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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king Spoken English - 영화와 드라마로 떠나는 구어체 탐험
최완규 지음 / 넥서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기다리던 네오퀘스트 책이다. 하지만 출판사를 바꿔서인지 기존의 네오퀘스트 시리즈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소 가벼워졌다고 해야 하나? 책이 담고 있는 정보량이 기존의 네오퀘스트 시리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의 대사 위주로 표현을 선별했기 때문에 가장 따끈따끈한 표현을 배울 수 있지만 그 정보량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내용 자체는 만족스럽다. 어렴풋하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았던 구어체의 각종 표현과 단어들을 개념 위주로 속시원하게 설명해준다. 특히 욕과 성에 관한 개념 위주의 설명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희귀한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구어체 소설를 읽고 영화와 드라마의 대사를 듣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매뉴얼이다. 즉,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우기 위한 지침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험 영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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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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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흥미를 끌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물리학자가 고향 행성 아나레스를 도망치듯 떠난다. 목적지는 아나레스의 적인 우라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강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런 측면에서 <어둠의 왼손>보다는 도입부의 호기심 유발은 성공적이었다.

우라스는 그를 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이론을 원했다. 그는 어떻게 '이론'을 만들어낸 것일까? 이 부분이 다시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노벨상 수상자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훌륭한 연구업적이 가능했던 이유를 찾게 되는 것과 같은 호기심이다. 아나레스는 그의 이론을 원하지 않았다. 이론의 가치를 이해조차 못했다. 왜 아나레스는 그렇게도 훌륭한 이론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두 행성의 역사와 사회체제를 알아야 한다. 현재에 그가 속한 우라스와 과거에 그가 삶을 영위했던 아나레스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와 아나키즘, 상호적의와 사회와 상호교류의 사회. 생각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다. 흥미 위주의 모험담 수준은 아니다.

다시 질문을 해 보자. 어느 사회가 보다 이상 적인가? 배고픈 오도니안들의 천국 아나레스인가, 화려한 착취자들의 천국 우라스인가? 질문 속에 이미 답이 있다.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생각한다면 어떤 모습을 가진 사회가 보다 건강한가, 어떤 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리학자 쉐백의 이야기는 이러한 추상적인 믿음에 대한 (르귄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고실험'이다. 과연 현실이 추상적인 믿음과 일치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 우라스의 추악함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과연 아나레스에서 그들은 행복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경제적 평등의 이상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한 사실을 생각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두서없이 책에 관련된 생각들을 적어놓고 보니 오히려 머리만 복잡하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은 명백하다.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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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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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과거로 여행가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면 현재는 변화하는가? 궁극적으로 과거의 변화에 의해 역사는 변화될 수 있는가? 시간 여행의 오래된 논쟁이다. 코니 윌리스의 '시간 여행의 왜곡 모델'의 대답은 이렇다. 역사는 어느 정도까지는 자체 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정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역사는 변화되고 우주의 질서는 붕괴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다. 베리티와 네드의 실수로 죽어야 할 고양이가 살아나고 결혼해야 할 두 남녀가 만나지 못하고 서로 엉뚱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역사의 자체 교정 능력은 '문제'를 교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실제적인 시간의 왜곡 현상은 '왜곡 모델'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 '왜곡 모델'에 문제에 있는 것일까? 계속되는 의문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작가는 마지막 장이 되기전까지 답을 공개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이다. 문제를 던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힌트를 살짝살짝 보여준다. 어디 한 번 맞추어 봐라. 그리고 마지막에 독자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보여준다. 그럴싸한 근거와 함께. 답을 맞추지 못한 독자는 스스로의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그럴 수 있겠군. 답을 맞춘 독자는 스스로의 총명함에 우쭐해진다. 아, 나는 역시 똑똑해.

하지만 코니 윌리스는 자신의 작품이 딱딱한 추리소설이 되는 것은 싫었나 보다. 그래서 이어지는 사건들을 코미디로 만들어 버린다. 과장된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들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용구의 잔치. 그래서 책의 두께는 700페이지를 가볍게 넘겨버린다. 책에 사용된 인용구를 이해할 수 없고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희극의 미학을 이해할 수 없다면 700페이지는 너무나도 지루한 분량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의 반전에 감탄하면서도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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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매그루더의 시간여행
조지 게일로드 심프슨 지음 / 프리미엄북스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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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표지의 광고가 재미있다. 'H.G. 웰즈의 <타임머신> 이후의 금세기 최고의 시간 여행 소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광고 문구의 과장이 지나치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게다가 내용이 그리 흥미진진하다거나 기발하다고 할 수 없다. 구성이 탄탄하지도 않다. 별다른 모험도 없다. 저자 자신이 전문적인 SF작가가 아닌 탓에 독자의 재미보다는 자신의 창작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씌여진 책이라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독자에게 진지하고 심각한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8천만년전의 중생대 백악기에 홀로 살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공룡의 시대에 인간은 오직 당신 한 사람 뿐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석판에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8천만년 후의 인류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하지만 그가 미래의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 뿐이다. 주인공은 사냥에 나갔다가 공룡에 의해 부상을 입고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책임이 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자신에 대한 책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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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공주 1
최후식 지음 / 시공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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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장르 소설로서의 무협은 그 특징이 명백하다. 재미있어야 한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많은 무협을 읽어왔던 나의 생각도 그러하다. 재미없으면 무협이 아니다. 무협 작가들은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한다. 주인공의 기연에 의한 무공의 증가, 복수극, 남녀간의 사랑, 문파와 방파간의 투쟁, 추리소설 기법의 시도, 강시나 환술같은 환타지적 요소의 도입, 공포소설적 특성 등. 그 많은 아이디어들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읽는 이에게 재미를 준다. 그러나 재미를 주는 것으로 그만이다.

<표류공주>는 '재미'에 더해서 '감동'까지 주려고 노력한다. 매우 특이한 시도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 시도는 성공적이다. '절름발이' 모진위의 이야기는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이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추혼십이절을 연마하여 무술대회에서 우승하고,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객이 되었지만 자신을 해친 자를 용서하였다. 무공을 버린 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갔다. 전통적인 무협에서 거론되는 대인대용한 '대협'의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순수문학이 주는 감동보다 결코 작지 않다. 단지 무협소설의 형식을 빌렸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특히 전 4권 중에서 제 1권은 내용과 구성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 많아진다면 무협 또한 '문학'의 대접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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