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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공주 1
최후식 지음 / 시공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장르 소설로서의 무협은 그 특징이 명백하다. 재미있어야 한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많은 무협을 읽어왔던 나의 생각도 그러하다. 재미없으면 무협이 아니다. 무협 작가들은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한다. 주인공의 기연에 의한 무공의 증가, 복수극, 남녀간의 사랑, 문파와 방파간의 투쟁, 추리소설 기법의 시도, 강시나 환술같은 환타지적 요소의 도입, 공포소설적 특성 등. 그 많은 아이디어들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읽는 이에게 재미를 준다. 그러나 재미를 주는 것으로 그만이다.
<표류공주>는 '재미'에 더해서 '감동'까지 주려고 노력한다. 매우 특이한 시도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 시도는 성공적이다. '절름발이' 모진위의 이야기는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이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추혼십이절을 연마하여 무술대회에서 우승하고,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객이 되었지만 자신을 해친 자를 용서하였다. 무공을 버린 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갔다. 전통적인 무협에서 거론되는 대인대용한 '대협'의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순수문학이 주는 감동보다 결코 작지 않다. 단지 무협소설의 형식을 빌렸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특히 전 4권 중에서 제 1권은 내용과 구성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 많아진다면 무협 또한 '문학'의 대접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