 선택한 카르마를 잊지 말아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3막 제5, 심판, 열린책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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